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 2일에서 승자와 패자에게 가차없이 주어지는 야생의 법칙은 세태의 반영이다.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은 운동경기를 뛰는 것과 같다.” 미국의 경영학자 C K 프리할라드 교수가 한 말이다. 그는 “리더는 실력과 체력을 갖춘 훌륭한 선수(good player), 머리가 좋은 코치(good coach)이자 공정한 심판자(good refree)로서 경기의 룰을 잘 알아야 할 뿐 아니라, 신나는 응원단장(cheer leader)이 돼 조직에 성공의 열정을 불어넣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2010 예능의 가장 큰 트렌드는 감동 예능의 부상으로 정리된다. 시청자들로부터 조금만 외면 받아도 막내리는 예능 프로야말로 시대의 바람보다 빨리 눕고 빨리 일어나는 트렌드의 지표다.

그런 점에서 리더십의 단초를 읽어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다. 1990년대를 풍미했던 공익 예능에서 2000년대 중반 리얼-야생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거쳐 최근 인기가 급부상하고 있는 ‘감동 예능’은 ‘사람은, 아니 조직은 무엇으로 움직이는가’에 대해 상기시킨다.

공익 예능, 야생 예능, 감동 예능의 핵심 키워드와 진행자 역할 변화는 조직 동기 부여의 핵심과 필요한 리더 역할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적잖다.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10여 년 간 시대를 풍미한 것은 공익, 대표적 계몽 예능이었다.

MBC ‘일요일 일요일밤에’의 인기 코너 ‘이경규가 간다’ ‘양심냉장고’부터 살펴보자. 이때의 핵심 코드는 명분과 규율이다. 즉, 구성원에게 도덕적 잣대를 제시하고, 누가 잘하고 지키지 못하나에 대해 덫을 놓고 ‘감시’하고 ‘판별’해 표창하고 선행을 장려했다.

계몽 예능에서 진행자에게 부여된 핵심 역할은 심판이다. 율곡선생의 ‘신독(愼獨)’이란 말이 있듯 안 보이는 데서도 규율을 행하는 ‘샘플’스토리 속 인물의 착한 행동을 보며 시청자들은 ‘올바름’에 대한 분발과 그렇지 못한 자신에 대해 반성의 채찍을 가했다.

이때 요구되는 진행자의 중심 역할은 선악과 정오(正誤)를 공정하게 판별할 수 있는 착하고 공정한 심판관이었다. 이들 계몽적 공익 예능이 사라진 이면에는 조직도 그러하듯 대의명분, 상과 벌만을 통한 성과(재미) 창출의 한계도 작용한다.

2000년대 중반, 새로운 인기 예능의 강자로 떠오른 게 ‘1박 2일’로 대표되는 야생 버라이어티다. 리얼 버라이어티 성격 프로의 핵심 원동력은 예전 공익 예능의 정오(正誤)가 아니라 승패(勝敗)다.

규율 중심에서 성과 중심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한다. 복불복, 패자에게 주어지는 엄정한 상벌이 재미의 키워드다. 승자에겐 넘치는 인센티브가, 패자에겐 가혹한 페널티가 가차 없이 주어지는 야생의 법칙은 성과 중심의 우리 세태의 반영이다.

시청자들은 이들 프로에 깔려 있는 적자생존(適者生存) ‘정글의 법칙’에 공감했다. 이긴 팀은 구중궁궐 금침에 임금님 수라상 같은 진지를 떡 벌어지게 받아먹는 ‘시혜’를, 진 팀은 풍찬노숙의 시련을 기꺼이 감수한다.

당근과 채찍보다 힘 센 것은 꿈과 영혼의 자극이란 것을 리더들이여 언제나 명심하라

호사를 누리는 승리팀과 수난을 겪는 패배팀을 보고 시청자들은 자신이 현실에서 겪는 승패를 떠올리며 알게 모르게 “역시 어떻게든 이기는 것이 좋은 것이여”를 되씹게 된다. 여기에 이전 트렌드에서 보인 공익 예능의 규율 위반에 대한 반성과 선행에 대한 자긍은 없다.

때론 ‘모로 가도 서울에 가면 되듯’ 안간힘을 쓰며 이기려는 멤버들의 모습을 통한 거울효과에 공감을 표했던 것이다. 이 같은 승패 프로에 와서 게임의 룰이 바뀌고 진행자 즉, 주장 역시 게임 밖의 심판관이 아니라 호각을 불며 함께 뛰는 능력 있는 선수로 변화했다.

예컨대 야생 예능 ‘1박2일’에서 강호동은 팀원으로서 함께 뛰고 함께 뒹굴고 먼저 뛰어든다. 바로 성과 중심의 사회에서 요구되는 공생공사형 강한 리더상이다.

최근 야생 버라이어티를 거쳐 ‘남자의 자격’류의 감동 예능이 새롭게 부상하는 것을 보며 리더십상도 또 한 번 변하고 있음을 읽게 된다. 법과 밥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인간의 욕구는 꿈이다.

요즘 ‘남자의 자격’ 감동의 기저에는 꿈의 여정이 깔려 있다. 규율을 지키나 안 지키나 몰래 카메라를 놓고 지켜보는 것보다, 프로젝트를 놓고 승패를 갈라 이익과 손해를 부각시키는 것보다 더 큰 동인은 자발적 동기부여다. 이들은 자신의 미션을 자발적으로 정하고, 승패와 상벌 없이 각각 이뤄나간다.

자발적 동기부여로 이뤄지기에 이들의 성취는 늘 기대 이상, 목표 이상일 수밖에 없다. 오합지졸들의 꿈을 천하무적으로 이끄는 동인은 꿈을 지원해주고 격려해주는 참여적 리더십이다. 일각에서 이경규, 김국진 등 리더의 ‘역할’이 미미하다고 하지만 사실은 시대상의 반영이다.

꿈의 미션이 바뀔 때마다 리더는 바뀌고 심지어 외부에서 수혈되는 게 21세기 리더십 트렌드다. ‘국민 할매’인 김태원이 리더의 지휘봉을 잡을 수도 있다. 합창 프로젝트의 박칼린처럼 ‘외부 영입’될 수도 있다. 감동을 통해 동기부여를 하는 조직엔 리더도, 졸개도 없이 모두 리더가 되어 자발적으로 움직인다.

자신들의 꿈을 이뤄나가는 여정이기에 이들에겐 남이 재단해 주는 상도, 외적 보상으로 주어지는 트로피도 필요가 없다. 본인들이 얻는 성취감이 더 중요하고, 그러기에 멤버는 상생의 관계이지, 상극과 견제의 대상이 아니다.

사람은, 그리고 조직은 무엇으로 움직이는가. 더글러스 맥그리거 MIT대 교수가 말한 권위주의적 관리를 대변하는 X이론과 민주적 관리를 대변하는 Y이론을 비롯해 자유방임형 관리이론을 이야기하는 Z이론에까지 여러 가지 이론이 나왔다.

허즈버그는 위생요인(불만족요인)과 동기요인(만족요인)으로 나눠 동기부여를 설명하려고도 했다. 인간은 빵만으로도 살 수 없고, 법만으로도 억누를 수 없다. 꿈이, 자기성취에 대한 욕구가 통제와 포상이 없어도 조직을 춤추게 하고 동기부여시킨다.

‘남자의 자격’ 등 감동 예능은 꿈이 조직의, 인간 동기부여의 키워드란 사실을 이야기해준다. 상벌과 승패 없이도 조직원을 절로 춤추게 하는 것은 꿈이다.

앞으로 리더의 관건은 ‘구성원의 꿈’과 ‘조직의 비전’을 얼마나 정렬시킬 수 있느냐가 좌우할 것임을 확인케 된다. 리더들이여, 명심하라. 당근과 채찍보다 힘이 센 것은 꿈과 영혼의 자극이다.

김성회 리더십 칼럼니스트
연세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했으며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세계일보>에서 활동한 기자 출신의 리더십 전문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