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국악·마라톤·맨발걷기 등 각별한 애정… 경영 활동에도 접목 큰 성과

최고경영자(CEO)의 일거수일투족은 늘 관심의 대상이다. 공식적 활동뿐만 아니라 그들의 취미나 여가생활도 마찬가지다. 언뜻 보면 회사 경영과 크게 관련 없어 보이지만, 실질적 경영 성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문화예술에 대한 CEO의 남다른 애정은 메세나 활동으로 확대돼 기업의 이미지를 높인다. 스포츠를 통해 얻는 배움은 생산성 등 경영 실적 향상에 긍정적 효과를 가져다 주기도 한다. 최근 많은 CEO들이 ‘○○○ 전도사’를 자처하고 있다.

그 공란을 ‘혁신’ ‘소통’과 같은 경영 키워드로만 채울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은 선입견이다. ‘와인’ ‘국악’ ‘마라톤’ ‘맨발걷기’ 등 자신이 좋아하고 즐기는 ‘기호(嗜好)’를 자신 있게 적어 넣는 CEO들도 있다. <편집자주>

이희상 운산그룹 회장

"못 말리는 와인사랑 서울 G20서도 인정”

동아원을 운영하는 이희상 운산그룹 회장은 국내를 대표하는 ‘와인 전도사’로 그 명성이 높다. 이 회장의 와인사랑은 이미 국경도 넘었다. 해외 유수언론인 블룸버그 통신에서 집중 소개될 만큼 해외에서도 정평이 나 있다.

특히 얼마 전 개최된 G20 정상회의 실무만찬 와인으로 이 회장이 운영하는 미국 다나에스테이츠의 ‘온다도로’와 ‘바소’가 선정됐다. 이 역시도 와인에 대한 그의 애정이 빚어낸 결과라는 평가다.

그의 와인 사랑은 1970년대 미국 주재원 시절부터 시작됐다. 귀국 환송회 때 마신 와인을 계기로 와인 고유의 맛과 풍미를 알아가면서 애정을 점점 키워나갔다. 좋은 와인을 저렴하게 소개하겠다는 생각에 와인 유통사업도 시작했다.

와인 문화가 생소하던 1997년 나라식품을 설립, 국민 와인 ‘몬테스 알파’를 들여와 판매한 주인공이 바로 그다. 이후에도 직영매장과 국내 와인복합문화공간, 와인전문교육센터 등을 잇따라 오픈하며 와인 문화 선도에 경주해왔다. 또 미국 나파밸리를 중심으로 와이너리를 운영하며 세계 와인시장에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와인’에 대한 열정만으로 척박한 한국 시장을 개척해 온 공로는 와인 본고장에서도 인정받았다. 프랑스의 주요 와인 생산지인 메도크 등 4곳에서 주는 와인 기사작위와 칠레에서 훈장을 받는 영예를 안은 것.

이 회장은 국악 사랑도 각별하다. 식품업계엔 남다른 국악 사랑으로 우리의 전통문화를 알리는 CEO 모임이 있다. 이름은 ‘국생사’. ‘국악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줄임말이다. 이 회장을 포함해 샘표식품 박진선 대표, 남승우 풀무원홀딩스 대표, 삼양사 김윤 회장 등 식품업계 CEO 4명이 회원이다.

이들이 함께 모여 국악을 즐기기 시작한 것은 2001년. 젊은이들이 국악을 많이 접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워 해설을 곁들인 음악회를 직접 열기 시작한 것도 올해로 벌써 7년째다.

예술은 새로운 부가가치 콘텐츠로서 그 잠재력과 발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그의 평소 지론. 앞으로도 SOAF 현대미술전 등 대중에게 익숙치 않는 예술문화 활동을 지속적으로 지원한다는 구상이다.

박진선 샘표식품 대표

"다양한 음악 편력이 아트경영 꽃 피웠죠”

이 회장과 함께 국생사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박진선 샘표식품 대표도 각별한 음악 사랑을 과시한다. 박 대표는 “기업이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일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음악처럼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도 없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박 대표는 소위 ‘음악 마니아’다. 국악뿐만이 아니라 ‘클래식 광(狂)’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서초동 자택에는 1000여 장의 클래식 LP와 수백 장의 CD가 빼곡할 정도다. 그는 미국 스탠퍼드대 유학시절부터 클래식의 세계에 깊숙히 발을 들여놨다.

처음엔 하루 4시간씩 다른 일은 하지 않고 온전히 클래식 음악만 들었더니 1년쯤 지나자 ‘귀가 트였다’고 했다. 또 수십 년 간의 음악 편력 덕분에 음악을 들으면 그대로 악보에 옮길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음악 감상에선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그는 “클래식을 10년쯤 들으니 장르를 초월해 모든 음악이 좋아졌고, 20년쯤 지난 후엔 행복해지더라”며 음악 예찬론을 펼친다.

그의 남다른 음악 사랑은 샘표의 문화지원활동으로도 이어졌다. ‘공장’이라는 이색공간에 꽃 핀 그의 아트경영이 바로 그것이다. 1999년 락밴드 공연 ‘생생 버라이어티쇼’, 2000년 ‘공장미술제’에 이어 지난 2005년부터는 샘표식품 이천공장에서 ‘샘표 스페이스’를 설치·운영하고 있다.

소외된 젊은 작가들의 실험적인 작품을 주로 전시하고 있는 샘표스페이스는 신진 작가에겐 등용문을 제공하고 지역주민과 생산직 사원에겐 문화 콘텐츠의 혜택을 주는 특별한 공간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박 대표는 “젊은 예술인들의 실험정신과 신·구 조화를 통한 끊임없는 변화를 추구하는 샘표의 비전이 만나 주목받는 문화예술 공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샘표 스페이스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계식 현대중공업 회장

"끈기의 마라톤 경영 조선 글로벌 톱 동력”

민계식 현대중공업 회장은 백발의 마라토너다. 칠순이 가까운 고령의 나이에도 각종 마라톤 대회의 풀코스를 달리며 건각을 자랑하고 있다. 예년에는 연 10~12회 공식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으나, 올해는 바쁜 일정으로 3차례 마라톤대회에 참가해 풀코스 2회와 하프코스 1회를 완주했다.

경영도 체력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게 민 회장의 평소 철학이다. 하루에 3~4시간밖에 안 자고 새벽에 거뜬하게 출근할 수 있는 체력은 바로 마라톤에서 나온다. 중학생이던 1950년대 초부터 달리기를 시작한 그에게 마라톤은 삶의 원동력이다.

마라톤을 통해 추진력과 인내심을 기르며, 일에 대한 열정을 뒷받침할 수 있는 체력을 관리한다. 또한 오랜 시간 달리면서 생각할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현대중공업이 조선업계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그의 마라톤 경영의 영향이 컸으리라는 게 주변의 전언이다.

회장님을 따라 마라톤을 즐기는 사원들도 크게 늘어났다. 사내 마라톤 동호회가 크게 활성화 된 것도 민 회장의 마라톤 예찬론 덕분이다. 현대중공업은 매년 봄과 가을 두 차례 사내 이어달리기 대회를 연다.

울산광역시와 공동으로 산악마라톤대회도 매해 개최한다. 물론 민 회장은 이들 사내 이어달리기와 산악마라톤대회에 매번 참가한다. 그는 앞으로도 직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함께 달리고 또 함께 회사를 경영해 나갈 계획이다.

조웅래 선양 회장

"자연친화 맨발걷기 민간외교 한 몫 했죠”

조웅래 선양 회장은 ‘맨발 전도사’로 통한다. 조 회장은 맨발걷기 등을 통해 ‘에코힐링(Eco-healing)’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1992년 ‘5425 휴대폰 벨소리’를 브랜드화해 벤처 성공신화를 만들어 낸 독특한 이력만큼 그의 행보는 이색적이다.

충남지역에서 소주회사를 운영하면서 건강을 생각하는 맨발걷기 예찬론을 펼치기 때문이다. ‘에코힐링’은 선양의 기업철학이기도 하다. ‘자연을 통해 몸을 치유한다’라는 의미로 ‘자연과 사람은 하나’라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조 회장이 주도하고 있는 맨발 마라톤대회, 피톤치드 마라톤, 숲속 음악회, 맨발걷기 캠페인 등 다양한 에코힐링 프로그램 역시 여기서 나왔다. 그는 또 시민들이 편하게 숲에서 맨발걷기 체험을 할 수 있도록 계룡산 숲속 황톳길도 조성해 관리하고 있다.

그의 맨발 걷기 전도는 민간외교 성과로 그 빛을 발했다. 2007년 9월 셰이셀공화국의 외무장관과 대통령을 초청해 계족산에서 맨발로 황톳길을 걸으며 에코힐링을 함께 체험하여 감동을 전해줬다. 그 결과 이듬해 2월부터 매년 ‘에코원선양 세이 셸 국제마라톤대회’를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이 행사는 단순한 마라톤 대회가 아닌 한국의 맛(음식, 술)과 멋(전통의상), 문화(공연)를 알리고 교류하는 문화행사로 펼쳐져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전민정 기자 puri21@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