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이미화기자

지난 8월에 본지가 만난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사장을 다시 찾았다. 그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는 소식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기자는 존 리 사장이 인기를 전혀 실감하지 못할 것으로 이미 예상한 상태였다. 아니나 다를까 예상 그대로였다. 그는 자신의 일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바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냉정한 사람은 아니다. 그가 마지막에 말한 ‘우리 회사만이라도’라는 대목은 기자의 마음을 흔들기 충분했다.

최근 금융투자업계에서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사장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펀드 수익률이 좋아진 탓도 있겠지만 ‘난세의 영웅’이라는 이미지도 강해지고 있다.

이에 존 리 사장은 “사실 (인기를) 실감 못하고 있다. 외부와 접촉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펀드는 고객들이 이해하기 쉬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투자자들에게 너무 복잡하게 설명을 했고 셀 수 없이 많은 펀드가 투자자들의 이해를 괴롭혔다고 본다. 하지만 우리는 펀드를 하나로 통합해 단순화했다. 고객들이 이해하기 쉽다는 것이 특징인 것 같다”고 전했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펀드 투자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가진 투자자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메리츠 코리아펀드에 대한 문의는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펀드에 등 돌린 투자자들이 다시 관심을 가진다는 것이 흥미롭다.

“비전문가들이 펀드를 운용했다. 내가 말하는 비전문가란 사고팔고 하는 행위를 자주하는 사람을 말한다. 한국 자산운용업계가 장기투자를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몇몇 운용사를 제외하고) 그렇지 못했다. 우리는 투자가의 이익이 가장 우선이라고 생각하고 실제로도 그렇게 운용한다. 그런 점들이 투자자들에게 어필된 것으로 보인다.”

존 리 사장과 메리츠자산운용 펀드에 대한 관심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있다. 메리츠자산운용에 입사지원을 희망하는 취업준비생들이 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이를 확인했다.

“(확인은 안 해봤지만) 과거에는 지원자가 없었을 것 같다. 운용업계 하위를 기록하고 있는데 누가 입사하고 싶었겠는가. 최근 지원자들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나에게 직접 메일을 보내는 사람도 있고 회사 측에 메일을 보내기도 한다. 그들의 공통점은 이런 분위기에서 일하고 싶다는 것이다. 우리 회사는 눈치 볼 필요도 없고 권위주의도 없다. 오로지 (좋아한다면) 일만 하면 된다.”

미국에서 오랜 생활을 한만큼 존 리 사장이 권위주의가 없을 것이라는 인식은 단순한 ‘인식’이 아니라 사실이다. 그는 대중교통을 주로 이용하는 편이다. 한 운용사의 사장이자 취임한지 불과 1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 메리츠자산운용의 인지도를 이만큼 이끌어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에서 지원하는 차량조차 없다.

“회사차 자체가 없다. 출퇴근 시 대중교통을 주로 이용한다. 가끔은 택시도 탄다. 그런데 지하철이 가장 빠르더라.”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가식이 없다. 마치 ‘사장이면 반드시 대접을 받아야 하는 건가’라고 되묻는 느낌이었다. 그만큼 권위의식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시장의 관심을 받는 대상은 그만큼 부담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존 리 사장은 인기를 실감하지 못했던 만큼 부담도 없었다.

“시선을 중요하지 않게 생각한다. 내가 한국에 온 이유는 주식투자를 권하기 위해서다. 다만 아무 펀드에 들지 말고 막무가내 투자도 하지 말라. 투자는 정말 오랫동안 해야 한다. 요즘 택시를 타고 이동할 때 택시 기사와 얘기를 나누다 보면 많이 놀란다. 택시 기사들 중에 대기업 임원 출신들이 많더라. 근데 노후 준비는 되지 않았다. 물론 옛날에는 재테크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할 수 있지만, 요즘 젊은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시선에 부담을 가지기보다는 주식에 투자해야 한다고 전하는 게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진: 이미화기자

사람들이 투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해지면서 ‘현금이 최고’라는 인식이 투자를 가로막는 가장 큰 원인이라는 지적도 이어졌다. 그 원인은 금융투자업계가 제공했다.

“한국에서 일하기로 결정하면서 자산운용사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바꿀 수 있는 회사, 내가 좋아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는 회사를 선택하려 하다 보니 메리츠자산운용이 눈에 띄었다. 특히 메리츠금융그룹의 독립성이 마음에 들었다. 큰 기업일수록 변화하기가 힘들다. 메리츠자산운용은 모든 조건이 맞았다.”

본지는 메리츠금융그룹을 ‘한국형 버크셔해서웨이’에 비유해 특집을 다룬 적이 있다. 존 리 사장도 그에 공감했다. 그리고 이어진 그의 발언을 통해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기사를 봤다. 충분히 우리는 버크셔해서웨이와 같은 성장을 이룰 것이고 그렇게 해가고 있다. 각 사 대표가 전문 경영인이다. 경영뿐만 아니라 해당 분야의 전문가인 사람들이 포진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독립성은 유지되고 있고 더군다나 임기에 만기도 없다. 메리츠자산운용뿐만 아니라 우리 그룹 전체가 반드시 성장해 나갈 것이다.”

이어 존 리 사장은 업계 후배들과 자산운용사에 취업을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진심어린 조언을 했다. 그가 말하는 ‘직업’과 그 직업을 자신의 일로 삼기 위해 필요한 사항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제일 관심 없는 인재는 스펙이 많은 사람이다. 남에게 잘 보이려고 해서는 안 된다.자신이 남과 차별화돼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 남들이 나를 좋아하게 만들어야 한다. 내가 남다른 능력이 있다는 것을 공부라는 한정된 곳에서 찾으려 한다. 그렇게 하면 차별화가 되지 않는다.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보다 우리는 오히려 엉뚱한 사람이 좋다. 스펙 한 칸 채우기보다 여행을 많이 다닌 사람이 우리 문화에는 더욱 맞을 것이다. 그리고 반드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새겼으면 한다.”

기자가 프로게이머에 대한 얘기를 꺼내자 존 리 사장이 맞장구를 쳤다.

“얼마나 보기 좋은가. 자신들이 하고 싶고, 즐기고, 재밌는 일을 한다. 그러면서 돈을 번다. 그런 방식으로 새로운 직업이 탄생하면 누구나 즐기며 일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사회다.”

존 리 사장과의 정식 인터뷰를 마치고 기자는 개인적으로 궁금증이 생겼다. 그리고 질문을 던졌다. 존 리 사장의 모든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 13일에 치러진 대학수학능력시험 전날, 한 수험생의 자살 소식이 들렸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너무 마음이 아프다. 그 학생이 무슨 잘못이 있나. 한창 즐겁게 뛰어 놀아야 할 나이에 이게 무슨 일인가. ‘공부’라는 압박과 ‘시험’이라는 제도가 가장 큰 잘못이다. 공부와 시험이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 이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 많은 경험에서 지식이 나오는 것이지 책상에 앉아 있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아까도 말한 것처럼 우리는 스펙을 쌓은 사람보다 자유분방하고 많은 상상과 생각을 하고 여행을 많이 다닌 사람을 앞으로 더 뽑을 것이다. 우리 회사만이라도 공부와 취업의 압박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