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부터 시행에 들어가는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이하 단통법)’을 둘러싸고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투명하고 건전한 단말기 유통을 위해 마련된 단통법이 오히려 소비자 부담을 가중시키는 ‘악법’이라는 비판도 들린다. 이를 ‘악법’이라고 지적하는 배경에는 정부가 정한 단말기 보조금 상한선인 ‘30만원’에 대한 불만과 아쉬움이 짙게 배어있다.

우리나라의 가계소비지출 가운데 통신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4.3%에 육박한다. 이는 지난 7월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정부가 그간 가계 경제활성화 정책의 일환으로 통신비 인하 정책을 꾸준히 추진해 온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 시절인 지난 2008년 3월 18일, 최시중 당시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1년 안에 가계 통신비 20%를 인하하겠다고 공언하며 통신사를 압박하기도 했다.

이동통신사(이하 이통사)들은 이에 격렬히 반발하며 맞섰다. 이들은 단말기 제조 및 유통에 소요되는 원가를 공개할 수 없다고 버티면서 우회적인 요금인하 정책을 내세우며 위기국면을 넘기려 했다. 이런 과정을 겪으며 2000년 6월부터 실시해온 단말기 보조금 금지 정책이 사문화되고, 2008년부터 법정 한도인 27만원까지 ‘당당하게’ 단말기 보조금을 지급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 물론 2003년 3월부터 한시적으로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책이 마련되기는 했으나 이때가 보조금 지급을 사실상 허용해온 터닝포인트였던 셈이다.

2008년을 기점으로 통신비 인하 여론이 점차 거세지면서 보조금 지급 정책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된다. 여기에는 이통사들의 고도의 지략이 숨어있었다. 통신비 인하를 요구하는 소비자들에게 실질적인 통신비 ‘할인’ 대신 보조금을 지급함으로써 위기를 비껴간 것은 이통사나 제조사 입장에서는 가히 ‘신의 한수’였다.

물론 이통사들은 보조금 자체로 금전적인 손해는 일부 있었지만 내역이 불투명한 ‘보조금’은 그 자체로 유통시장의 강력한 무기로 자리매김됐고, 실질적인 할인보다 오히려 타격도 적었다. 게다가 약정 요금제와 적절하게 묶어 판매하면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이득이었다. 교묘한 ‘환치술(換置術)’이 아닐수 없다. 직접적인 통신비 할인을 요구하는 소비자를 향해 ‘할인처럼 생긴 보조금’을 지급하며 생색을 냈다는 의미다. 심지어 일선 대리점들은 27만원이라는 보조금 상한선도 가끔 어겨가며 출혈경쟁까지 벌여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런 점에서 이번에 시행되는 단통법의 핵심 논란, 즉 ‘분리공시 조항 삭제’는 상당히 뼈 아픈 대목이다. 제조사와 통신사가 부담하는 보조금의 규모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날려버렸기 때문이다. 2008년 보조금 제도가 시작될 때부터 안고 있는 ‘정보의 부재’라는 원죄를 조금이나마 털어낼 수 있었는데 말이다.

따라서 현재의 단통법 논의 초점이 보조금 상한선인 30만원(최대 34만5000원)에 집중돼서는 곤란하다. 그것은 숲이 아니라 곁가지에만 매달리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왜 30만원밖에 되지 않느냐’를 두고 갑론을박할 것이 아니라 ‘왜 보조금을 국가가 정하느냐’부터 ‘가계 통신비 인하를 위한 구체적인 대안이 무엇인가’라는 원래의 핵심현안으로 돌아가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물론 우리나라뿐 아니라 외국도 단말기 보조금 정책이 없지는 않다. 문제는 같은 단말기라 해도 외국과 국내는 가격 차이가 상당하다는 점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소위 ‘호갱님(물건을 비싸게 사는 호구 손님) 문제’를 풀어보고자 단통법을 실시한 것이 아닌가.

최성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최근 단통법 시행령과 관련해 추후 분리공시 조항 공개에 맞먹는 새로운 법적 조치를 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이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그후 보조금 정책 전반에 대한 투명성이 제고되면 다음 단계는 보조금 액수가 아닌, ‘보조금’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춰 본격적인 논의와 대안제시가 이뤄져야 한다.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은 단통법에도 그대로 적용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