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욕심은 불행의 근원… 정신수양 통한 마음 다스리기가 우선

"당신은 행복한가요?” 미국의 저명한 정신과 의사 하워드 커틀러는 티벳의 영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대뜸 이렇게 물었다. 그 누구도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이기 어려운 질문에 달라이 라마는 주저하지 않고 답했다. “그렇습니다.” 그것도 나라를 잃은 한 나라의 종교적·정치적 수장의 대답이라고 하기에는 선뜻 수긍이 가지 않는다. 그의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행복지수=가진 것/바라는 것

1974년 미국 펜실베니아대학의 경제학 교수인 리처드 이스털린은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된 이후에는 경제 성장이 반드시 행복을 더 높여주지 않는다는 이론을 제시했다.

1950년과 70년대 일본 국민들의 소득을 비교·조사한 결과, 20년간 7배나 늘었음에도 대다수가 옛 시절이 더 행복했다고 대답한 사실에 주목했다. 돈이 많아질수록 더 행복해진다는 보편적 인식의 틀을 깨는, 이른바 ‘이스털린의 역설’이다.

50대 퇴직 이후 격랑기를 맞지 않으려면 만반의 대비를 해야 한다. 경제력은 필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행복하게 노후를 보낼 수 있는 마음의 준비다. 평생 ‘마음 부자’가 될 수 있는 진정한 행복의 조건을 살펴봤다.


행복의 정도를 객관적으로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참 행복론’ 전도사로 명성을 얻고 있는 오종남 서울대 SPARC(과학기술혁신 최고전략과정) 주임교수는 행복을 증진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행복 지수’라는 간단한 수식을 만들었다.

‘가진 것/바라는 것’이 행복 지수다. 자신이 바라는 것 가운데 얼마나 성취했느냐에 따라 행복의 척도를 가늠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현재 가지고 이룩한 것이 80인데 바라는 것이 100이라면 행복 지수는 80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직 갖지 못한 것, 바라는 것을 더 크게, 중요하게 생각한다. 가진 것이 많아도 바라는 것이 커지면 불행하다고 느끼고 가진 것을 늘리기 위해 더 큰 노력을 한다. 그러나 노력한 만큼 얻었는데도 행복 지수는 높아지지 않는다.

오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1/5(0.2)→2/5(0.4)→3/5(0.6)→4/5(0.8)→5/5(1)에서 보듯 분자(가진 것)를 하나씩 늘려보면 0.2씩 일정하게 늘어난다. 그러나 1/5(0.2)→1/4(0.25)→1/3(0.33)→1/2(0.5)→1/1(1)에서 분모(바라는 것)를 하나씩 줄이면 0.05, 0.08, 0.17, 0.5 등으로 처음에는 천천히 늘어나지만 점점 늘어나는 폭이 커진다.

행복을 높이기 위해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방법도 있지만 끝없이 바라는 욕심을 줄이는 길, 결국 더 적게 바라는 것이 처음에는 더디지만 행복에 이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란 얘기다.

오 교수는 “행복 지수에서 분모도, 분자도 ‘나’ 자신에게 달렸다. 행복 지수는 본인이 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달라이 라마가 느낀 행복의 근원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동양의 고전에서도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만족할 줄 아는 자는 가난하고 천해도 즐거울 수 있고 만족할 줄 모르는 자는 부유하고 귀해도 걱정이 있느니라(知足者 貧賤亦樂 不知足者 富貴亦憂)’ <명심보감>에 나온 말이다.

“외부 조건과 상관없이 정신적 수양을 통해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는 능력을 만들 수 있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주변에서 이와 같은 사례를 많이 볼 수 있다.

노하지 말고 긍정의 힘 키워야

신재철(64) 전 LG CNS 사장에게 2005년은 ‘시련의 겨울’이 시작된 해였다. 한국IBM 대표이사 사장으로 재직하던 당시 관급공사 납품 비리 사건이 터져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발주처에 뇌물을 제공한 담당 실무자들이 저지른 일이었으나 윗사람으로서의 책임을 회피하지 않았다. 회사 몸집을 2배 이상 키워 놓은 공적은 빛이 발했다. 예순을 앞두고 죽을 때까지 ‘비리 기업인’의 멍에를 쓸 수도 있는 불명예 퇴진이었다. 하지만 2년 후 그는 이러한 불미스러운 과거를 툭툭 털고 LG CNS 사장에 취임, 화려하게 복귀했다.

“남자한테 정말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의 TV 광고로 유명해진 김영식(60) 천호식품 회장. 연매출 800억 원대 회사를 이끌며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다.

한때 무리하게 사업 확장을 하다 외환위기에 직격탄을 맞은 시절이 있었다. 사업은 망하고 엄청난 빚 때문에 자살까지 생각할 만큼 인생 최대의 위기였다. 포기하지 않고 길거리에서 전단지를 돌리며 재기에 나섰다. 2005년 내놓은 마늘 등 신제품이 호응을 얻어 매출이 크게 뛰기 시작했다.

성공적인 인생 2막을 연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자기 자신의 마음을 다스려 위기를 기회로 삼았다는 것. 신 전 사장은 2년여의 ‘백수’ 생활 동안 전혀 움츠려 들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각종 모임에 참석하고 사무실을 차려 업계 후배들을 대상으로 컨설팅을 했다. 여행도 많이 하며 성찰의 시간도 가졌다. 김 회장도 바닥으로 추락한 자신의 형편을 ‘긍정의 힘’으로 극복했다. 창피함을 버리고 욕심도 덜어냈다.

경영 부진으로 자신이 세운 애플에서 해고됐던 스티브 잡스. 그가 다시 최고 사령탑에 오를 수 있었던 건 분노를 다스릴 수 있는 평정심이 뒷받침 됐다는 점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최근 명상 열풍이 불고 정신 수양 및 불교와 경영을 접목한 책들이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다. 마음 다스리는 법을 터득해야 비로소 편안해지고 행복해질 수 있다.

특히 50대에 자리에서 물러난 CEO들의 경우 자기상실감에 빠져 대인기피 증세를 보이거나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잘 나갈 때의 영광에만 매달려 있는 이들이 많다.

주변을 너무 의식하고 체면을 먼저 따지면 행동으로 옮길 용기를 못 갖는다고 경영 컨설턴트들은 지적한다. 김진세 고려제일정신과 원장은 “은퇴 이후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잠시 쉬는 시간이 필요하다”며 “이때 자신의 장단점과 한계를 알아야 욕심을 버리고 분수를 지킬 수 있으며 행복해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전희진 기자 hsmile@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