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이야기를 풀어내니 행복이 왔습니다”

30여 년간 중학교 생물교사로 살아온 김원일(69세) 씨. 정년퇴직 후 숲해설가로 활동하면서 우연히 보게 된 동물해설사 교육생 모집 공고가 그의 인생을 바꿔놨다. 한 달 반 정도의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필기시험과 면접 및 시연평가를 거쳐 서울대공원 동물해설사 1기로 최종 합격한 그는 지금, 예순아홉의 나이에 동물해설사로 승승장구 중이다.

ⓒ이코노믹리뷰 박지현 기자
수업이 시작되자마자 손을 드는 아이들로 교실은 시끌벅적해졌다. 여기저기서 질문이 쏟아졌다. “엄마 표범이 왜 아기 표범을 물고 가는 거예요?” “엄청 빨리 달리고 덩치가 이만한 동물이 뭐예요?” “몸 색깔이 흰 사자도 있어요?” TV에서 동물 다큐멘터리가 방송된 다음 날 생물시간이면 아이들은 어김없이 선생님에게 저마다 궁금한 것을 풀어놨다.

1970년대 초반, 학생들로 가득한 서울 한양중학교 교실. 그곳에서 선생님은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아이들이 얘기하는 그 동물 프로그램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볼 수 없었다고 하는 게 맞겠다. 그때만 해도 텔레비전이 있는 집은 ‘잘사는 집’에 속했다. 교사 월급으로 비싼 텔레비전은 언감생심. 그렇다고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반짝거리며 선생님의 대답을 기다리는 아이들을 외면할 순 없지 않은가.

변변한 수업자료가 없어 늘 고민이었던 선생님은 TV를 볼 수 있는 전파상, 만화가게 등을 전전하며 동물 프로그램을 시청했고 학습물을 만들어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개월에 걸쳐 월급을 모아 결국 어렵사리 중고 TV를 장만했다. 당시 생물선생님이었던 김원일(69세)  씨는 “틀에 박힌 교과서에서 접하기 힘든, 동물의 이모저모를 보여줄 수 있는 현실적이고 체험적인 수업을 하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올해 나이 예순아홉. 김 씨가 동물해설사로 인생 2막을 열게 된 가장 원초적인 계기를 찾자면 이 무렵부터다.

처음엔 숲해설가로 시작하다

30여 년간의 중학교 생물교사 생활을 갈무리하고 2006년 2월 정년퇴직한 뒤, 첫 직업은 숲 해설가였다. 김 씨는 젊었을 때부터 분재에 관심이 많았다. 분재(盆栽)가 뭔가. 나무나 화초를 화분에 심어 줄기와 가지를 아름답게 키우는 작업이다. 화분에 터 잡은 나무는 신기하게 자연 속에 있던 모습처럼 자란다.

그는 오래전부터 집 옥상에 화분을 두고 나무들을 키웠다. 주말이면 나무와 화초를 구입하거나 관련 서적을 구입해 공부했다. 분재 전문가들을 찾아다니며 지식을 쌓기도 했다. 교직에 있을 때는 20년 이상 분재 실무경력에 필기시험까지 통과해야 하는 국가공인 분재전문관리사 자격증도 땄다. “직장 동료들은 모두 제가 퇴직 후 분재전문점을 차릴 것으로 예상했죠. 그런데 알고 보니 숲을 해설하는 일이 있더라고요. 자연친화적인 제게 딱 맞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퇴직한 뒤 서울시 과학전시관에서 화훼관·생태관·물놀이 체험장 등에서 과학 원리를 설명하는  자원봉사에 지원해 활동하던 김 씨는 2007년부터 관악시니어클럽에서 숲생태해설사로 일했다. 그러다가 지인으로부터 우연히 서울동물원에서 동물해설사를 모집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됐다. 2011년 12월의 일이었다.

ⓒ이코노믹리뷰 박지현 기자

나도 동물해설사 해볼까

동물해설사라고? 숲해설가, 역사해설가, 문화해설가, 과학해설가 등은 있지만 언뜻 봐도 생소한 직업이었단다. 동물해설사는 동물원을 찾은 시민에게 동물의 특징과 생태 등을 이해하기 쉽도록 재미있게 설명하는 사람이다. 서울대공원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동물전문해설사 양성과정을 개설한다는 소식에 그는 ‘나도 동물해설사 해볼까’라고 생각하며 묘한 흥분을 느꼈다.

“주5일제 수업 전면 시행을 맞아 체험교육을 확대하기 위해 전문 교육강사로 활동할 동물해설사를 모집한다는 것이었어요. 전직이 생물교사인지라 동물 이야기라면 자신 있었어요.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죠.”

2012년 2월, 그는 서울대공원 홈페이지에서 동물해설사 교육생 모집 공고를 보고 곧바로 지원했다. 특별한 자격 제한은 없었다. 총 1280명이 지원했다. 지원자들의 절반 가까이가 동물에 관심이 많거나 숲해설가로 활동하던 이들이었다고 한다. 개중에는 자녀의 학습을 돕다가 아예 동물해설사로 나서려는 주부, 은퇴 후 소일거리로 즐기려는 퇴직자도 있었다. 이 가운데 김 씨를 포함해 100명이 서류전형에 통과됐다.

교육은 한 달 반가량 진행됐다. 서울동물원의 역사, 시설현황 및 안전, 포유류·조류·곤충류 등 야생동물들의 생태, 교수법, 서비스 마인드 및 기본예절, 프레젠테이션 등을 배웠다. 교육비는 무료였다. 교육 이수 후 필기시험과 면접, 실기시험인 시연평가를 거쳐 최종 44명의 동물해설사가 선발됐다. 김 씨 역시 합격자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결코 그냥 움켜쥔 행운의 네잎클로버는 아니었다. “교재가 백과사전만큼이나 두껍더라고요. 그걸 다 공부하려니 어우~ 만만치 않던걸요. 교직 경력과 개구리, 물고기, 붕어 등을 해부했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나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나 봐요. 생물 분야 전공자도 다수 떨어졌다고 하더라고요. 그만큼 힘든 공부였고 어려운 시험이었어요.”

교사 출신이란 이점이 있을 법한데 그는 여러 사람들 앞에서 설명하는 시연평가가 가장 어려웠던 교육이라고 털어놨다. 동물원 관계자가 시범을 보이면 그걸 자기 나름대로 소화해 쉽고 재미나게 풀어서 설명하는 식이었다. 김 씨의 해설 주제는 조류인 홍학. 홍학의 부리가 물속 먹이를 먹기 좋게 생겼다는 걸 설명해야 했다. 그는 관람객이 이해하기 쉽도록 알려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머리빗이었다. 머리빗 두 개를 겹쳐 홍학의 부리 형태와 비슷한 구조를 만들어 설명해 평가단으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았다.

아이들과 동물로 교감하다

2012년 4월, 그는 서울동물원에서 동물해설사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주요 활동 분야는 어린이동물원 내 동물교실에서 동물 해설과 교육 준비, 동물원 투어 해설, 맹수사·유인원관·열대조류관 등 서울동물원 각 동물사에서 동물들의 생태 설명, 곤충관에서의 곤충 해설 및 곤충 사육 보조 등이었다. 그가 맡은 주 업무는 장수풍뎅이, 타란툴라, 전갈, 지네 등 국내외 곤충 및 절지동물에 관한 해설이었다.

서울동물원으로부터 해설 요청이 들어오면 활동에 들어간다. 해설할 때 필요한 교재도 직접 준비한다. 인터넷이나 책에서 동물 및 식물 사진 등을 발췌해 프린트하고 코팅까지 해서 정성껏 제작한다. 약상자 등 폐품을 활용해 나비, 잠자리, 메뚜기 등의 표본도 만들어 활용한다.

동물과 식물, 과학 영역을 ‘스리슬쩍’ 넘나들며 가르치고 설명하는 공력이 만만치 않지만, 처음엔 그에게도 애로점이 있었단다. “유아와 어린이 눈높이에 맞게 설명을 해야 한다는 게 가장 어려웠어요. 전문용어, 학술용어를 그대로 사용할 순 없잖아요. 학교에서 어느 정도 어려운 용어도 제법 소화해내는 중학생만 가르치다가 나이가 어린 아이들을 처음 대하려니까 많이 낯설고 어색하더군요.”

평소 아이들과 자주 접하고 어린이 프로그램을 보며 그 또래의 언어 및 분위기를 몸소 익히고,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들 수준에 맞게 설명할 수 있는 용어와 해설 방법을 모색하는 데 상당한 노력과 시간을 투자했다.

그는 1일 3시간 근무하고 3만원의 활동비를 받는다. 활동 횟수는 일주일에 평균 두 번 정도. 4~6월과 9~10월이 성수기에 해당되는데 지난달에는 9번을 해설사로 나갔다. 사실 동물 해설이 밥벌이와는 좀 거리가 멀다. 돈을 많이 버는 분야는 아니라며 김 씨는 웃는다. 그래도 경제력은 크게 걱정하지 않는 편이다. 연금 덕분에 먹고살기엔 괜찮단다.

동물해설사에 대해 그는 “교사나 공무원을 지낸 이들이 은퇴 후에, 숲해설가들이 생태 지도 연장선상에서 하기에 괜찮은 직업”이라고 말했다. 크게 생활비 걱정 없이 전문성을 갖고 자립할 수 있는 일이며, 노후를 의미 있고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일이라는 것. 다만, 동물해설사 분야는 이제 시작 단계이며 국내에 동물원이 많지 않아 활동 기회가 아직 많지 않다는 게 단점이라고.

40여 년 전 품었던 꿈을 찾다

ⓒ이코노믹리뷰 박지현 기자
‘틀에 박힌 교과서의 내용이 아닌 생생한 체험학습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다.’

40여 년 전, 중고 TV를 장만하면서 품었던 김 씨의 ‘그 꿈’은 인생 2막에 실현된 듯하다. 꾸준히 일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원하던 일을 하니 행복하다고.

“동물원이야말로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최고의 휴식 공간이자 자연 학습장’이에요. 이런 동물원에서 동물 해설을 통해 어린이와 청소년에게는 환경과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는 기회도 주니, 얼마나 가치 있고 보람 있는 일이겠어요.”

동물 해설 일이 없을 때는 국립과천과학관 자원봉사, 관악시니어클럽 숲생태해설 등으로 김 씨의 일주일 스케줄은 꽉 차 있다. 퇴임하고 나서 어떻게 7년이 지났는지 모를 정도로 늘 바빴다는 김 씨. 건강은 어떻게 지키는지 궁금했다.

“날마다 할 일이 있다는 게 제 건강 비결이에요. 쉴 새 없이 움직이고 활동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운동이 되는 거죠. 홍학, 기린, 사막여우, 미어캣, 곤충 등 여러 동물을 해설하면서 동물원에서 걷게 되는 거리만도 2시간 동안 2km나 되는 걸요.”

그에게 인생 후반전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김 씨는 “단지 좋아하는 것만으로는 안 돼요. 관심 분야에 대해 확실하게 배워야 온전한 내 것으로 만들 수 있고 그래야 기억에도 오래 남는 법이죠”라고 강조했다. “동물해설사가 하루아침에 되는 건 아니에요. 한 달 반 정도 교육을 받는다고 해서 누구나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니란 얘기죠. 관련 지식을 쌓고 경험하고 자신만의 해설 방법을 연구하는, 무한한 관심과 부단한 노력이 뒷받침돼야 해요.”

그는 자신의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계속 동물해설사로 활동하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앎’의 행복과 기쁨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한다. 그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동물원의 작은 무대를 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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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성공노트

자본금

서울동물원 동물전문해설사 양성 과정은 교육비가 무료. 특별한 자격 제한이 없으며 동물을 좋아하고 동물을 설명하는 것에 관심이 있는 성인이라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음.

준비기간 및 과정

서울동물원 동물해설사 교육생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 서울동물원의 역사, 시설현황 및 안전, 포유류·조류·곤충류 등 야생동물들의 생태, 교수법, 서비스 마인드 및 기본예절, 프레젠테이션 등에 대해 한 달 반 정도 교육 이수 후 필기시험과 면접, 실기시험인 시연평가를 거쳐 서울대공원의 동물해설사로 선발됨.

성공 노하우

생물교사 경력과 숲해설가 활동 경험을 살리고 동물해설사 양성 교육과정을 무한 반복해서 공부한 것이 시험을 통과, 동물해설사로 최종 합격 및 선발될 수 있었던 비결. 무엇보다 관람객이 이해하기 쉽도록 재미있게 설명하기 위해 자신만의 해설 노하우를 고안해 활용함. 해설 대상자의 눈높이에 맞는 맞춤 해설에 중점을 둠. 가급적 표준어를 사용하고 표현력이 좋아야 좋은 해설사로 평가받을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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