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전부가 된 디지털… 생태학적 개념 ‘공진화’가 경쟁력의 관건

“ 트렌드를 읽는다고 해서 100% 성공할 수는 없지만 트렌드를 읽지 못하면 100% 실패는 보장할 수 있다.”

미국의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트렌드에 대한 예측과 대비의 중요성에 대해 설파했다. 미래는 알 수 없기에 곳곳에 도사린 위험과 불확실성을 제거할 수 없다. 하지만 이를 예측하고 대비해야 하는 이유는 내일 해야 할 일을 결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기 위해 오늘 해야 할 일을 결정하기 위해서라는 것.

김경훈 소장은 1994년 <한국인 트렌드>를 발표하며 국내 트렌드 연구의 포문을 열었다. 한국트렌드연구소를 설립, 연구 활동과 함께 다수의 저서를 출간했다(사진=이코노믹리뷰 송원제 기자).

125년 유구한 전통을 가진 세계 최고의 필름 회사인 코닥. 디지털 시대로의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고 기존 필름 사업에만 안주했던 ‘잘못’으로 인해 경쟁에서 밀려 후발업체들에게 자리를 내주는 초라한 신세가 됐다.

반면 PC 제조회사로 출발한 애플은 변화와 혁신을 통해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글로벌 멀티미디어 기업으로 우뚝 섰다. 요즘은 일상에서 스마트폰이나 SNS를 모르면 낙동강 오리알 신세를 면치 못하는 현실이 됐다.

결국 트렌드 변화를 간파하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일상생활에서든 기업 비즈니스 차원에서든 말이다. 트렌드의 추이에 대해 항상 관심을 갖고 반영해야 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코앞으로 다가온 내년은 어떻게 흘러갈까. 지난 15일 오후 서울 파이낸셜센터에서 만난 김경훈 한국트렌드연구소장은 2011년을 관통할 핫 트렌드로 ‘공진화(共進化, coevolution)’를 제시했다.

공진화는 원래 생태학에서 쓰는 개념으로 서로 경쟁하거나 협력하며 진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관계를 통한 진화다. 김 소장은 디지털 시대로의 급격한 변화가 이뤄짐에 따라 모든 생활이 디지털화하는 지금의 시대를 맞이한 데서 공진화가 나왔다는 설명이다.

“지난 20년간 디지털 기술이 인간의 삶에 도입되는 ‘제1기 디지털’ 시대는 테크놀로지, 속도의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한국인과 잘 맞았죠. 이제는 생활의 기반 자체가 디지털이 되는 ‘제2기 디지털’ 시대가 오면서 관계 맺기, 개방, 공유, 네트워크, 수평 등이 가치로 떠올랐습니다. 이것이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결정적 문제가 된 것입니다.”

2011년 전망해 볼 7대 키워드?

문화와 일상으로서의 디지털로 진화된 생태계에 반드시 적응해야 한다는 ‘디지털과의 공진화’를 주장했다. 그러면서 공진화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영역별 7대 키워드를 소개했다.

나눔을 쉽고 즐거운 일상의 습관으로 만들어주는 이지 오블리주(스피릿 영역), 생산성 향상과 자유로운 노동방식을 도입하는 스마팅(일과 교육 영역), 생활 밀착형으로 몸의 동작을 중심으로 진화하는 단순 생활동작 놀이(놀이 영역), 소셜 네트워크 활용자들이 온라인을 토대로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는 소셜 연방(네트워크 영역), 디지털2기를 주도할 조숙한 10대를 선정한 이틴즈(성과 세대 영역), 도시와 건물이 생명 반응을 가진 유기체로 진화하는 숨쉬는 나의 도시(공간 영역), 가상현실 구현 등 디지털 기술 발전에 따른 감각의 변화를 조망한 혼혈 감각(감각 영역)이 그것이다.

7개의 키워드를 통해 영역별로 주목해야 할 내년의 흐름을 전망할 수 있다고 했다.
이 가운데 공진화와 가장 관련이 깊은 키워드로 소셜 연방을 꼽았다.

“연방이라는 단어에 의미가 있습니다. 다국적·다문화적 정체성을 가진 소셜리언(소셜 네트워크의 주민)들이 온라인이라는 광범위한 영토를 배경으로 결사체를 만들어가는 흐름을 나타낸 것이 소셜 연방입니다.

정치, 경제, 커뮤니티, 미디어 등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의 권리가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행해지고 있는 겁니다. 현실을 바꿀 만한 영향력이 있는 거죠. 정치나 경제가 없는 싸이월드와는 다른 차원입니다.”

김 소장은 스마팅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덜 일하면서 더 높은 생산성을 달성하기 위한 스마팅 과정에서는 모바일 오피스, 재택근무, 원격근무 등 직원 만족도를 높이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며 우리나라의 생산성 문제는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가치관으로 접근하는 게 아니라 인프라에만 투자하고 있어 더 많은 시간을 일하고도 선진국에 뒤처지고 점점 더 이들 국가의 스마트워크와 격차가 크게 벌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20년간 진행된 초기 디지털 세상은 한국인 체질 맞는 기술과 속도의 시대.
개방·공유·네트워크 가치가 기반이 된 제2기 시대 선도할 의식의 전환 필요.

한국 특유의 떼거리 문화 위기 초래할 수도

김 소장은 공진화의 수용에 있어서도 국가별로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현재 화두가 되는 개방이나 공존의 가치가 한국의 코드와는 잘 맞지 않습니다. 밀실문화, 가족과 혈연지연, 수직적이고 나이 중심인 사회에서 한국인들이 쉽게 적응하기 어려운 요소들입니다. 그래서 한국이 공진화를 할 수 없는 위기를 맞을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의 궁극적인 목표는 결국 공진화에서 지속가능한 생존 기술을 찾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디지털에 쫓기는 영양 신세가 아니라 디지털을 장악하는 사자가 돼야 한다고.

어떻게 하면 트렌드를 잘 읽을 수 있는지 트렌드 분석 전문가로서 김 소장이 말하는 트렌드워칭 방법론에 대해 물었다. 미래를 예측하는 일은 누가 트렌드 찾는 법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자기만의 눈으로 트렌드 보는 시각을 갖춰야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미래를 예측하는 데 있어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일까. 역시 불확실성이 많다는 점이다. 최근 출간한 <핫 트렌드 2011>을 포함해 핫 트렌드 시리즈를 3년째 이어오는 것도 트렌드는 지속적인 관찰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트렌드와 유행의 차이도 여기에 있다. 시간의 문제다. 유행이 짧은 시간의 일시적 호기심이나 문제 해결법이라면 트렌드는 5년~10년 정도의 오랜 기간 동안 지속성의 흐름을 꿰뚫어 보는 것이다.

이렇게 연속적으로 트렌드 관찰 결과를 담아낸 책을 펴내는 일은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보기 드문 사례란다. 아울러 트렌드를 통한 기업의 예측 경영에 대해 역설했다.

“미래는 불확실하고 위험 요소가 산재해 있기 때문에 기업들은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필수적으로 갖춰야 합니다. 실제로 많은 기업들이 트렌드에 대한 예측을 기업 활동에 접목시키려 하고 있어요. 예측과 실행이 순환되는 경영을 통해 아이디어를 지속적으로 창출하고 기회를 먼저 포착하는 노력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전희진 기자 hsmile@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