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마지막 날 개봉했던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감독·주연 벤 스틸러)는 원작소설 <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훌륭한 원작이 있는 만큼 구성이 탄탄한 데다 다양한 색깔의 음악과 세계 곳곳의 풍광도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백미를 꼽으라면 여러 번 곱씹게 하는 철학적인 대사인 것 같다. 가령, 극 중 사진작가 ‘숀 오코넬’은 이렇게 말한다. “아름다운 것들은 관심을 바라지 않지.”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정말 아름다운 순간을 보면 방해하고 싶지 않아. 그저 그 순간 속에 머물고 싶지.” 다시 봐도 멋진 대사다.

하지만 가장 마음속 깊은 곳에 새겨두고 싶은 문구는 아무래도 주인공 ‘월터 미티’가 일하고 있는 타임 앤 라이프 사(社)의 모토일 것이다.

‘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서로를 알아가고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 인생의 목적이다.’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 문구는 실제로 미국 시사화보 잡지 <라이프(LIFE)>의 창간 모토였다고 한다. 그러나 냉정한 자본주의가 품기엔 역시 너무 따뜻했던 탓일까. 안타깝게도 영화는 이 잡지사가 다른 회사로 팔린 시점으로부터 시작한다.

월터는 16년 동안 라이프 잡지를 만들어 왔다. 컴컴한 사무실에서 조수와 함께 사진을 현상하는 것이 그의 업무다. 어릴 적에는 모히칸 인디언족 머리를 하고 스케이트보드를 즐기던 모험심 강한 아이였지만, 이제는 여느 직장인이 그렇듯 월터 또한 가족인 어머니와 여동생, 그리고 일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위축돼 있다. 그의 유일한 취미이자 낙(樂)은 순간순간 멍하니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상상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회사가 합병돼 새로 부임해 온 이사는 오만방자한 태도로 무차별적 해고를 자행하는 한편, 라이프지를 온라인 매거진으로 전환할 것을 천명하며 마지막 인쇄본을 만들라고 지시한다.

 

그러나 숀 오코넬이 표지로 강력 추천한 ‘삶의 정수(Quintessence of LIfe)’를 담은 필름이 사라져 버리는 바람에 월터는 뜻밖의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숀의 동선을 추적하며 세계를 누비는 동안 그는 일탈적 모험이 주는 기쁨을 만끽하며 어릴 적 꿈과 현재 자신의 모습을 돌아본다. 청춘을 바쳤던 회사가 주는 퇴직 선물로 부족함이 없는 귀중한 경험이다.

이 영화의 미덕은 회사의 합병과 실직을 소재로 하면서도 이 모든 상황을 비판하거나 동정하기 위해 만들어진 통속적인 멜로드라마를 넘어선다는 데 있다. 오히려 이런 씁쓸한 사건들조차도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인생의 한 부분이므로 극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다만, 가치 있는 인생을 살려면 신기루 같은 목적을 쫓아 사는 삶이 아니라 삶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만 한다고.

회사가 문을 닫고 해고를 당했어도 월터와 동료들이 실패했다고 할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이 변함없는 애정과 열정으로 잡지를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 영화의 끝에서 월터는 새로 부임한 이사에게 라이프지의 모토를 되새겨준다. 그것이야말로 지금껏 모든 직원이 한마음으로 열심히 일하게 해준, 삶 자체가 목적이 되게 해준 동력이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기업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가치관과 방향성은 고위 경영인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전체 종사자들의 충성도를 높이는 데도 중요하다.

그런데 그것은 라이프지의 모토처럼 절대적으로 인간중심의 가치여야만 한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직원들을, 그리고 고객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것은 결국 ‘사람’을 향한 ‘진심’밖에는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