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FNF의 김치 브랜드 ‘종가집’은 일본인의 식문화를 고려한 현지화 전략으로 한식의 세계화를 실현하고 있다. 사진은 최근 서울 인사동에 오픈한 한식문화 체험공간인 ‘김치월드’.


‘글로벌화’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다. 우리 고유의 문화라고 여겨졌던 ‘한식’도 예외일 수는 없다. 프랑스, 일본 등 많은 나라들은 자국의 음식과 식문화를 해외에 알리면서 농식품 수출을 확대하고 국가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있다.

또 식품산업은 문화·유통산업 등으로의 파급 효과도 크다. 비빔밥·고추장·김치·막걸리 등 우리 고유 먹거리의 세계화의 필요성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이러한 ‘한식의 세계화’가 다시금 광범위하게 회자되고 있다. 한국의 멋·맛·미를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던 G20 정상회의를 통해 담론은 더욱 구체화됐다.

민간 부문에서 시작된 한식의 세계화는 ‘정부 지원’이라는 실질적인 동력을 기반으로 제대로 시동이 걸리는 모습이다. 2008년 10월 정부에 의해 ‘한식의 세계화’가 선포된 이래, 2009년 한식세계화추진단이 발족된 데 이어 올 3월엔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초대 이사장을 맡은 한식재단이 출범했다. 관련 정부 정책도 농림수산식품부를 중심으로 일원화되면서 최근 적극성을 띠고 있다.

한식당 리뉴얼에 R&D 센터까지

특히 한식재단이라는 실질적 집행기구의 탄생으로 정부 한식의 세계화 사업은 한층 탄력을 받을 것이란 전망이다. 그간 뚜렷한 ‘알맹이’가 없었던 한식 세계화의 실현 가능성이 가시화되며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업계도 여기에 발을 맞추어 나가고 있다. 주로 외식업체를 중심이 됐던 한식의 세계화 열풍이 식품·호텔업계로 확산되고 있다. 롯데호텔은 G20 회의를 앞두고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서울의 한식당 ‘무궁화’를 리뉴얼 오픈했다. 지하 1층에서 호텔 최고층인 38층으로 확대 이전하며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선보였다. 준비 과정만 1년. 약 50억 원을 투자해 대대적인 리노베이션과 새로운 콘셉트 정립을 시도했다.

G20정상회의를 계기로 롯데호텔과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호텔이 새로운 콘셉트로 한식의 세계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확 바뀐 무궁화는 최고의 품격과 전문성을 갖춘 ‘국가대표 한식당’을 표방하고 있다. 옛 반가 상차림에 기반한 모던한 터치가 돋보이는 정통 한식 코스요리를 비롯해 한식과 어울리는 40여종의 와인 콜렉션, 와인과 전통차 소믈리에의 세심한 음료 매칭 서비스 등을 제공한다.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호텔은 지난 11월1일 업계 최초로 한식 세계화를 위한 R&D 센터를 오픈했다. 워커힐 호텔의 한식 세계화를 위한 노력은 오래 전에 시작됐다. 한식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남달랐던 SK그룹 고(故) 최종현 회장의 지시를 받아 업계 최초로 1989년 호텔 내 김치 연구실을 개설했다. 또 특1급 호텔 중 유일하게 ‘온달’과 ‘명월관’ 2개의 한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이춘식 R&D센터 팀장은 “단순히 한식 메뉴를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메뉴 전체의 콘셉트와 한식 조리와 운영 매뉴얼, 주방 시스템과 고객 만족도 모니터링까지 ‘한식의 세계화를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호텔신라도 총주방장 필두로 식자재 고급화, 메뉴 개발 등을 장기적인 프로젝트로 ‘한식의 세계화’를 물밑에서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식품업계에선 CJ그룹이 눈에 띈다. CJ그룹은 CJ제일제당과 외식 전문기업 CJ푸드빌이 중심이 돼 한식문화를 직접적으로 해외에 알리고 있다. 한식의 기본 소스인 고추장, 된장 등 전통 장류를 수출하고 있는 CJ제일제당은 최근 해외 현지화에 포커스를 맞췄다. 그 일환으로 미국인 입맛에 맞는 고추장을 개발해 해외 시장을 적극 공략하고 있다.

CJ푸드빌은 해외에 현지화 된 한식 레스토랑을 열거나, 해외 유명 인사들에게 전문화된 한식 요리를 선보이며 한식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비비고(bibigo)’는 CJ표 한식 세계화의 첨병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한국의 대표 음식이자 건강식인 ‘비빔밥’을 대표 메뉴로 기호에 맞게 밥, 소스, 토핑을 선택할 수 있는 신개념 한식 레스토랑인 비비고는 맥도널드와 같은 퀵 서비스 레스토랑(QSR)을 도입, 글로벌화에 고삐를 바짝 죄고 있다.

지난 8월 중국 베이징, 9월 미국 LA에 이어 오는 12월에는 싱가포르에 문을 연다. CJ푸드빌은 2015년까지 전 세계에 1000개의 매장을 오픈한다는 계획이다. 대상FNF의 김치 브랜드 ‘종가집’은 한식의 세계화를 목표로 일찌감치 해외시장을 공략했다.

일본에서의 성과는 독보적이다. 일본시장에서의 종가집 김치 소비자는 90% 이상이 일본 현지인이다. 이는 한국김치의 맛을 살리되, 일본인의 식문화를 고려해 오징어, 표고버섯 등을 첨가한 김치를 출시하는 등 철저한 현지화 전략을 구사한 결과다.


최근에는 인사동에 한식문화 체험공간인 ‘김치월드’를 오픈,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김치와 한식의 매력을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그러나 아직 한식의 세계화를 실현하기 까지는 가야 할 길이 멀어 보인다.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도 정부의 한식 세계화 사업은 집중 철퇴를 맞았다.

조진래 한나라당 의원은 농식품부 국감을 통해 한식재단을 한식세계화사업 추진기관으로 지정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지 않아 정부 위탁사업 운영의 효율성이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국회 농식품위 소속 민주당 김효석 의원 역시 최근 예산의 효율성에 대해 문제 제기를 했다. 농식품부가 추진하는 한식세계화사업의 2011년도 예산은 올해 예산보다 약 28.6%가 증가한 310억 원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예산 심의 결과 늘어난 규모에 비해 한식연구 등 사업 내용은 종합적인 계획이나 로드맵 없이 추진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식의 계량화·표준화도 시급하다. 양향자 세계음식문화연구원 이사장은 “우리 음식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우선 제대로 된 한식이어야 하고, 전통적인 맛을 지켜 내기 위한 기준 설정과 표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해외 한식당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적합한 영어 명칭 마련, 표준화된 조리법, 국제화된 서비스 등이 필수적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전민정 기자 puri21@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