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창규 KT 회장은 풍운아다.

삼성전자 사장 시절 그는 반도체 메모리의 용량이 1년마다 2배씩 증가한다는 ‘황의 법칙’을 통해 그동안 ‘무어의 법칙’이 지배하던 시장의 판도를 완전히 바꿔버렸다. 이후 그는 올해 1월 불명예 퇴진한 이석채 전 회장의 뒤를 이어 KT 회장에 취임하며 또 한 번 거친 광야에 섰다. 그에게는 흔들리는 KT를 바로잡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통신사의 명예를 회복해야 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수난의 연속이었다. 취임 초기 KT ENS(KT 자회사) 대출 사기 사건을 시작으로 고객정보유출, 방송통신위원회 영업정지가 연이어 터지며 상황은 급속도로 악화되었다. 게다가 전 직원의 26%에 달하는 8320명 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구조조정을 거치며 KT는 거센 도전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취임 8개월, 모처럼 KT가 웃었다. 지난 2분기 실적은 적자를 기록했으나 일시에 반영된 1조5000억원의 명예퇴직 비용을 제외하면 사실상 전 분기 대비 흑자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주가도 호조를 이어간다. 지난 5개월 동안 코스피 지수는 5% 남짓 상승했으나 KT는 무려 20~30%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그 중심에는 황창규 KT 회장의 뚝심이 있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황 회장은 흔들리는 조직을 다잡으며 KT 내부에 새로운 개혁의 바람을 불어넣었다. 그는 자신의 기본급 30%를 반납하고 실적이 부진한 계열사 사장들을 해임하는 특단의 조처를 했으며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알짜’ 계열사로 평가받던 KT렌탈과 KT캐피탈의 매각을 추진해 업계를 놀라게 했다. 심지어 주력사업을 제외한 비주력 계열사들을 가감 없이 쳐내기도 했다. 뼈를 깎는 개혁이었다.

지난달 26일 오후 황 회장은 2만3000여명에 달하는 전 임직원에게 A4 용지 7장 분량의 이메일을 보냈다. 그는 “KT의 비전이 ‘글로벌 1등’이라고 하면 갸우뚱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IT업계 경영자와 국가 CTO(최고기술책임자)로서 얻은 경험을 갖고 전문가들과 토론한 결과 KT의 역량이라면 미래의 변화를 기회로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됐다”고 강조했다.

핵심은 기가토피아(GiGAtopia)였다. 황 회장은 “기가급 인프라와 서비스가 중심이 되어 산업간 융합을 촉진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편리한 세상을 열어가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주역은 KT다. 황 회장은 “이제 KT는 기본으로 돌아가 유선과 무선의 통합을 추진하고 이를 위한 전폭적인 지원을 할 것”이라며 “인간과 사물이 결합하는 기가급 인프라를 바탕으로 사물인터넷(IoT·Internet of Things) 시대를 발전시키기 위한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황 회장의 ‘일성’에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지금까지 유독 위기에 강한 면모를 보여왔으며, 기회가 찾아오면 이를 자신의 프레임으로 끌어와 새롭게 창조하는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기도 했다. 이런 관점에서 황 회장은 최근 KT 실적이 호조를 보이며 성장의 가능성을 보여주기 시작하자 유선과 무선의 융합이라는 기본에 집중한 기가토피아를 강조하며 조직을 다잡기 시작한 것으로 해석된다. 무선은 물론 유선에도 역량을 집중해 이를 화학적으로 융합시켜 다양한 사물인터넷과 연동하겠다는 포부다.
 
일각에서는 황 회장의 기가인프라 로드맵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황 회장이 취임부터 지금까지 무려 3조5000억원의 자금을 기가인프라 구축에 투자했기 때문이다. 자칫 재무건전성 측면에서 또 다른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 그러나 황 회장은 담담하다. 그는 통신산업의 희망을 이야기하며 “유선의 강자인 KT는 ‘기가토피아’라는 새로운 시대를 맞아 강력한 1위가 될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미래성장동력으로 ‘스마트 에너지, 통합 보안, 차세대 미디어, 헬스케어, 지능형 교통관제’ 등 5가지 사업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