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전자상거래 시장에 변화의 조짐이 엿보이고 있다. 거대 자본을 앞세운 미국과 중국의 글로벌 기업들이 국내 시장에 발들 들여놓고 세를 확장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27일 전자상거래 업계에 따르면 세계 최고 수준의 IT 강국으로 손꼽히는 한국의 전자상거래 시장이 해외 기업들 입김에  좌지우지될 정도로 변화의 바람이 불어닥치고 있다.

전자상거래업체의 한 관계자는  "한국은 그동안 전 세계에서 매력적인 전자상거래 시장으로 주목받고 있고, 세계 최고 수준의 초고속 인터넷망과 더불어 스마트폰 보급률도 최근 75%를 넘어섰다"면서 "스마트폰 뱅킹 사용자도 4,000만 명을 뛰어넘어 모바일 시장까지 각광받고 있지만 이 모든 것이 이제는 위기의 이유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업체들에게 한국이 아시아 시장 진출을 위한 교두보이자 테스트 베드 역할을 하고 있는 것도 시각을 달리하면 한국의 전자상거래 시장이라는 장터를 통째로 외국기업들에게 내줄수 있는 요소가 될수도 있다는 우려인 셈이다.

이 관계자는 "까다로운 한국소비자들은 유행에 민감한 트렌드 얼리어답터 성격이 강해 새로운 서비스 등을 시험할 최고의 무대가 되고 있다"면서 "조만간 외국기업들이 이 시장을 놓고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국내 전자상거래 시장의 해외 글로벌 기업 잠식 현상이 감지된 것은 이미 오래 전 일이다. 2001년 옥션을 인수합병(M&A)해 한국 시장에 진출한 이베이는 2009년 당시 업계 1위이던 G마켓을 다시 인수하면서 몸집을 불려나갔다.

현재 이베이 코리아는 G마켓과 옥션을 합쳐 국내 오픈마켓 시장의 70%에 가까운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처럼 강력한 시장 지배력을 바탕으로 출범 3년 만에 자기자본 1조원을 축적했다. 최근 공시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이베이코리아는 지난해 매출액 6222억원과 영업이익 477억원을 기록했다.

국내 최대 포털 사이트 네이버는 오픈마켓 시장에서 철수한다. 네이버는 2012년 시작한 오픈마켓 사업 ‘샵N’을 2년 만에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샵N은 네이버 가격정보 사이트인 지식쇼핑에서 샵N 입점 가맹점의 노출 빈도가 다른 가맹점과 비교해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을 꾸준히 받아왔다. 검색포털 1위의 지위를 바탕으로 공정 경쟁을 침해하고 있다는 여론의 비판이 거세자 서비스를 접게 된 것이다. 네이버는 오는 6월 1일부터 샵N 서비스를 종료하고 상품검색 서비스인 ‘스토어팜’을 선보일 예정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글로벌 기업들이 쇼핑 사업을 강화할 때 국내 기업인 네이버만 각종 규제와 부정적 여론으로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볼멘 소리도 새나오고 있다. 구글, 아마존 등 글로벌 IT업체들이 쇼핑 사업을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네이버만 사업을 축소하는 역주행 모양새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글로벌 유통업체들의 한국 공습이 시작돼 결과가 주목된다. 거대 자본을 앞세운 미국의 아마존(매출 77조3000억원)과 글로벌 전자상거래 1위업체인 중국의 알리바바(매출 170조원)가 연내 국내에서 전자상거래 사업을 시작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이미 한국법인을 설립하고 마케팅 담당자 등을 채용하고 있는 등 전열의 채비를 서두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구글은 온라인 쇼핑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중이다. 최근 영국의 온라인 상거래 재고관리 분석업체 레인지스팬을 인수하는 등 상품 검색부터 결제, 배송서비스까지 모든 온라인 유통 시스템에 공격적으로 진출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 시장 진출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이처럼 글로벌 업체들이 몰려들 경우, 국내 소규모 판매자들이 일궈준 이익까지 곧바로 해외로 빠져나갈 수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오픈마켓 사업자 중엔 기존 유통채널에 진입 못한 중소 규모 사업자들이 많다.

특히 이미 한국의 IT시장은 글로벌 기업들의 공세에 힘없이 무너진 바 있다. 미투데이와 싸이월드, 프리챌 등 한국 고객들에게 사랑받던 서비스들도 구글과 페이스북, 트위터 등에 밀려 사업을 접었다.

업계 관계자들은 “국내 중소 판매자들과 소비자들 덕에 벌어들인 돈을 외국계 기업들이 자사 이익을 위해 언제 어떻게 쓰고 ‘먹튀’할 지 모를 일”이라며 “현재 G마켓과 옥션이 이름만 국내 기업이지 외국계 유통사라는 것도 모르는 소비자들이 많아 국내 자본이 물새는 지 모르게 빠져나가지 않을까 걱정스럽다”고 우려하고 있다.

외국계 자본의 힘에 휘둘릴 경우 토종 기업이 클 수 있는 자생력이 훼손될 가능성도 크다. 글로벌 유통업체들은 국내 기업과의 상생 보다 철저하게 실적 위주의 행태를 보여왔다. 티몬을 인수한 글로벌 1위 소셜커머스 기업 그루폰은 올해초 그루폰 코리아 임직원들에게 ‘고용승계는 없다’는 방침을 통보하기도 했다. 같은 기간 티몬에선 신입사원 채용공고를 내 ‘냉정한 글로벌 기업’이라는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다.

지난 2006년 세계 유통업계 2위 까르푸가 한국 시장에서 철수할 당시에는 '변칙적 M&A'에 대한 잡음이 컸다. 까르푸는 회사를 인수하려는 여러 업체들 간의 경쟁을 유발시키면서 가격 부풀리기 의혹과 복수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등으로 물의를 빚은 바 있다.

백화점이나 마트 등 오프라인 유통채널에서는 국내 브랜드가 선전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발달한 한국의 전자상거래 시장이 외국계 자본의 힘에 휘둘릴 경우 토종 기업이 클 수 있는 토대가 없어져 버릴 가능성이 크다.

현재 국내 토종 오픈마켓 업체로는 11번가가 유일하게 남아 고군분투하고 있는 실정이다. 소셜커머스 업계에서는 위메프만 남아있는 형국이다.

SK플래닛의 11번가는 올해 모바일과 큐레이션커머스 사업을 강화하는 등 한국 소비자를 타깃으로 서비스를 강화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11번가는 2008년 오픈 초기부터 소비자 신뢰 얻기 위한 정책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내 기업 인터파크 또한 쇼핑부문 사업을 하고 있지만 도서, 티켓 사업에 치중하면서 매년 시장 점유율이 하락 추세다.

오픈마켓의 시장 규모(2013년 기준)는 거래액 기준 16조5900억원으로 추정된다. 이 중 이베이코리아가 63%(G마켓 35%, 옥션 28%), SK플래닛 11번가가 30%, 그리고 네이버의 샵N이 5%, 인터파크가 2%를 차지하고 있다.

티몬, 쿠팡, 위메프의 소셜커머스 3사 중에는 현재 위메프만이 국내 지분 100% 기업이다. 그루폰이 티몬을 인수했듯 쿠팡과 위메프도 외국 유통업체들의 M&A 대상 기업으로 자주 거론되고 있다.

이미 글로벌 업체들은 한국 시장에서 새로운 ‘먹거리’ 찾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최근 공인인증서 사용 의무 폐지와 관련, 간편결제시스템이 주목 받는 가운데 이베이 코리아는 모바일 환경에서 쉽게 결제할 수 있는 `스마일페이'를 자체 개발해 G마켓과 옥션에 적용했다.

미국 이베이의 경우 온라인 매출의 40%가 자회사인 페이팔의 간편결제 '수수료'에서 발생하고 있어 결제 시장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 알리바바의 오픈마켓 서비스인 ‘타오바오’는 최근 한국 드라마 PPL을 시작해 입소문 효과를 노리고 있다. 최근 SBS 드라마 ‘쓰리데이즈’에서 극중 윤보원(박하선)이 한태경(박유천)과 함께 갈 식당을 예약하는 장면에서 타오바오의 애플리케이션 앱이 간접광고 형식으로 노출된 것이 하나의 예다.  타오바오는 중국 내 한류팬은 물론 중국 직구 쇼핑에 관심이 많은 국내 소비자들까지 겨냥해 마케팅 활동을 시작하고 있다. 연말쯤 국내 전자상거래시장의 생태계가 어떻게 변해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