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코노믹리뷰 송원제 기자)


美 써드 에이지 프로그램 도입 역동적 삶 ‘액티브 시니어’ 만들기 온힘

고령화 시대, 앞날에 대한 중년층과 노년층의 고민을 덜기 위해 전문가들은 재무 설계 비법을 속속 내놓고 있다. 은퇴 설계사, 컨설턴트가 늘어나는 이유도 이들의 자산관리를 돕기 위해서다.

그러나 수명이 늘고 은퇴가 빨라지는 것은 최근 몇 년 사이의 추세라, 이들 세대에게 노후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를 실제 사례로써 보여주는 과거의 롤 모델이 존재하지 않는다. 한주형 박사는 앞으로는 ‘우리 스스로가 모델이 되어야 할 시기’라고 말한다. 그의 노후 준비에 대한 연구 성과를 들여다봤다.

비즈니스맨 삶 접고 노인 문제에 관심

한주형(53) 박사는 우리나라에서 아직 생소한 용어인 ‘금융노년전문가’로 통한다. 다년간의 금융 분야 실무 경험과 노년학 연구 이력을 바탕으로 그는 시니어 계층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노후 설계에 주력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시니어 계층은 50~100세까지를 폭넓게 지칭한다.

한 박사는 뉴욕시립대학 회계학 박사 및 인디애나주립대학 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미국 투자금융회사에서 일하다가 1997년 IMF 시기에 LG투자증권에 M&A 담당 팀장으로 스카우트 됐다. 이후 2000년 국내 최초로 구조조정회사 사장으로 취임해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일했다. 당시 한 박사의 가족은 미국에 거주하고 있었다.

다수의 M&A 거래를 성사시키며 공격적인 회사 경영을 펼쳐 나가던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암 진단을 받은 아내가 대수술을 받게 되자 미국으로 다시 건너갔다. 가족의 소중함을 뒤늦게 깨달은 한 박사는 하던 일을 접고 아예 미국에 눌러 앉게 됐다.

이때부터 한 박사는 거주 지역의 한 주립대학에서 노년학이라는 학문을 접하게 됐다. 한 박사가 만난 노년학 전문 교수는 그에게 “비즈니스 경험이 있는 사람이 노년학에 관심을 가져야 노인 산업이 발전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한 박사는 이전까지 막연하게 관심을 두고 있던 노인 문제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기업의 비즈니스에만 관심을 가졌던 그가 사람의 문제를 깊이 연구하는 학문에 감화를 받으며 삶의 방향까지 변화됐다. 그러자 미국의 노인들이 살아가는 방식에 호기심이 생겨 지인들의 소개로 주변의 노인들을 만나고 직접 요양시설에 찾아가 봉사하는 일에 매진하게 됐다. 호스피스 교육을 받은 것도 이 시기였다.

당시 한 박사는 미국의 노인 서비스 가운데에서 독특한 점을 발견했다. 미국에는 우리나라의 탁아소와 비슷한 개념의 탁로소(託老所)가 존재했던 것. 한 박사는 자녀들이 출근할 때 돌봐줄 사람이 없는 부모를 탁로소에 모셨다가 퇴근할 때 다시 집으로 모시고 돌아오는 ‘Adult Daycare’ 서비스가 미국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 박사는 최근 몇 년간 250 군데나 생겨난 이 곳 탁로소에서 전공과 과거 업무 경험을 살려 재무 담당 이사회 일원으로 일했다. 한 박사는 이 시기를 자신의 인생에서 하프 타임(Half time)으로 표현했다.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며 앞으로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을 구상하는 시기였던 것.

재미 교포들이 젊은 시절 힘겹게 노동에 종사하다가 은퇴 후 언어나 식생활에 적응을 못하고 불안정한 생활을 하는 모습도 그를 안타깝게 했다. 따라서 노년학 이론을 실생활에 접목시키고자 하는 바람이 그의 마음에 인생 2막의 불을 지폈다.

미 유학시절 목격한 은퇴 교포들의 불안정한 생활상이
그를 안타깝게 했다. 이런 체험이 노년학이론을 실생활에
접목시키고자 하는 인생2막의 불을 지폈다.

“노년학 연구 인생 2막의 ‘필연적 과제’”

한 박사는 영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 명상이나 수련에 노후 설계의 초점을 맞추기도 했다. 그는 비재무적 분야의 노후 설계 중 기초는 ‘마음 다스리기’에 있다고 강조한다. Retirement(은퇴)라는 단어를 Refirement(새롭게 불꽃을 되살리는 것)로 재정의한 것도 이러한 연유에서다.

미국에서 휴식 기간을 보내던 중 그에게 한국에 있는 교보생명 관계자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비재무적 분야와 관련된 보험 설계를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고 그는 다시 가족들과 떨어져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보험사는 그가 원하는 비재무적 노후 설계를 해나가기에 많은 한계점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작년 말 한 박사는 회사를 나와 개인적으로 현재의 FM(Future Mosaic)연구소를 차려 금융 부문과 접목된 노년의 삶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미국, 일본 등 다양한 외국 사례를 도입해 한국인 은퇴 설계의 틀을 짜는 작업에 몰두했다. 무엇보다도 적절한 교육 프로그램의 부재를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은 그는 미국의 ‘Third age(써드 에이지)’ 교육 프로그램을 직접 체험했다. 써드 에이지는 베이비부머 세대를 비롯한 장년층과 노년층에 모두 ‘정체성을 가져라’ 라는 캐치프레이즈를 토대로 체계적인 노후 설계 대안을 제시하는 미국의 프로그램이다.

현재 교육을 다 마친 그는 미국의 써드 에이지 프로그램의 코치로 등록되어 있는 단계다. 한 박사는 앞으로 이 써드 에이지를 국내에 적극적으로 도입할 계획이다. 또한 금융 설계사들이 비재무적인 부문 설계에 취약한 점을 문제로 지적하는 그는, 비재무적인 분야의 노후 설계에 대한 자격증 취득 절차를 마련할 예정이다.

이미 미국에는 금융노년전문가(RFG) 제도가 존재한다. 따라서 그는 국내에서도 교육과 시험을 거쳐 자격증을 취득한 후 비재무적 부문의 노후 설계에 특화된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국내의 금융노년 전문가는 KIFG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현재 몇 군데의 대학과 기업 층과 공동 추진을 목표로 협의하고 있는 단계다.

한 박사에게는 지금까지 연구해 온 실적보다 앞으로 현실화할 과제가 더 많다. 아직 국내에 금융노년학의 뿌리를 내리기에 갈 길이 먼 그는 “이 분야에 발을 들인 것은 내가 선택한 결과가 아니라 필연적 결과”라고 표현한다. 이미 인생2막을 시작한 한 박사는 앞으로도 계속적으로 노년학과 관련된 일에 종사할 계획이다.

그러나 그는 “평균 수명이 높아지는 만큼 인생 3막에 대한 가능성도 열어두고 싶다”고 밝혔다. 그가 독립적·적극적으로 앞날을 개척해 나가는 액티브 시니어의 삶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다. 70세를 넘어서도 오토바이를 타거나 시를 쓰는 등 원하는 일을 비로소 새롭게 시작하는 역동적 성향의 노년층을 그는 액티브 시니어의 대표주자로 꼽는다.

한 박사 자신 또한 최근 대두되는 세시봉 열풍에 힘입어 통기타와 색소폰 등 악기 연주에 몰두하는 중년층의 일원이 됐다. 색소폰 연주를 배우기 시작한 것. “색소폰 연주뿐 아니라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싶다는 욕망도 여전히 존재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편 한 박사가 일찍이 안셀름 그륀 신부의 저서 <황혼의 미학>을 읽고 받은 감회도 그의 노년학 연구에 대한 의지를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됐다. 나이 드는 기술을 제시한 이 책을 통해 한 박사는 노년의 삶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 “내리쬐는 가을 햇살이 낙엽을 빛나게 하듯, 저물어 가는 노년의 삶에서도 같은 광채의 아우라가 뿜어져 나올 수 있다”고 설명하는 까닭이다.

백가혜 기자 lita@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