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률 10% 사업이 ‘영업익 50%이상’ 황금알 될줄이야...

“회사는 이익의 15% 이상을 매년 석유개발 사업에 투자해야 하며, 실패하더라도 참여한 직원을 문책해서는 안 된다. 석유개발사업이란 본래 1~2년 내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므로, 10~20년 이상 꾸준히 노력해야만 성과를 얻을 수 있다.” 고(故) 최종현 SK그룹 2대 회장이 생전에 남긴 말이다. SK와 SK 오너가(家)의 석유개발에 대한 강한 집념과 열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SK이노베이션의 베트남 15-1광구 해상시추선 모습. [사진=SK이노베이션]
1980년 11월. 당시 국내 최고의 국영 에너지기업이었던 대한석유공사를 인수할 국내 민간기업이 선정, 발표됐다. 그 전까지 연매출 1조원대의 초대형 공기업 대한석유공사의 지분 가운데 50%는 미국의 오일 메이저인 걸프(GULF)사가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걸프는 한 해 전인 1979년 2월 이란 팔레비 절대왕정이 이슬람혁명으로 붕괴되면서 촉발된 제2차 석유파동 등 국제 정세가 혼란해지자 이듬해 대한석유공사에서 손을 떼기로 했다. 다급해진 우리 정부는 석유공사의 민영화를 결정하고, 민간주인 찾기에 나섰고, 1980년 11월  새 주인을 공개하기에 이르렀다.

태동기- 매출 1000억 기업이 1조 공룡기업 인수하다

회사 이름이 발표되자 말 그대로 ‘쇼킹(shocking)’ 그 자체였다. 당시 총매출 1000억원대에 불과했던 재계서열 10위권의 선경그룹(현 SK그룹)에 1조원 매출의 석유공사가 넘어갔기 때문이다.

대한석유공사 인수는 SK그룹에겐 에너지사업, 구체적으로 석유사업의 첫 단추를 누르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동시에 이전까지 섬유사업으로 창업하고, 경영 기반을 다졌던 SK의 사업구조를 일대 변화시키는 전환점이기도 했다. 이로써 2대 회장인 고(故) 최종현 회장이 줄곧 주창해왔던 ‘석유에서 섬유까지’라는 연관산업의 일관화 경영의 밑그림이 완성된 것이었다.

1982년 7월 대한석유공사에서 ‘유공’으로 사명을 바꾸고 민간체제의 석유사업을 본격적으로 전개한 SK그룹은 이후 SK에너지 체제로 전환, 해외 원유개발사업을 확장하면서 글로벌 컴퍼니의 면모를 갖춰나가기 시작했다.

2010년 SK에너지는 SK이노베이션을 모회사로 SK에너지, SK종합화학(SK Global Chemical), SK루브리컨츠를 자회사로 하는 4개 회사로 물적분할해 ‘SK이노베이션’ 주도의 SK그룹 에너지 개발사업 시스템을 구축했다.

개척기- ‘성공률 10%, 내가 책임진다’ 선대회장의 선견지명

이 같은 태동기를 거쳐 SK이노베이션이 석유개발의 경쟁력 확보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31년 전인 1983년부터였다. 고 최종현 선대회장은 1980년 2차 석유파동을 거치면서 독자적인 에너지 자원을 확보해야 한다는 ‘에너지 독립국’의 여망을 품게 됐다. 그룹에 ‘자원기획실’을 신설하고, 첫 프로젝트로 ‘석유개발 사업’을 발표했다.

몇 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SK이노베이션은 1984년 2월 중동의 북예멘 마리브(Marib) 광구의 석유개발권 지분을 인수한 데 이어 그해 7월 시추정에서 원유 발견, 이듬해인 1985년 11월 마리브 광구 중 하나인 알리프 유전의 사업성을 확인했다. 2년가량의 시추 작업 결과 해외자원개발에서 비교적 짧은 기간인 40개월 만인 1987년 7월 원유를 양산하는 데 성공했다.

석유개발의 성공 확률은 채 10%도 되지 않는다는 게 업계의 정설이다. 따라서 북예멘 광구의 알리프 유전 개발 투자가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여전히 유전개발사업의 낮은 확률 때문에 사내에서 회의론이 팽배했다. 그러나 최종현 선대회장은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오너이자 최종 의사결정권자로서 석유사업 반대론을 때론 설득하고, 때론 정면돌파로 밀어붙였다.

장기간인 데다 낮은 성공률 탓에 해외 유전개발 실패를 두려워하는 임직원들을 격려하고 용기를 심어주는 든든한 후견인 역할을 함으로써 SK이노베이션의 ‘무자원 산유국, 한국’의 자원개발 혁신(이노베이션, Innovation)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는 게 일치된 평가이다.

1996년 남미 페루의 8광구에서 원유의 상업생산, 1999년 베트남 15-1광구의 개발권 획득과 4년여의 탐사 개발 끝에 2003년 상업생산 성공 등은 최종현 선대회장의 선견지명과 확고한 사업 의지의 결실인 셈이다.

성장기- 자원개발 수직계열화 완성, 美 시장 진출 쾌거

잇단 해외 투자의 개가로 석유개발 ‘개척기’를 성공리에 거친 SK이노베이션은 3대 총수인 최태원 회장 때 성장기를 꽃피운다.

최 회장은 2004년 초 석유개발 등 해외사업을 총괄하는 ‘R&I(Resources & International)’ 조직을 신설, 변화된 글로벌 사업 환경에 맞춰 체계적이고 신속하게 해외 에너지 개발사업을 전개해나갔다. 당시 10개국 15개 광구에서 사업을 진행하던 SK이노베이션은 2007년 베트남 15-1/05 광구를 포함한 3개 광구, 2008년 콜롬비아 CPE-5 등 3개 광구까지 모두 6개 광구의 석유개발에 참여한다.

또한 2009년 신규 5개 광구에 투자, 2010년 페루 LNG(액화천연가스) 프로젝트 완성과 브라질 광구의 매각 완료 등 해외 자원개발에 탄력이 붙었다.

SK이노베이션은 “특히 페루 LNG 프로젝트는 최종현 선대회장의 1980년 ‘석유에서 섬유까지’라는 그룹의 유관업종 수직계열화 완성에 더해 최태원 회장의 ‘유전개발에서 가스 생산·수송·수출까지’를 망라하는 자원개발 수직계열화의 완성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프로젝트”라고 말했다.

기존 원유와 천연가스 광구 투자뿐 아니라 대규모 수송 파이프라인 구축과 가스액화 작업, 제품 수출에 이르는 자원개발 전 과정에 참여함으로써 초대형 개발 프로젝트 수행능력을 인정받고, 향후 수주 경쟁력 및 가능성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는 설명이었다. 2010년 24억달러에 성사시킨 브라질 광구 매각사업도 국내 민간기업의 자원개발 최고 성공사례로 꼽혔다.

SK이노베이션은 석유개발사업의 성장기 실적을 바탕으로 올해 석유개발의 메카로 불리는 미국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자회사인 SK E&P America가 미국 석유개발사 플리머스(Plymouth)와 케이에이 헨리(KA Henry)가 보유한 오클라호마의 그랜트·가필드 카운티 광구, 텍사스의 크레인 카운티 광구 등 석유생산광구 두 곳의 지분을 전량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미국의 두 생산광구 인수로 SK이노베이션의 하루 원유 생산량은 현재 약 7만1000배럴에서 7만4250배럴로 늘어났다. 특히 미국 석유개발시장 진출은 최근 각광받고 있는 셰일가스, 셰일오일 등 비(非)전통 에너지 개발에도 청신호를 보내고 있다.

이 같은 성장기 단계에 오른 SK이노베이션의 석유개발사업 성적은 2014년 현재 세계 15개국에서 22개 생산광구, 4개 LNG 프로젝트들로 나타나고 있으며, 지난해 석유개발 부문 매출액 9812억원, 영업이익 5537억원을 거뒀다. 특히 영업이익은 SK이노베이션 계열 전체의 40%를 차지하며 주력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