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13개월째 금리를 동결했다. 원화절상에 따른 수출 우려, 낮은 물가상승률, 세월호 여파로 인한 내수 침체 등이 우리나라 경제의 위협 요인으로 꼽히고 있지만 한은은 이에 전혀 반응하지 않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시장은 이미 한은의 통화정책을 불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매파적 입장에도 불구하고 이주열 한은총재 취임 후 시장금리는 오히려 하락했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한국은행은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기준금리를 현 수준인 2.50%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이날 이주열 한은 총재는 “세월호 사고 여파로 소비가 다소 위축됐다”며 “다음 달 한은의 성장률 전망치를 본 후 금리 방향을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총재는 “현재 금리 수준은 여러 지표 등으로 봤을 때 경기회복세를 뒷받침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한은의 통화정책을 바라보는 시장의 시선은 싸늘하다. 미국, 일본에 이어 ECB(유럽중앙은행)가 최근 기준금리를 인하하며 경기부양을 시도하고 있는 데 반해 한은은 발생하지도 않은 인플레이션 기대감으로 물가상승률 대비 높은 금리 수준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분명 ‘물가’를 기준으로 하는 한은의 통화정책을 훼손하는 것이다. 게다가 최근 세계은행 또한 글로벌 성장률을 하향 조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한은의 대응은 미흡하다.

오동석 이트레이드증권 연구원은 “정부는 낮아진 실업률과 고무적인 경제 지표에도 이전과 달리 흥분하지 않는다”며 “오히려 내수 부진과 하반기 경제 성장의 어려움을 더 강조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표면적인 통화당국의 입장에 반해 시장금리는 하락한다”고 분석했다.

현재 시장참여자들의 입장은 통화당국의 전망을 신뢰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총재는 취임 이후 지속적인 매파적 스탠스로 금리인상에 대한 시그널을 제공했다. 하지만 취임 당시보다 시장금리는 오히려 하락한 상황이다. 이뿐만 아니라 이날 예상된 금리동결에도 불구하고 기준금리 발표 이후 채권시장은 강세를 보이며 금리는 하락했다.

박형민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이 총재가 채권시장 참가자들에게 허점을 보였다”며 “세월호 사고로 인한 내수 부진이 단기적이었다면 이에 대한 판단 결과가 나올 만도 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이 총재의 판단 유보는 내수부진이 당분간 지속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어 채권시장에 경기 둔화에 대한 기대감이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이번 6월 금통위에서 한은의 통화정책 스탠스가 크게 변화된 것은 아니다. 다만 금통위 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내수부진과 관련된 질문에 명확하게 답을 하지 않은 것이 시장참여자들에게 부정적인 의미로 다가온 것이다.

한편, 증권업계 일각에서는 시기를 놓친 것이 가장 큰 실수라는 지적도 일고 있다. 게다가 이미 물가상승률을 상회한 기준금리가 오히려 경제회복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물가상승률보다 금리가 높으면 투자를 하려는 심리보다는 저축을 하려는 심리가 강해지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연구원은 “물가상승률보다 높은 기준금리는 투자를 주저하게 만든다”며 “현재의 통화정책은 원론에서도 벗어난 최악의 행동이며 통화정책 기준인 물가의 존재 이유도 모르겠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또한 “지속적인 시장금리 하락이 한은의 경기전망과 통화정책에 불신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질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