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차 판매가 전체 자동차 시장에서 15%를 넘어섰다. 지금의 판매 추세라면 수입차 20만 대 시대도 멀지 않았다는 관측이다. 문제는 가격이다. 지금까지는 비싸도 너무 비싸서, 살 사람만 사는 차라고 인식했지만 이제 너무나 대중화되어 그 적절성을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수입차를 구매한 사람들이 지불한 가격 차는 생각보다 크다. 실제로 6000만원대 수입차를 1500만원 할인 받은 사례도 있었다. 딜러들은 명시된 제값 주고 산 고객을 '봉'이라고 부른다.    

 

개인 사업체를 운영하는 지인들 모임에서 분위기가 익어갈 무렵, 화제는 수입자동차로 옮겨갔다. 공교롭게도 이 자리에는 지난해 수입차를 구입한 3명이 참석하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국산차에서 수입차로 넘어간 사례다.

40대 중반 이 아무개 씨는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다는 BMW 528i 모델을 시세보다 상당히 많이 할인받았다고 운을 뗐다. 7000만원대로 알려진 이 차를 1500만원 할인받아 5000만원대에 구입했다는 것이다. 귀를 의심케 할 만한 내용이었다. 물론 “다른 곳에서는 이야기하지 말아 달라”는 딜러의 당부도 함께 전했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폭스바겐 중형 세단 파사트 구입자도 딜러를 잘 만나 600만원가량 할인받았다고 대화를 이어갔다. 그 옆에 앉아 있던 렉서스 하이브리드 모델 ES 300h를 구입한 사람만 말없이 쓴 소주잔을 들이키고 있었다.

수입차 가격 논란은 하루 이틀 이야기가 아니다. 매장에 명시된 제값 주고 차를 산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다. 지난달에는 발음하기도 어려운 수입차 한 대가 논란을 일으켰다. 바로 이탈리아 브랜드 피아트 친퀜첸토다. 이탈리아어로 500을 의미하는 이 차는 1830만원에 판매해 먼저 구입한 이들의 공분을 샀다. 피아트 친퀜첸토는 지난해까지 2990만원에 판매된 모델이다. 구입자들은 오프라인 모임을 갖고 피해배상 등 대책을 논의했지만, 회사는 “연식 변경을 앞두고 재고 처리를 한 것”이라며 “기존 고객에 대한 보상은 없다”라고 선을 그었다.

수입차 가격 논란은 수천만원에 달하는 경우도 있다. 최고급 스포츠카로 유명한 포르쉐는 SUV 모델 ‘마칸’이라는 차를 국내에서 8480만원에 팔고 있지만 미국에서는 4만990달러(약 5085만원)에 팔고 있으며 일본에서도 719만엔(소비세 포함 7191만원)에 판매 중이다. 이에 대해 포르쉐코리아 김근탁 대표는 “나라별 시장 상황이 다르다”며 “사양과 시장규모 등을 분석하고 옵션 여부에 따라 최종 가격을 결정한다”고 해명했지만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제값 주고 사는 소비자는 봉”

도대체 수입차는 당초 가격이 얼마이기에 1500만원 할인이 가능할까? BMW 528i의 공식 국내 판매 가격은 7190~7790만원이다. 하지만 직접 매장을 방문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이런저런 이유로 할인가를 제안하는 것이다. 물건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딜러들의 타는 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매장을 돌수록 가격에 대한 신뢰는 사라진다.

할인 항목은 이렇다. 우선 딜러 자체가 자신의 마진을 줄이며 할인해줄 수 있는 폭은 대략 500만원 선이다. 이른바 ‘딜러할인’이라는 것인데, 이 정도 할인도 받지 못하면 ‘봉’으로 통한다. 여기에 연식 변경으로 구 모델을 구입하면 꽤 큰 폭의 할인이 추가된다. 재고 물량 처리라는 것이다. 사별로 본사에서 할당받은 물량을 소진하고 목표를 채우기 위해 할인가를 적용해서라도 판매를 촉진하는 것이다.

또 수입사 차원의 공식 프로모션 행사와 국내 금융상품까지 연계하면 할인 폭은 더욱 커진다. 차량 가격이 비쌀수록 할인 폭은 더 커지는 게 현실이다. 업계에서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딜러들은 “우리만 아는 비밀”이라고 당부한다. 실정을 모르고 접근하는 소비자들은 이해할 수 없는 ‘나이롱 시장’인 것이다. 

해외시장과의 가격 차도 문제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수입차의 미국시장 판매 가격을 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다는 모델 3개의 가격을 비교해보자.

우선 BMW 5시리즈는 6290만~1억2890만원에 국내 판매 중이다. BMW 미국 공식 사이트에 들어가보니 가격은 4만9500~6만6200달러에 판매한다고 적혀 있다. 1달러에 1100원으로 넉넉하게 환산해도 5500만~7300만원 선이다. 메르세데스-벤츠 E세그먼트의 국내 판매가는 6030만~9440만원이지만 메르세데스-벤츠 미국 사이트를 들여다보니 5만1400달러에 판다고 적혀 있다. 5700만원쯤 하겠다. 폭스바겐 SUV 모델 티구안의 국내 판매 가격은 3830만~4830만원이지만 미국에서는 2만3305달러, 우리 돈 2600만원에 구입할 수 있다.

이에 대한 각사의 입장은 동일하다. 우선 미국에서 파는 차와 국내에서 파는 차가 다르다는 것이다. 엔진도 가솔린과 디젤로 차이가 나고 그로 인한 미션 등 주요 부품이 다르다는 주장이다. 더욱이 국내 고객들은 유난히 프리미엄급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 고급 사양이 대거 장착되어 가격 차가 불가피하다고 했다. 다른 하나는 세금 구조나 시장 규모 자체가 달라 가격을 책정하는 시스템이 다르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같은 모델에 대한 가격 차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한 수입차 관계자는 “독일의 경우 세금이 19% 붙고 한국은 10% 정도라 국내 판매 가격이 비싸지 않은 경우도 있다”면서도 “지속적인 노력으로 가격 인하를 추진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실제로 폭스바겐 파사트는 2015년형 모델이 독일에서 출시된 후 구 모델 국내 판매 가격을 310만원 낮추기도 했다. 

▲ 서울 강남의 '수입차거리'로 불리는 도선사거리 일대 전경 / 사진 = 이미화 기자

수입차 20만 대 시대, 투명한 가격 공개는 어려운 실정”

수입차 판매는 매월 신기록을 갱신 중이다. 6월에는 사상 최초로 내수 점유율 15%를 돌파했다. 지난해보다 무려 39.2% 증가한 1만7803대를 판매한 것. 올해 6월까지 누적 판매량을 보면 9만4263대를 판매해 지난해보다 26.5% 증가했다. 이 추세대로라면 당초 예상했던 연간 판매량 18만 대도 넘어 20만 대 시장이 열리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올 상반기 수입차 브랜드별 점유율을 보면 BMW가 21.5%로 가장 많고, 메르세데스-벤츠가 17.65%, 폭스바겐이 16.30%를 기록했다. 여기에 폭스바겐과 같은 회사인 아우디 14.36%까지 합치면 독일차가 70%에 달한다. 독일차를 포함해 유럽차 전체는 81.1%에 달하고 디젤차 비중은 68.3%로 가솔린 28.1%를 압도한다. 유럽차, 디젤로 편중됐다는 이야기다. 배기량별 판매를 보면 2000cc 이하급 차량은 전년 대비 33.4% 증가하는 데 그쳤지만 4000cc 이상 차량은 61.3% 증가했다. 2000~3000cc 판매도 25.8%나 증가했다. 갈수록 크고 비싼 수입차가 많이 팔리는 추세다.

수입차를 구매하는 고객이 늘어날수록 가격 불신은 커지고 있지만 정작 투명한 가격 공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산업통상자원부, 국토교통부, 관세청 등 해당 정부부처 관계자들은 “모든 제조사가 제품의 원가를 공개할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며 수입품의 경우 원가를 공개하는 것 자체가 무역마찰을 야기할 수 있다”라고 답했다. 더구나 수입차를 구매한 고객들마저 “내 돈 주고 산 것이 품질에 만족하면 그만”이라는 인식이 많아 가격을 공개하거나 추가로 낮추는 것을 반기지 않는 형국이다. 결론적으로 시장경쟁에 맡기면서 수입사들이 알아서 합리적인 가격 정책을 세우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실정이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