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가 나 정말 치매에 걸리는 거 아니야?” 오랜만에 만난 한 지인은 요즘 자꾸 깜빡깜빡하는 것이 염려스럽다며 이렇게 말했다. 물건을 어디에 뒀는지 잘 잊어버리는 건 예삿일이고 가스레인지를 끄지 않고 외출한 경우도 있다고 했다. 어제 먹은 저녁 메뉴가 전혀 생각나지 않거나 저녁 무렵, 오늘 점심을 같이 먹은 사람들이 누군지 가물가물하기도 하다.

어째 집중력도 점점 더 떨어지는 것 같단다. 적어놓지 않으면 금방 잊어버리기 때문에 메모 강박증이 생길 판이라고. 자기가 영화 ‘메멘토’의 주인공인 보험 수사관 ‘레너드’와 오버랩 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라나? 레너드는 10분만 지나면 과거를 까맣게 잊고 마는 ‘단기기억상실증’에 걸린 인물.

만나는 사람마다 즉석카메라에 담고, 현상한 사진에 일일이 메모를 하는가 하면, 절대 잊지 말아야 할 내용은 제 몸에 문신으로 남긴다. 앞서 소개한 지인의 말. “60대 중반에 찾아온 이 건망증이 혹여 치매의 전조 증상일까 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야.”

치매란 뇌에 생기는 각종 질병으로 인해 기억력 감퇴 및 이해력, 사고능력, 계산능력, 학습능력, 판단력 등 모든 뇌 기능의 복합적 장애가 온 것을 말한다. 65세 이상 고령층의 80% 이상이 호소하는 ‘노인성 건망증’은 단순히 기억력만 감퇴될 뿐 다른 인지 능력엔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가령 예전에 일어났던 일에 대해 자세한 부분을 기억하진 못하나 전체적인 내용은 알고 있는 경우가 많고, 약간만 귀띔해주면 잊었던 일도 대부분 기억한다.

그러나 치매는 다르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에 따르면 치매는 대개 기억력 장애로 시작하지만 치매환자는 옆에서 모든 힌트를 줘도 과거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건망증 횟수가 잦아지고 정도가 지나치면 치매 초기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2013년 기준, 한국의 65세 이상 치매환자 수는 57만 명(고령층 인구의 9.39%)으로 고령층 10명중 1명이 치매환자다. 매년 치매환자가 늘어나 2025년에는 100만 명을 넘어선다는 전망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나 자신이 치매환자가 안 된다는 보장은 없다. 생각해본 적 있는가. ‘노후에 내가 치매에 걸린다면….‘ 시니어 문제를 연구하는 사단법인 한국골든에이지포럼이 지난 4월 개최한 ‘치매환자로 인한 사회적 부담 최소화’ 세미나에서는 참석자들로부터 서약서 성격의 건의문을 받는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건의문은 치매에 걸려 판단능력이 떨어져 의사결정권이 없어지기 전, 자신의 처우에 대한 바람을 미리 가족에게 공지하는 일종의 유언장이었다. 치매 경증이면 가족과 함께 지내면서 병의 진행을 지연시키는 노력을 해주고, 중증으로 악화되면 요양기관에 입원시켜줄 것을 당부하는 내용으로 작성됐다. 이는 치매 가정의 심리적·경제적 부담이 만만치 않은 현실에서 치매환자와 가족 모두를 위한 현명한 방안으로 제시된 것이었다. 실제 치매 치료에 환자 1인당 소요되는 연간 총 진료비는 5대 만성질환(뇌혈관, 심혈관, 당뇨, 고혈압, 관절염)보다 높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요양시설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거나 또는 왜곡돼 있다. 혹시 아직도 장기요양보험제도가 실시되기 전, 가난하고 오갈 데 없는 어르신들을 돌보던 시설이나 ‘현대판 고려장’ 등의 이미지를 떠올리는가. 배우자나 부모를 요양시설에 보내는 것이 꼭 ‘최선’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100세 시대를 맞이했다. 이제는 요양시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깨뜨려 그 중요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