현재 세계는 ‘통화전쟁’ 중이다. 각 나라가 노골적으로 ‘나는 살고 너는 죽이겠다’식의 자국 보호주의 치킨게임을 불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산 제품의 가격경쟁력은 사상 초유의 위기에 직면하고 말았다. 변변한 자원도 없는 수출주도형 경제모델을 유지하는 상황에서, 한국 제품의 가격졍쟁력 약화는 심각한 위기의 시작을 알리는 트리거(방아쇠)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활로는 없을까? 이에 코트라와 뉴시스는 지난달 31일부터 이번달 10일까지 미국, 일본, 중국 등 주요 34개 통상국 바이어 100명(응답 89명)에게 ‘글로벌 시장에서의 한국산 제품의 경쟁력'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브릭스, “한국이 어려우면 중국으로”

브라질, 러시아, 인도(브릭스) 등 신흥국 바이어들의 대부분은 한국 제품의 매력이 떨어지면 대체품으로 중국산을 구매할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중국제품의 가격경쟁력이 높아졌고, 예전보다 기술력이 향상돼 상당 수준의 품질을 갖추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우리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은 중국이라는 결론이 가능하다.

브릭스 바이어들은 '한국 상품 거래를 줄인다면, 대체 상품으로 어느 나라 제품을 선택할 계획입니까'라는 질문에 동남아시아 바이어(100%)와 러시아 바이어(80%), 아프리카 바이어(61.1%), 중동 바이어(37.5%)가 중국 상품을 택했다. 중남미 바이어는 중국(33.3%)과 대만(33.3%) 상품을 꼽았다. 신흥국 바이어 상당수는 한국제품의 가장 강력한 경쟁상대로 중국을 꼽았다.

동남아시아 바이어와 아프리카 바이어는 각각 50%와 60%의 비율로 중국을 택했다. 러시아 바이어는 중국(12.5%)과 미국(12.5%)을 선택했다. 이는 중국 제품의 위상이 이전보다 높아졌음을 의미한다.

이봉걸 국제무역연구원 연구위원은 "글로벌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신흥국 바이어가 가격경쟁력을 갖춘 중국 제품을 찾게 되는 것"이라며 "신흥국에 저소득층이 상대적으로 많은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그는 "중국의 기술력이 아직 한국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신흥국에서 사용하기에 무리가 없을 정도의 기술력을 갖췄기 때문에 한국 제품을 대체할 나라로 중국을 꼽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제 ‘싸구려 제품=중국’이라는 등식이 깨졌음을 의미한다.

여기에 한국의 가격경쟁력 약화도 큰 문제로 지목되고 있다. 설문조사에서 신흥국 바이어 대다수가 한국 제품 수입을 줄이는 가장 큰 이유로 '환율 변동에 따른 가격 상승'을 꼽았기 때문이다. '한국 상품 수입을 줄일 예정이라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러시아 바이어 100%가 '환율변동으로 인한 가격 상승'이라고 답한 대목이 가장 극적이다.

같은 질문에 중남미 바이어의 50%, 아프리카 바이어의 46.7%, 중동 바이어는 42.9%가 '환율변동으로 인한 가격 상승'을 택했다. 가격경쟁력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브릭스 바이어들은 한국의 대체자로 중국을 택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뜻이다.다만 '향후 한국 상품 구매를 어떻게 관리할 계획입니까'라는 질문에 중동 바이어의 60%와 러시아 바이어의 50%가 거래를 늘릴 예정이라고 답했다. 동남아시아 바이어와 중남미 바이어는 각각 66.7%와 50%의 비율로 현재 상태를 유지할 것이라고 답했다.

신흥국 바이어가 한국 상품 구매를 결정하게 된 가장 중요한 요인은 '품질'이었다. 동남아시아 바이어(66.7%)와 중남미 바이어(62.5%), 러시아 바이어(62.5%), 중동 바이어(60%), 아프리카 바이어(56%) 모두 품질을 1순위로 꼽았다. 그 다음으로는 아프리카 바이어(52%)와 중동 바이어(40%), 중남미 바이어(37.5%), 러시아 바이어(37.5%), 동남아 바이어(16.7%)가 가격을 중요 요인으로 선택했다.

한국 제품이 가장 강력한 경쟁력을 지닌 분야로는 역시 전자제품과 자동차 및 부품이 꼽혔다. 전반적인 흐름이 비슷하다. 중남미 바이어(75%)와 러시아 바이어(50%), 동남아시아 바이어(50%)가 전자제품을, 아프리카 바이어(37.5%)와 중동 바이어(50%)는 자동차 및 부품을 가장 강력한 경쟁력을 지닌 분야로 꼽았다.

중국 바이어, “IT보다 화장품”

중국 업체 바이어들은 현지 내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 화장품 수입에 가장 관심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재미있는 대목은 다른나라의 바이어들이 한국의 IT기술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바이어들은 IT보다 화장품 등 예술 및 문화에 더 관심이 높다는 것이다.

설문조사에서 중국 바이어들의 응답만 집계한 결과, 한국 업체와 가장 거래하고 싶은 품목(복수응답)은 화장품이라는 응답이 많았다. 실제로 중국 바이어 중 50.0%은 '향후 거래하고 싶거나 거래를 계획하고 있는 한국 상품'을 화장품으로 꼽아 응답률가 37.5%에 그친 전자제품에 앞섰다. 'IT 제품'이라는 응답은 한 건도 나오지 않았다. 이는 BAT로 불리는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의 급속한 성장으로 중국의 IT경쟁력이 세계수준으로 올랐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한국산 제품의 경쟁력을 높이 평가하는 분야도 전자제품(62.5), 자동차부품(37.5%)에 이어 화장품(25.0%)이 이름을 올렸다. 최근 증가한 ‘요우커(중국인 관광객)’ 대부분이 명동과 면세점 등지에서 화장품 구입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대목과 오버랩되는 순간이다. 물론 여기에는 중국의 통화정책도 한 몫했다.앞으로 중국 업체 바이어들의 한국산 제품에 대한 관심은 앞으로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다수의 중국 업체 바이어들이 한국 업체들과의 거래 비중을 현상 유지하거나 앞으로 늘리겠다고 답했다. 중국 업체 바이어들의 62.5%가 거래를 늘리겠다, 25%는 현상 유지하겠다고 응답했다. 이러한 흐름은 한중 FTA를 통해 더욱 빨라질 전망이다.

중국 업체 바이어들의 한국산 제품에 대한 만족도는 높은 편이었다. '만족한다'는 응답이 75%(매우 만족 12.5%, 만족 62.5%)였고 '보통이다'는 12.5%, '만족하지 못한다'는 응답은 없었다. 이는 한국산 제품의 품질이 중국 현지에서 높게 평가 받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중국 바이어들은 한국산 제품을 구입할 때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요소(복수응답)로 품질(75.0%)을 가장 많이 꼽았고, 이어 가격(50.0%), 브랜드 이미지(25.0%) 등을 고려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여기에도 가격경쟁력이 문제다. '가격'은 중국 바이어들이 '한국산 제품을 수입할 때 발생하는 가장 큰 문제점' 1위(62.5%·복수응답)로 지목됐다. '환율변동'이라는 응답도 25.0%가 나왔다. 한국 제조기업들이 지난 3분기 원화 강세로 수출에 어려움을 겪었던 것을 감안하면 우리 기업들의 원가 절감 노력은 물론 환율 변동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중국산 바이어들은 한국산 제품의 거래를 줄인다면 일본(62.5%), 중국(25.0%) 등으로 거래선을 돌리겠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그 이유(복수응답)로 '환율변동으로 인한 가격상승 때문'이라고 답한 응답자 비율(14.3%)은 예상 외로 적었다. 오히려 '소비자의 기호변화'(42.9%), '품질에 대한 불만'(28.6%), '납품기일과 사후관리 문제'(28.6%) 등 때문일 것이라는 게 중국 업체 바이어들의 의견이다.

정리하자면, 중국의 바이어는 한국산 제품 중 IT보다 문화적인 부분에 더 매력을 느끼고 있다. 이는 중국을 강타한 한류열풍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다만 가격경쟁력 측면에서 한국은 ‘샌드위치 신세’를 당할 가능성이 높다. 일본의 기술력과 중국의 가격경쟁력이 동시다발적으로 한국을 위협할 경우 속절없이 무너질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다만 중국의 바이어들이 한국과의 거래를 끊을 경우, 가격경쟁력이 아니라 기호의 문제를 들었다는 점은 품질에 대한 만족도가 가격경쟁력에 따른 약점을 어느정도 상쇄하고 있다는 결론도 가능하다.

 

일본 바이어, “한국, 다양한 라인업이 필요”

일본 바이어들은 최근 엔저 효과로 수출 경쟁력이 높아진 반면 한국을 포함한 해외에서 수입하는 제품의 가격 부담도 높아져 고민 중이다. 역시 가격이 문제다. 이들은 한국산 제품의 품질은 높게 평가하면서도 '엔저 원고' 기조에 따른 가격 상승이 심화된다면 중국, 대만 등으로 거래선을 돌릴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설문조사에서 일본 바이어들의 응답만 집계한 결과, '한국산 제품 수입 시 나타나는 가장 큰 문제점(복수응답)'으로 가격과 환율변동이 각각 응답률 50%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어 품질(25.0%), 납품기일 및 사후관리(12.5%) 순이다. 다른나라의 바이어들과 비슷하다.특히 '만약 한국산 제품을 줄인다면 그 이유는' 문항(복수응답)에는 전원(100%) '환율변동으로 인한 가격상승' 때문일 것으로 내다봤다. 엔저현상에 따른 가격경쟁력이 여기서도 발목을 잡는다.

한국산 제품은 일본 내에서는 여전히 현지산 제품보다 중국산과 경쟁하고 있다는 평가가 많았다. 응답자 62.5%는 한국산 제품의 강력한 경쟁상대를 중국으로 꼽았다. 이어 대만(25.0%), 일본(12.5%) 순으로 조사됐다. 또 '한국산 제품 비중을 줄인다면 대체 상품은'이란 문항(복수응답)에서 일본 바이어 42.9%가 중국산을 선택했고, 대만산과 일본산으로 거래선을 돌리겠다는 응답도 각각 28.6%씩 나왔다.다만 일본 업체 바이어들은 당장 한국산 제품 수입을 줄일 계획이 없다는 응답이 많았다.

응답자 중 12.5%만 '조금 줄일 예정'이라고 답했을 뿐, 50.0%는 '현상 유지'를 택했고, 오히려 37.5%은 '거래를 늘리겠다'고 답했다. 품질에 대한 만족도가 좋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가격경쟁력은 불안, 하지만 품질은 '갑()'

코트라와 뉴시스의 설문조사가 시사하는 것은 결국 한국산 제품의 가격경쟁력은 불안하나, 품질은 여전히 최고수준이라는 점이다. 물론 여기서 IT를 선호하는 국가와 문화 및 엔터테인먼트를 선호하는 국가가 갈렸으며, 한국의 대체자는 주로 중국이 꼽혔다.

개별적인 체감 인프라와 강점은 각 나라별로 달랐다. 결론적으로 가격경쟁력의 약점을 상쇄시킬 수 있는 품질 가능성을 끌어올리는 한편, 각 나라별로 다변화된 전략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