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해례본

어느덧 녹음이 푸르른 6월이 되었다. 6월은 우리 민족의 아픈 날이 많은 날이다. 6월 1일 의병의 날을 시작으로 하여 6일 현충일, 10일 민주항쟁 기념일을 거쳐 25일 한국전쟁까지도 6월 달력에 포진해있다. 하지만 단순히 아픈날이라고 하기엔 부족하다. 아픈 역사임에는 분명하지만 그런 고난의 상황에서도 조국을 위해 자신의 목숨도 아끼지 않고 몸바쳐 투쟁하신 분들의 안녕을 기리는 날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나라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신 분을 기리고 그 분의 성과를 소개하는 전시가 있어 이곳에 소개해보고자 한다.

 

‘간송(澗松) 전형필’. 미술에 큰 관심이 없더라도 간송 미술관이나 간송 전시회에 관해서는 한번쯤 들어봤을 정도로 엄청난 국보와 규모를 자랑한다. 우리나라 첫 사립미술관으로서 거부의 자식으로 태어난 간송 전형필은 위창 오세창 선생을 만나 우리나라의 민족혼이 담긴 문화재들이 외국으로 무자비하게 유출되는 것을 막겠다는 일념하나로 자신의 전재산을 쏟아부어 우리의 금쪽같은 문화재들을 지켜낸 분이다.

 

그런 간송의 뜻을 기려 간송이 수집한 보물을 매년 봄, 가을 2차례 ‘빛나는 보물을 모아둔 집’이라는 뜻의 현 간송미술관으로 이름을 바꾼 보화각에서 전시했었는데 올해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로 장소를 옮겨 보여준다. 평소에는 각 전시마다 단 2주동안만 전시해서 굉장히 긴 대기시간과 많은 사람들로 인해 불편을 초래했었지만 올해는 1,2부 모두 각각 2달 반이라는 파격적으로 긴 기간동안 전시하여 이런 불편함을 해소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고려청자의 정수를 보여주는 국보 제 68호 <청자상감운학문매병>, 국보 제 74호 <청자상감연지원앙문정병>을 비롯하여 진경산수화의 창시자인 겸재 정선, 정조시대 최고의 화원인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석봉 한호, 추사 김정희 등 기라성같은 우리역사 최고의 예술가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또한 이렇게 수준높은 문화재를 알아 볼 수 있었던 간송의 안목을 알려주는 간송의 서예작품들 뿐 아니라 역적집안에서 태어난 설움을 예술을 통해 아름다운 그림으로 승화시켰지만 좋지않은 보관상의 문제로 인해 거의 바스라지기 일보직전이었던 작품을 사서 산 값보다 더욱 비싸게 수리했다고 알려져 간송의 문화재 사랑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심사정의 <촉잔도권>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전시의 백미는 간송 스스로도 자신의 수집품 중 최고라고 생각했던 국보 70호 <훈민정음 해례본>이다. 훈민정음은 크게 ‘예의’와 ‘해례’로 나뉘는데 예의는 세종이 직접 지은 것으로 한글을 창제배경과 한글의 사용법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다. 예의는 너무 간단해서 <세종실록>이나 <월인석보> 등에도 실려있었지만 해례는 그 행방이 묘연했다. 간송은 눈물겨운 노력을 통해 훈민정음 해례본을 얻게 되었고 이를 통해 우리는 한글이 인체의 발음기관을 상형하여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한국 전쟁에 피난갈때도 가지고 가서 배게속에 넣어 잠들정도로 아꼈다는 일화에서 간송의 지극한 우리문화재 사랑과 그의 놀라운 안목에 그저 감탄할 뿐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처럼 우리의 얼과 정신은 계승되어야 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그 얼과 문화의 집약체를 문화재라고 생각한다. 6월이 다 가기 전, 우리 조상들의 고고했던 정신세계를, 또한 그 세계를 우리에게도 보여주고 싶었던 간송의 노력을 한번쯤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1부 간송 전형필은 올해 6월 15일까지, 2부 보화각은 7월 28일부터 9월 28일까지 모두 DDP 배움터 디자인박물관 2층에서 전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