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커피 전문점에 밀려 지금은 거의 사라져버린 다방(茶房).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기 전까지 다방의 풍경은 어땠을까.

다방에 가면 머리가 살짝 벗겨지고 배 나온 중년 남성이 여종업원과 노닥거리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때 이 남성들은 사장님으로 불렸다. 과거 제대로 먹지 못했던 보릿고개 시절을 겪는 동안 뱃살은 부의 상징이었으며, 배 나온 중년 남성의 모습은 성공한 사장님 스타일로 누구나 부러워했다.

그러나 이제 뱃살은 성인병의 원흉으로 지목되고 있다. 똥배라고 불리는 복부비만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으로 취급받는다. 남성의 복부비만 원인은 주로 잦은 음주와 흡연, 불규칙한 식습관 등으로 발생한 ‘생활습관병’이다. 그런데 이런 습관이 없는 남성도 40대가 되면서 소위 ‘나잇살’인 똥배가 나오기 시작한다. 그 이유는 기초대사량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복부비만이 생기면 인슐린저항성이 발생하는데, 복부비만이 무서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인슐린저항성이란 인슐린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해 세포가 포도당을 효과적으로 연소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죽음의 오중주’라고 불리는 대사증후군(metabolic syndrome) 증상을 보이게 된다.

대사증후군(똥배증후군)은 인슐린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해 높은 혈당과 중성지방, 고혈압, 복부비만, 낮은 고밀도콜레스테롤(HDL)이 한꺼번에 나타나는 질환이다. 이는 고혈압이나 동맥경화, 심근경색, 뇌출혈, 뇌졸중 등 심혈관 계통의 장애나 당뇨의 원인이 된다.

또한, 복부비만은 대사증후군을 일으켜 합병증으로 심혈관계 질환을 발병시킴으로써 목숨을 위협하기도 하지만, 많은 중년 남성을 고개 숙인 남자와 대머리로 만들기도 한다. 그 이유는 복부비만으로 생긴 중성지방이나 고지혈증이 혈액을 끈끈하게 만들어 두피나 음경의 혈관에 혈류량을 감소시키기 때문이다.

두피의 모세혈관이나 음경혈관은 매우 가늘어 혈액이 조금만 탁해져도 혈류량이 감소해 모근에 영양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아 탈모를 일으키고, 음경해면체에 혈액의 유입을 감소시켜 발기부전을 일으킨다. 그래서 발기부전과 탈모가 동시에 생기는 경우가 많다.

필자의 고등학교 5년 후배인 48세 P씨, 그는 언뜻 봐도 대사증후군 환자였다. 당연히 탈모와 발기부전도 있었다. 그런 그가 탈모와 발기부전 이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고 싶단다. 그것도 피나스테라이드와 비아그라를 사용하지 않는 조건이다. 어디서 들은 풍월은 있어 피나스테라이드는 발기부전을 일으키고, 비아그라를 먹으면 두통이 온다는 이유에서다. 필자는 이 환자의 치료를 시작했다.

두피에는 성장인자를 주사했고 L-아르지닌과 비타민C, 비타민E를 복용하도록 했다. 운동은 인터벌 트레이닝을 꾸준히 시켰다. 다행히 P는 필자의 지시사항을 정말 잘 따라줬다. 그리고 6개월 뒤, P의 탈모와 발기부전은 치료됐고 뱃살은 온데 간데 없는 완전히 다른, 아주 건강한 사람으로 대변신했다. 외모뿐만 아니라 남성으로서 모든 것을 회복한 그는 나를 명의로 추켜세웠다. 필자는 속으로 ‘이 자식아, 내가 아니고 네가 명의다’라고 외쳤다.

아무리 의사가 열심히 치료해도 환자가 따라오지 않으면 백약이 소용없다. 모든 병이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탈모치료를 할 때는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끈기와 노력이 필요하다. 좋아하는 술과 담배도 끊고 열심히 운동해준 P 후배야말로 진정한 명의인 것이다.

 

홍성재 의학박사·웅선의원장·의학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