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코노믹리뷰 박지현 기자]

‘은퇴하면 시골에 가서 농사나 지어야겠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 말 속엔 세상에서 가장 돈 안 들고 여유롭게 노후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비결이 농촌이라는 두 글자에 숨겨져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이 묻어 있다. 하지만 실제 귀농이나 귀촌을 한 경험자들은 그런 말을 함부로 하면 안된다면서 오히려 손사래를 친다. 박인호(50)씨도 그런 케이스다. 박씨는 귀농·귀촌을 결심하려면 무엇보다 신중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부동산전문기자에서 은퇴 후 반귀농·반귀촌 생활을 하며 또 다른 삶의 묘미를 찾고 있는 박씨의 인생 후반전을 들여다보려 강원도 홍천으로 떠났다.

봄비가 대지를 촉촉하게 적신다. 박씨를 만나기 위해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 물걸리를 향해 경춘도로를 달리다보니 길가는 온통 연한 초록색으로 뒤덮여있다. 빗발이 마치 초록색 물감인양 자연을 더욱 선명한 색으로 물들였다. 강원도는 겨울이 물러간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한다. 기온이 낮아서인지 홍천에 가까워질수록 길옆으로 펼쳐진 산속엔 아직 진달래며 벗꽃이며 개나리 같은 봄꽃들이 바람의 리듬을 타며 흔들거리고 있다.

박씨가 일러준 대로 주소지를 내비게이션에 입력해 달린지 2시간 정도가 지나자 당초 목표한 지점인 홍천 동창마을에 다다를 수 있었다. 동창초교를 지나고 물걸리 사지쪽으로 난 농로를 조심스럽게 달려 올라갔더니 박씨의 집이 나온다. 그의 집은 물걸리에서도 가장 깊숙하고도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가 운영 중인 인터넷 카페 ‘박인호의 전원별곡’(http:// cafe.naver.com/rmnews)의 배경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그의 카페는 현재 회원수가 2600여명을 넘어섰다.

귀농 3년차에 벌써 2권의 책 출간박씨는 우산을 받쳐 들고 현관 앞에 마중나와 있었다. 반갑게 인사를 하니 ‘먼 곳까지 왔는데 대접할게 없다’며 미안해한다. 전형적인 시골 인심이다. 그가 도시에서 언론사 데스크를 했던 사람이었다는 게 상상이 안 될 정도로 이미 전원생활에 푹 빠져든 모습이다.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지현 기자]

비가 와서 얼른 집안으로 들어갔다. 현관으로 들어가는 입구 계단에 흙이 묻어 깨끗하게 씻어 놓은 장화들이 너덧 켤레가 걸려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며칠 전 밭을 갈고 감자와 옥수수를 심었단다. “귀농·귀촌에 대해 전문가로서 상담을 하고 정보를 주기 위해 본격적인 농사는 안 짓더라도 농촌생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농사짓는 방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는 요즘 홍천농업기술센터에서 호박재배와 산채재배 방법 등을 배우고 있다고 귀띔한다.

집안으로 들어가자 그는 명함 대신 두 권의 책을 내민다. 귀농한지 만 3년차, 실제로는 1년 7개월 동안 그가 해마다 귀농·귀촌을 주제로 낸 저작물들이다. 첫해에 낸 책은 부동사전문기자로서 전원주택과 재테크에 대한 지침서 성격으로 쓴이다. 그리고 지난해엔 ‘테마로 본 전원명당’이란 부제가 붙은를 출간했다. 이 책은 그가 전국 35개 지자체, 54곳을 직접 발로 누비면서 보고 느낀 것을 쓴 것이다.

“은퇴 후 전원생활을 하겠다고 결심하면서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를 고민했습니다. 저는 원래 글을 쓰는 사람이고 부동산 전문기자로 살아왔으니까 그 분야의 전문성을 살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귀농·귀촌과 접목해서 뭔가를 해보자. 그래서 책을 냈고 앞으로 한 10년간 매년 1권씩의 책을 내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와 책을 중심으로 ‘전원별곡’이란 단어와 자신의 이름 석자 ‘박인호’를 결합해 ‘박인호의 전원별곡’을 만들어 브랜드로서 가치를 높여나간다는 구상이다. 그는 전원생활을 잘 하기 위한 전략이라며 웃음을 지어보였다.

인생2막의 여유 위해 22년 기자 생활 자발적 은퇴그는 언론사에서 22년간 기자생활을 했다. 내외경제에서 편집기자로 일을 시작해 8년간 종사하다 편집기술발전과 업무환경 변화로 인해 편집부의 역할이 축소된다고 생각이 들자 그는 조금 더 비중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평소 관심 있던 분야인 부동산기자가 됐다. 은퇴하기 직전까지 2년간 데스크도 봤다.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지현 기자]

“1989년에 기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당시엔 기자생활이 편했지요. 월급도 많았고. 매일 새벽 4시 반이면 파주에 있는 집에서 나와서 광화문으로 출근을 합니다. 6시전에 도착해서 조간 다 훑어보고 데스크 회의하고 업무를 보다가 정상적으로 퇴근을 해도 오후 8시30분이 됩니다. 만약 약속이 있거나 뭔가 일이 더 있을 때는 퇴근 시간이 밤 12시, 1시를 넘어가죠. 게다가 직급이 올라갈수록 책상에 앉아 회사에 대해 이것저것 고민할 것도 많고 어떨 땐 ‘이게 내가 뭐하나’ 싶을 때도 있구요. 그래서 평소에 후배들에게 50세가 되기 전에 은퇴할거라고 얘기를 많이 했다고 합니다. 그 목표에 비해 은퇴가 1년 앞당겨졌지만 어찌보면 그 말을 지킨 셈이 된 거죠.”

2010년 그는 직장을 떠났다. 그렇지 않아도 2011년쯤 은퇴를 한다고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회사에서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그는 희망퇴직자에 해당되진 않았지만 그 시점을 계기로 회사에 사표를 냈다. 그는 미리 은퇴를 대비해 이미 2008년경 홍천에 자신이 노후를 보낼 집터와 땅을 사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2007년도부터 땅을 사기 위해서 곳곳을 다녔습니다. 홍천 지금의 집터를 그때 봤는데 아내가 ‘느낌이 좋다’고 좋아하더라구요. 땅값도 당시 평당 10만원 정도였고 남향에다 재테크적으로도 손해 보지는 않을 것 같다는 판단이 들어서 구입했죠.”

그는 집터를 포함해 농지까지 약 5885㎡(1750여 평)의 땅을 구입했다. 가격은 약 1억 6000만 원 정도가 들었다. 면적이 약 90㎡(28평 규모)정도 되는 28평 규모로 집을 짓는데 건축비 약 9400만원에 기타비용까지 합하면 약 1억 4000만원 정도가 소요됐다. 전원생활을 위해 그가 쓴 비용은 약 3억6000만원 수준이다.

“여윳돈으로 5000만원 정도가 있었고 앞으로 인생2막을 펼쳐갈 공간이기 때문에 조금 ‘지른다’는 생각으로 대출을 받아서 비용을 충당했습니다. 부채가 아직 남아있기는 하지만 크게 부담이 되는 건 아닙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은퇴 후 귀농·귀촌을 하려는 사람들도 대략 이 정도의 비용을 감안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귀농·귀촌하려는 사람에겐 만만치 않은 액수죠. 그렇기 때문에 은퇴하고 2막의 경우엔 땅을 구입할 때 재테크적인 측면을 꼭 고려해야 합니다. 만약 땅을 평당 10만원에 구입했다면 적어도 나중에 팔 땐 최소 15만원에 판매할 수 있는 그런 땅을 찾아야 하는 거죠.” 그렇다면 어떤 점을 고려해야 하는 것일까. 그는 우선 지역을 잘 선정하라고 조언한다.

두 번째는 연고이다. 전원행을 택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귀소본능처럼 자기의 고향땅에 정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꼭 고향 땅일 필요는 없다. 산행이나 여행길에서 한눈에 꽂힌 땅이 있다면 궁합이 맞는 명당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박씨는 경북청도 출신이지만 초등학교를 춘천에서 나왔고 군대생활도 화천에서 했기 때문에 ‘강원도’와 나름 인연이 있었다.

그런 중 그는 우연히 지인으로부터 ‘홍천’이 전원생활하기에 좋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이 지역을 알아보던 중 지금의 땅에 정착하게 됐다. 그가 지금 사는 물걸리는 홍천강 상류에 위치해 공기도 맑고 물도 좋은 동네로 알려졌다. 주변 풍광이 수려하지만 외지인들이 많이 찾는 요란한 관광지는 아니다. 최근엔 근처에 고속도로도 뚫리면서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재테크적인 요인도 있다. 그 영향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의 땅은 현재 가격이 두 배정도 오른 상태라고 살짝 귀띔했다.

“농촌생활은 로망아닌 현실 신중히 접근하라”“인생2막을 염두하고 귀농이나 귀촌, 전원생활을 하려는 많은 분들이 대부분은 재산을 처분해 내려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부분 줄여서 오는데 2막으로 전원생활을 하려면 연금소득과 임대소득 없이는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땅을 고를 때도 재테크를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지요.” 그는 무분별하고 심사숙고 하지 않은 귀농·귀촌을 경계한다. 특히 귀농에 대해선 심사숙고할 것을 강조했다.

“귀농은 농촌에 와서 농사를 통해 수익을 남기는 것을 말하고 귀촌은 말 그래도 농촌에서 사는 겁니다. 귀촌의 경우엔 대부분이 펜션이나 다른 사업을 병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2막의 경우엔 특히 도시에서 쌓아왔던 자신의 전문성을 활용해 먹고 살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해둬야 합니다. 전원 생활하는 분들의 고민 중 대부분이 그 부분이고 저 역시 지금도 지속적으로 고민하는 부분입니다.”

그는 현재 ‘반귀농·반귀촌’ 상태라고 말했다. 도시에서 하던 일을 하면서 농사는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다. 그는 지금의 ‘귀농’ 환상에 절대 속지 말라고 경고한다. 귀농은 로망이 아니라 현실이기 때문이다. “처음에 와선 한 2개월은 정말 아무 생각없이 좋기만 했어요. 그런데 그 기간이 지나고 나니 마음이 초조해 지기 시작하더라구요. 먹고 살 것도 생각해야 되고 매일이 똑같은 일상으로 반복되면서 그에 따른 무료함 초조함이 생겨난 거죠.”

그는 전원생활을 위해선 ‘마음을 비우라’고 말했다. 도시의 것들을 하나둘씩 버릴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도시에서 1만원의 가치가 농촌에선 5만원의 가치로 느껴집니다. 돈을 쓸 일이 거의 없지요. 하지만 도시생활을 하다온 사람들은 단번에 도시의 생활 패턴을 버릴 수 없습니다. 여기 어르신들은 50만원이면 한 달을 살지만 도시에서 오신 분들은 그러기 어렵죠. 천천히 버려야 할 것들입니다.” 익숙해야져야 할 것도 많다.

“지금 계절이 되면 농촌에선 운전을 할 때 차창을 꼭 닫아줘야 합니다. 안 그러면 분뇨 냄새가 코를 찔러 견딜 수가 없습니다. 여름이면 모기며 쥐, 뱀 등이 극성인데 그것들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전원생활을 할 수 없죠.”

만 3년차에 접어든 그는 이제 전원생활에 꽤 익숙해졌다. 거름냄새도 불편하지 않고 사방이 적막한 자연의 침묵도 무료하거나 심심하지 않다. 여름이면 극성인 모기도 귀찮지 않고 뱀을 봐도 놀라지 않는다.

그래도 아직 버릴게 더 많다는 박씨. 하지만 지금 그는 소박하지만 자연이 주는 무한한 축복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느낀다. 그는 농촌생활을 시행착오를 최대한 줄일수록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 농촌에 오기 전 사전에 공부를 많이 하라고 조언했다.

그는 올해에도 책을 쓸 예정이다. 봄·여름·가을엔 전국 곳곳을 누벼 취재를 하고 겨울에 눈으로 운신할 수 없을 때 집에서 책을 쓴단다. 올해는 무엇보다 귀농·귀촌과 관련된 ‘사람’이야기를 다루겠다는 결심이다. 농사도 천천히 시작하려고 한다. 친환경 농사를 위해 밭에 잡풀을 그대로 놔둔 곳도 있다.

“남들이 볼 땐 독특한 방식이겠지만 폐쇄적인 생활을 하는건 아닙니다. 전원생활은 자기시간을 주체적으로 쓸 수 있고 아름다운 자연의 축복을 누릴 수 있다는 면에서 매우 매력적입니다. 제가 베이비붐 세대인데 앞으로 농촌은 변할 것입니다. 더 많은 도시의 인구가 농촌으로 내려오겠지요. 그런 날을 위해 저는 귀농·귀촌 전도사, 길잡이 역할을 묵묵히 하고자 합니다.”

김은경 기자 keki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