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하정훈 소아과 원장 

하정훈 소아과 원장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내 아이에게 먹이는 음식, 입히는 옷은 물론 좋다는 것은 모두 다 해주고 싶은 것이 부모 마음이다. 부모들이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힘들 때는 바로 아이가 아플 때다. 단순 감기, 장염처럼 비교적 가벼운 증상도 있지만 때로는 예방 외에는 치료법이 없는 경우도 있다. 일본뇌염도 그중 하나다. 예방주사가 유일한 대책인 일본뇌염, 기존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백신이 나와 눈길을 끈다.

 

“안전성을 생각한다면 베로세포 배양 백신의 국가필수예방접종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합니다.”

전국에 일본뇌염 주의보가 내려지면서 일본뇌염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하정훈 소아과 원장에게 일본뇌염 예방을 위해 조언을 구했다.

하 원장은 소아진료와 더불어 육아상식과 상담을 병행하는 의사로 소문이 자자하다. 그가 펴낸 <삐뽀삐뽀 119 소아과>라는 육아건강서적은 50만 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다. 첫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에게 ‘육아멘토’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그가 최근들어 일본뇌염 백신에 특히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

 

이상고온현상, 일본뇌염 주의보

때 이른 초여름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달 18일 질병관리본부는 ‘전국 일본뇌염 주의보’를 발령했다. 부산지역에서 올해 처음으로 일본뇌염 매개모기가 확인된 탓이다. 부산에 이어 지난달 26일에는 제주도에도 매개모기인 ‘작은빨간집모기’가 발견됐다.

이상고온현상으로 지난해보다 한 달가량 빨리 일본뇌염모기가 출현한 것이다. 일본뇌염은 제2군 법정감염병으로 일본뇌염 바이러스에 감염된 작은빨간집모기가 사람을 무는 과정에서 인체에 감염돼 발생하는 급성 바이러스성 전염병이다. 초기 고열, 두통, 현기증, 구토, 복통, 지각 이상 등의 이상 증세가 보이다가 병이 진행되면 의식장애, 경련, 혼수에 이르게 되고 대개 발병 10일 이내에 사망한다. 경과가 좋은 경우에는 약 1주일 전후로 열이 내리며 회복된다.

일본뇌염은 정말 무섭다. 일단 감염되면 특별한 치료법이 없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연간 약 7만 명의 환자가 발생하고, 감염자 가운데 무려 1만~1만5000여 명이 사망한다. 국내서도 2010년 이후 63명의 환자가 발생했고 이 중 14명이 사망했다. 문제는 바이러스에 감염되더라도 별다른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다만, 5~15일의 잠복기를 거쳐 발병할 경우 그 증상이 급속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예방접종만이 최선의 생명줄인 셈이다.

최근 발병한 환자들 중 60대 이상의 고령자가 많다. 이들은 일본뇌염 예방접종을 받지 못했던 세대다. 실제로 일본뇌염 예방접종을 실시한 후에는 환자가 눈에 띄게 줄었다.

 

일본뇌염 국가필수예방접종 지정… 사백신·생백신 두 종류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일본뇌염 예방접종을 국가필수예방접종(NPI·National Inmmunization Program)으로 지정해 무료로 접종해주고 있다.

하 원장은 “일본뇌염 백신의 종류는 사백신과 생백신 두 가지다. 가장 많이 사용되는 사백신은 생후 12~24개월 유아에게 1회, 최초 접종 후 1주에서 4주 사이에 2차 접종을 한 뒤, 1년 뒤 추가접종을 실시한다. 이후 만 6세와 만 12세에 각각 추가접종으로 총 5회에 걸쳐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생백신 역시 1차 접종 시기는 같지만 최초 접종 1년 후 한 번만 추가접종을 한다는 점이 다르다.

하원장은 “추가 접종 횟수가 적다는 점에서 생백신이 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두 가지 백신은 각각 특성과 장단점이 있다”며 “일반적으로 사백신은 쥐의 뇌조직을 기반으로 해 제조과정에서 바이러스를 증식시키는데 이것이 사람의 뇌조직을 자극해 심각한 중추신경 이상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 생백신은 백신 제조에 사용되는 햄스터에 확인되지 않은 병원체가 존재할 경우 등 안전성에 대한 부분에서 많은 데이터를 가지고  있지 않아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요컨대 건강한 아이들의 경우 둘다 별다른 문제가 없지만 잠재적인 위험요인은 안고 있다는 얘기다.

 

안전성 높인 베포세포백신 출시 눈길 

최근 기존의 백신보다 안전성을 높인 베로세포((Vero cell) 배양 백신이 나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원숭이 신장세포를 대량으로 배양해 일본뇌염 바이러스를 증식시킨 것으로 지난 몇십 년간 안전성 면에서 충분한 검증을 거쳤다. 과민증 등 이상반응을 유발할 우려가 있는 젤라틴, 항생제, 치메로살 등이 함유되지 않은 고순도 정제백신이다. 미국·유럽·일본 등에서는 베로세포에서 제조한 일본뇌염 백신만 허가해 사용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는 녹십자와 보령바이오파마가 베로세포 배양 일본뇌염백신을 공동 개발해 판매하고 있다.

하 원장은 “기존 사백신과 생백신이 기능이 떨어지거나 안전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며 “오랫동안 연구해 더 나은 백신이 나온 것으로  소아과 의사 대부분이 베로세포 백신의 안전성에 대해서는 동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비용적인 문제로 인해 아직까지 널리 사용되지는 못하고 있는 점이 안타깝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기존 백신들은 국가필수예방접종으로 지정돼 무료 접종이 가능하지만, 베로세포 백신은 국가필수예방접종에 포함되지 않아 1회 접종 시 약 6만원의 비용이 든다. 기존 사백신처럼 5회 접종을 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적인 부분에서 부담을 느낄 수 있다.

그는 새로운 백신을 유기농에 비유했다. “안전한 먹거리와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가격이 비싸더라도 유기농 제품을 사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듯이 새로운 백신을 찾는 부모들의 마음도 이와 다르지 않다”며 “아이를 위해서라면 비용이 들더라도 좀 더 좋은 제품을 찾는데 이는 누군가의 강요가 아닌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것”이라고 전했다.

비용 부담을 느낄까 봐 먼저 적극적으로 권하지는 않지만 일부 보호자들은 미리 정보를 알고 와 베로세포 백신 접종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주의사항이 있다면 베로세포 백신 역시 사백신이지만 기존 사백신과 교차접종은 할 수 없다. 만일 보호자가 원한다면 처음부터 다시 백신 접종을 시행할 수는 있지만 굳이 권하지는 않는다고 하 원장은 설명했다.

그는 “좀 더 안전한 백신이 나온 만큼 더 많은 사람이 이용할 수 있도록 베로세포 배양 백신도 필수예방접종 목록에 추가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며 “정부가 비용 대비 효과만 고려할 것이 아니라 안전성에 더욱 초점을 맞춰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