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조세라고 하죠. 세금은 아닌데 마치 세금처럼 느껴지는. 과거 권위주의 정권시절에 각종 성금이 기업들에게 준조세로 비쳐졌다면 국민연금이 요즘 국민들에게 그렇게 느껴지는 모양입니다.” “뼈 빠지게 일해서 의료보험에 국민연금에 갑종근로소득세까지 세금 떼고 남는 게 없다. 매달 꼬박꼬박 넣으면 뭐하나. 나중에 제대로 받지도 못할텐데.” 이렇게 푸념하는 월급쟁이들이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사실 압축 고도성장을 거치면서 한강의 기적을 이룬 한국경제의 후유증 중에 하나가 높은 물가 상승률입니다. 당장 대학생 등록금이 그렇고 서민들이 ‘넘사벽’으로 느끼는 집값도 고물가의 후유증을 보여주는 사례들입니다.

그러다보니 나중에 돈값이 떨어져 실제 받는 돈은 쥐꼬리만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국민연금이 곧 바닥날 것이라는 불안한 마음도 한편으로 찜찜한 구석입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그럴까요. 먼저 기금 고갈의 문제부터 보죠. 2007년 정부가 밝힌 국민연금 고갈시점은 2060년입니다. 다만 최근들어 저출산의 문제 등으로 인해 이 시기가 10년 정도 앞당겨질 것이라는 논란은 있습니다.

기금에서 거둬들이는 보험료보다 지급하는 연금총액이 더 많아지는 재정적자 시점도 2044년으로 추정됩니다. 2060년 고갈을 기준으로 80세까지 생존한다고 가정할 경우 현재 31세인 국민이 연금을 받는데는 지장이 없다는 얘깁니다.

인플레이션에 따른 쥐꼬리 연금 논란도 과장된 측면이 있습니다. 정부는 연금보험금을 산정할 때 매년 물가상승률 만큼을 반영해 지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같은 문제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래서 ‘국민연금을 어떻게 잘 운용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느냐’ 입니다. 국민연금은 연금공단 내에 있는 기금운용본부에서 맡고 있지만 별도의 기금운용위원회가 있어서 1년 단위로 투자대상과 투자원칙 등 가이드라인을 제시합니다.

문제는 운용위원 20명 중에 정부측 당연직 차관 이상 인원이 6명에 달한다는 점입니다. 위원장도 보건복지부 장관이 맡고 있습니다. 전문성에 대한 논란이 불가피한 구조라는 얘기입니다.

국민연금은 이미 글로벌 국부펀드에서도 손가락 안에 드는 대형 규모로 성장했습니다. 지난해말 국민연금 자산은 324조원이며 오는 2015년에는 565조원으로 커질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자산 규모를 보면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일본의 정부연금투자기금(GPIF) 운용 규모 1조364억달러의 1/3 수준이며 세계적인 국부펀드인 노르웨이 국가연기금(5605억달러)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하지만 아부다비투자청(3420억달러)이나 중국투자공사(CIC·3324억달러)와는 비슷한 규모로 성장했고 싱가포르투자청(GSIC·2200억달러)보다도 덩치가 커졌습니다.

운용위원회가 더 전문적인 집단으로 구성돼 기금 운용의 독립성을 확보하고, 기존의 임금체계와 다른 전문운용인력 수혈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연봉 100억원을 받는 펀드매니저가 있어야 한다는 얘깁니다.

국민연금이 주식투자 규모를 늘리겠다고 발표한 것 때문에 잠시 시끄럽기도 했습니다. 연금이 향후 5년간 수익률 목표 6.5%를 달성하기 위해 기존 20%대인 주식투자 비중을 30%선으로 높이는 대신 채권 비중을 60%로 줄이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글로벌 채권가격 하락세를 감안하면 바람직한 선택일 수 있는데도 위험자산을 늘렸다는 식의 천별일률적인 비판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국민연금이 최근에 밝힌 투자전략에 대해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해외투자 비중을 20%까지 늘리고 해외부동산 투자를 비롯해 자원개발 등 이른바 대체투자를 10% 비중 안에서 늘리겠다고 한 점입니다. 일단 2009년 첫발을 내딛은 해외 부동산투자는 성공적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송원제 기자)


1조5000억원에 사들인 런던의 심장부에 있는 HSBC타워는 1조5000억원을 투자해 연 18%의 수익률을 거두고 있다고 합니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6월에는 독일 베를린에 있는 소니의 유럽본사 건물 소니센터를 8500억원에 인수한 것을 비롯해 시드니의 오로라 플레이스 등 모두 4조3000억원에 이르는 해외부동산을 취득했습니다.

해외 자원개발에 대한 투자부터 각종 대형 인수합병(M&A)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추세입니다. 당장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는 우리금융을 인수하겠다는 주체들은 국민연금을 재무적 투자자로 영입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할 정도입니다. 미래에셋이 필라코리아와 함께 미국 타이틀리스트사를 인수하겠다고 선언할 때도 국민연금이 중요한 투자자로 부각되기도 했습니다.

이같은 국민연금의 기조적인 변화에 대한 평가는 어떨까요. 기금은 수익률로 평가하는 것이 맞겠죠. 최근 3년간 운용 성과를 보면 지난 2008년에는 연 0.18% 손실을 기록했지만 2009년과 2010년에는 각각 10.39%, 10.37%의 고수익률을 기록했습니다.

3년 평균 6.74%는 실세금리의 2배에 가까운 높은 성과이며 대형펀드일수록 수익률이 떨어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성공적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투자 포트폴리오 변화가 긍정적인 성과로 연결되고 있다는 게 필자의 생각입니다.

다만 국민연금의 기금운영 성과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저출산과 경제 활동 인구 감소와 맞물린 초고령사회 진입에 따른 후유증이 더 근본적인 문제점으로 부상 중입니다.

이 문제는 고령화와 별도로 사회 전반적인 시스템과 인식, 문화를 바꿔서 해결해야 할 국가적인 과제입니다. 저출산에 대한 해법을 찾지못한다면 국민연금이 아무리 기금 운용을 잘 해도 기금 고갈의 문제를 피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출산율을 높이는 것은 연금 보험료를 내는 사람이 더 많아진다는 뜻으로 장기적으로 국민연금의 안정적인 운용의 발판이 될 수 있습니다.

조영훈 기자 dubbcho@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