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나라 12대 황제인 간문제 때의 일이다. 간문제는 촉을 평정하고 돌아온 권신(權臣) 환온의 세력이 날로 커지자 환온의 정적인 은호를 중용했다. 환온을 견제하려는 의도였다. 황제가 기대한 대로 은호는 상당한 군사적 성과를 냈다.

하지만 은호는 중원 땅을 회복하기 위해 출병했을 때 말에서 떨어져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한 채 패했고, 간문제는 기다렸다는 듯 은호를 귀양보냈다. 이에 은호는 “사람을 백 척(尺) 누각에 올라가게 해놓고 사다리를 치워 버리는구나”라며 간문제를 원망했다. 이것이 상루담제(上樓擔梯), 즉 ‘누각에 올라가게 해놓고 사닥다리를 치워 버린다’는 고사의 유래다.

지금 상황에서 보면 최경환 경제부총리야 말로 위태한 상루담제의 처지에 놓인 듯하다. 한때 그를 지지하던 정치권과 언론조차 ‘초이노믹스’로 불리는 그의 경제정책들에 대해 전면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그 통에 의욕 넘치던 그의 기세가 한 풀 꺾였다는 말도 나온다.

이 같은 초이노믹스에 대한 비난은 지난 11월 4일자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의 사설에도 반영돼 있다. 이 신문은 ‘초이노믹스, 한국의 혼란스러운 경제정책’이란 사설을 통해 최경환 경제팀의 정책이 일본 아베노믹스의 전철을 밟는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신문은 최 부총리가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완화하는 바람에 가계부채가 증가했고, 노동생산성이 떨어지는 마당에 오히려 임금인상을 독려하고 있으니 기업 경쟁력이 약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남아도는 사내유보금을 투자, 임금, 배당 형태로 사용하도록 유도하는 기업소득환류세제에 대해서는 징벌적 과세라고 비난하고, 기업인 가석방 관련 발언은 비리를 저지른 재벌총수를 옹호하는 것이라고 비판의 날을 세우기도 했다.

물론 초이노믹스가 한국경제를 일거에 회생시키지는 못하고 있다. 실제로 정부와 한국은행이 재정 지출을 늘리고 금리를 인하하는 단기 부양책을 썼지만 0.3~0.4%포인트 정도 성장률을 높이는데 그쳤다. 하지만 이 같은 단기 부양책이라도 없었다면 경제 무기력증은 더욱 심화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대출규제 완화로 가계부채의 총량이 늘었다지만 이자부담이 줄어드는 등 질적 개선이 이뤄진 것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임금인상은 소비활성화와 기업매출 확대로 순환된다는 점에서 무턱대고 비난만 할 일도 아니다. 기업소득환류세제가 기업투자를 확대하기 위한 것이란 정부해명은 이 제도 도입에 따른 세수목표가 제로(0)라는 것을 감안하면 진정성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기업인 가석방 관련 발언은 정치적 사면과 달리 모범적인 수감자라면 누구나 법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 내용이어서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런데 지금은 초이노믹스의 단기효과를 두고 갑론을박 할 때가 아닌 듯하다. 최 부총리는 이미 경제정책의 무게중심을 그간의 확장적 거시정책에서 공무원연금 개혁등 구조개혁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따라서 지금은 이러한 정책변화가 전략적으로 타당한 것인지, 시기적으로는 적절한 지를 집중적으로 살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최 부총리는 ‘가파르지만 넘어야 할 산’인 구조개혁을 반드시 실행하겠다고 천명하고 있다. 특히 금융 개혁과 노동·교육 부문의 생태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근본적 개혁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일단, 이 같은 정책노선은 국내외 경제전문가들의 견해와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진작부터 강력한 구조개혁을 처방전으로 제시해왔다. 한국 경제의 침체 국면을 깨려면 수요 진작에 그치지 말고 불필요한 규제의 혁파, 부실 공기업 개혁, 신기술 개발 및 고부가가치 서비스업 지원 등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가 공무원연금개혁에 대해 긍정적이라고 평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행히 구조개혁을 추진하려는 타이밍도 그리 나쁘지 않다. 최 부총리는 최근 “이 추세가 지속되면 디플레이션으로 갈 가능성이 크지만, 아직 디플레이션은 아니다”라고 진단했다. 늪처럼 도약 자체가 힘들어지는 디플레이션에 빠지진 않은 상태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뼈아픈 구조개혁을 단행할 체력은 아직 남아 있는 셈이다.

대외환경에서 일부 긍정적인 요소도 보인다. 원유와 원자재값이 떨어져 수출기업의 환차손을 일부나마 메워줄 것이란 기대가 가능해졌다. 중국의 경기둔화를 우려하지만 한중 FTA를 활용하려는 적극적인 자세가 있으면 돌파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다수의 외국 분석가들은 한국의 디플레이션 염려를 과도하다고 평가한다. 이 같은 분위기는 지난 9월 무디스, 피치, S&P 등 세계 3대 신용평가사가 일제히 한국의 신용등급을 상향조정한 데서도 알 수 있다. 한국은 일본·중국보다 신용등급이 높아졌다.

전세계적인 경기침체 속에서 초이노믹스의 장래만이 낙관적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습관적 비관론'에 빠져 이제 막 전쟁의 본령을 목전에 둔 장수를 흔들어 대는 것은 매우 위태한 일이다. 아베노믹스의 좌초 위기도 양적 완화와 재정지출 확대라는 두 개의 화살을 쏜 뒤 규제개혁이라는 마지막 화살을 남겨둔 시점에서 비롯됐다. <이코노믹리뷰 편집인. 숙명여대 글로벌서비스학부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