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배하는 작물이 문화적 차이를 만든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벼농사를 짓는 동양 문화권은 집단주의가, 밀농사를 짓는 서양 문화권은 개인주의 성향이 더 강하다는 것이다.

쿼츠는 미국 버지니아대학교 연구원 탈헬름의 논문을 인용해 이같이 보도했다. 사이언스지에 발표된 이 논문에 따르면 쌀농사는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집단주의를 만들었고, 연구자들이 부르는 일명 ‘쌀 문화’를 형성했다고 설명했다.

쌀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사회적 협조가 필요하다. 벼는 물이 어느 정도 고여 있는 논에서 자라기 때문에 농경지에 물을 대주는 ‘관개’가 필수적이다. 이는 한 농가가 사용하는 물을 다른 농가에 전해줄 수 있는 시스템으로 땅에 물길을 만드는 작업을 거쳐야 하고, 또 만든 물길 주위에 모여 살며 물을 나눠 써야 한다. 논을 만들어 물을 끌어들이는 데 농가 간은 물론 때로는 마을 전체의 노동력을 모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집단을 중요하게 여기는 정서가 생기고 협력이 필요한 공동체가 형성된다.

하지만 밀은 맨땅에서 자라기 때문에 관개시설을 만들 필요가 없다. 서로 협력해야 할 작업이 없고 모여 살지 않아도 농사를 지을 수 있기 때문에 밀농사를 짓는 사회는 개인적인 생활방식이 자리 잡았고 더 독립적인 성향을 보인다.

탈헬름은 ‘쌀 문화’를 연구하기 위해 양쯔강 남북 6개 지역의 중국 대학생 116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양쯔강 남부는 주로 쌀을 재배하고, 북부는 밀농사를 많이 짓는다.

연구진은 이들의 개인주의 의식을 측정하기 위해 조사 대상자들에게 자신과 동료를 원으로 표시해 연결한 사회 관계도를 그리도록 했다. 지금까지 연구에서는 미국인들은 다른 사람보다 자신을 약 6mm 더 큰 원으로, 유럽인들은 자신을 3.5mm 더 크게 그렸다. 반면 일본인들은 자신을 더 작게 그렸다.

이를 통해 쌀농사를 짓는 지역에 사는 이들이 밀농사 지역에 사는 이들보다 자신을 더 작은 원으로 그리고 있음을 발견했다. 중국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결과도 이와 일치했다. 남부 학생은 자신은 더 작은 원으로, 북부 학생은 자신을 더 큰 원으로 그렸다.

탈헬름은 “연구팀은 원의 크기를 무의식적인 개인주의 또는 자기중심주의의 척도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연구를 통해 쌀농사를 짓는 지역의 이혼율이 더 낮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그는 “쌀이 전 세계의 절반, 주로 아시아의 주식인 반면, 밀은 전통적으로 서양에서 많이 재배된 만큼 이번 연구가 서양 문화와 동아시아 문화 간의 차이를 설명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벼농사를 주로 짓는 일본·한국·홍콩 등이 경제적으로 발전하고 근대화됐음에도 서양이나 중국 북부에 비해 개인주의적 성향이 덜한 이유를 설명해준다”고 말했다.

하지만 “중국의 밀농사 지역에 사는 사람들과 밀을 먹는 서양인들 사이에는 여전히 어느 정도 차이가 있어, 쌀과 밀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