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외화 ‘소셜 네트워크’가 오는 18일 국내 극장가에서 개봉된다. 이 영화는 페이스북의 창립자 마크 주커버그(26)의 성공 스토리를 각색한 작품으로 미국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페이스북 성공 스토리에 대해 7가지 가정을 생각해봤다.

첫 번째 가정은 ‘만약 주커버그가 애인에게 차이지 않았다면’이다. 주커버그는 애인에게 차인 날 밤, 애인의 신상 정보를 홧김에 블로그에 떠벌렸다. 게다가 하버드대 여학생들의 신상 자료까지 해킹해 ‘페이스 매시’라는 프로그램도 만든다.

‘누가 더 섹시한가’라는 미모 대항전 프로그램을 혼자 힘으로 만들어 하버드대 인트라넷에 올리자 5시간 만에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날 새벽 인트라넷은 5000명이 접속해 결국 마비됐다.

두 번째 가정은 ‘윙클보스 형제의 제안을 그대로 수렴했다면’이다. 주커버그의 개발 능력을 주목하던 하버드대 동창생 윙클보스 형제는 하버드대 교내 데이트 사이트인 ‘하버드 커넥션’을 만들자고 제의한다.

주커버그는 이 제안을 수렴해 사이트 개발에 착수했다. 하지만 도중에 자신의 친구와 함께 ‘더 페이스북’을 만들어 사이가 틀어진다. 이후 윙클보스 형제는 아이디어 도용 혐의로 소송을 제기했고 주커버그는 결국 큰 돈을 배상했다. 만약 윙클보스 형제의 제안대로 데이트 사이트를 개발했다면 지금의 페이스북은 없었을 것이다.

세 번째 가정은 ‘페이스북이 사업 초반에 광고모델을 채택했다면’이다. 페이스북이 탄생한 2004년에는 ‘마이 스페이스(My space)’라는 SNS 사이트가 이미 있었다. 페이스북이 초반에 수익 창출을 위해 광고를 유치했다면 아이비리그 대학생들만의 커뮤니티로 전락했을 것이다.

네 번째 가정은 ‘만약 주커버그가 숀 패닝을 만나지 않았다면’이다. 주커버그는 무료 음악 다운로드 사이트 ‘냅스터’의 설립자인 숀 패닝을 우연히 만나게 된다. 패닝이 만든 ‘냅스터’ 사이트는 비록 실패했지만 그의 비즈니스 센스는 탁월했다.

패닝은 주커버그에게 사이트 이름을 ‘페이스북’으로 바꾸라고 충고한다. 사업을 성공시키려면 실리콘밸리로 오라고 조언까지 한다. 주커버그는 패닝의 충고를 받아들여 사이트 이름을 바꾸고 회사를 보스턴에서 실리콘밸리로 옮기게 된다.

만약 페이스북이 동부의 대학생들만을 상대로 소셜 네트워크를 만들었다면 마이스페이스를 능가하는 SNS로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섯 번째의 가정은 ‘주커버그가 하버드대를 계속 다녔다면’이다.

주커버그는 하버드대의 문제아였다. 동료들은 그의 천재성을 알아주지 않았다. 그러나 실리콘밸리 투자자들은 그의 천재성을 인정했고 과감한 투자로 추가 개발을 도왔다. 주커버그는 일의 재미에 빠진 나머지 하버드대를 중퇴했다. 주커버그의 학업 생활이 계속 됐다면 추가 개발은 없었을 것이다.

여섯 번째 가정은 ‘야후의 인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이다. 페이스북은 실리콘밸리로 온 후로 미국은 물론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다. 결국 야후에서 1억 달러에 페이스북을 인수하겠다는 제안이 왔다. 페이스북에게는 파격적인 제안이었지만 주커버그는 이를 거절했다. 이때 야후가 페이스북을 인수했다면 오늘날 25억 달러 가치의 기업이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마지막 가정은 ‘만약 페이스북이 오픈 플랫폼을 만들지 않았다면’이다. 야후의 인수 제의를 거절한 주커버그는 페이스북의 오픈 플랫폼화 작업을 거쳐 ‘F8’ 버전을 발표한다. 오픈API정책을 통해 2억 명의 고객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고객은 다양한 앱을 접할 수 있게 됐고, 앱 개발자는 개발에 대한 정당한 수익을 올릴 수 있게 됐다. 만약 페이스북이 폐쇄형 SNS 형태를 고집했다면 5억 명의 고객을 자랑하는 거대한 소셜 네트워크는 형성되지 못했을 것이다.

김영한 앱컨설팅 대표
ykimceo@naver.com
삼성전자 컴퓨터 사업부장을 거쳐 국민대 경영대학원 교수를 역임했다. 앱MBA, 앱에디터를 개발했으며 60권의 경영 도서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