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농업이야말로 천하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큰 근본이라는 말처럼 농업의 가치나 중요성은 아무리 최첨단사회가 되어도 퇴색하지 않는다. 그 뿐만아니라 농업의 의미는 최근 미래산업을 이끌 주도 산업으로 다시 부각되고 있다. 생명을 다루는 바이오산업의 출발과 끝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농부의 마음을 하나로 결집해 만든 농업생산자단체가 바로 농협이다. 개인조합원 245만 명, 1165개의 조합으로 구성된 매머드급이다. 농민들이 땡볕에서 땀 흘려 번 노동의 대가들이 하나둘 쌓여 규모가 커지고, 농부들이 모이고 힘을 합쳐 이제는 막강한 거대조직으로 거듭났다. 다시 출발한 농협은 이런 미래산업의 중심인 '농촌경제 르네상스'의 주도적 역할자로 나섰다. 농업미래지대본(農業未來之大本)을 이끌 새롭게 태어난 농협의 어제와 오늘을 들여다봤다.

때 이른 초여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22일 안산 대부도의 한 포도농장. 폭염에도 불구하고 포도순 따기 작업이 한창이다. 농민들 틈에서 노란 조끼를 맞춰 입고 서툴지만 진지하게 작업을 돕는 80여 명이 눈에 들어온다. 이들은 본격적인 농사철을 맞아 전국 농촌일손 돕기에 나선 범농협 임직원들이다. 농협중앙회·금융지주·경제지주·관련 계열사 임직원이 모여 조금이나마 일손을 덜어주기 위해 현장지원에 나선 것이다.

지난 22일 경기도 안산 대부도 포도농장에서 범농협 임직원들이 포도순 따기 작업을 돕고 있다. [사진제공=농협중앙회]
농협은 단순히 농민들에게 필요한 자금을 빌려주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현장에 뛰어들어 농민의 일손을 돕고 그를 기반으로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데 몰입하고 있다. 금융기관 본연의 신용사업뿐 아니라 농가소득 증대를 위한 경제사업 지원과 교육지원 등 다채로운 사회공헌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잡은 고기를 나눠주는 것은 물론 고기 잡는 법을 공유하면서 더 큰 나눔을 도모한다는 데 농협의 진정한 힘이 숨어 있다.

 

◇ 조합원·농축협·중앙회 뭉치니 똘망똘망한 조직 됐다

농업인이 중심이 되는 조직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조직으로는 단연 농협이 꼽힌다. 농협은 농업인의 경제·사회·문화적 지위 향상과 농업 경쟁력 강화를 통해 농업인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이를 통해 결과적으로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원대한 목표를 갖고 있다.

지난 1961년 (구)농협과 농업은행을 통합해 종합농협체제로 출범한 이후 괄목할 만한 발전을 거듭했다.  2012년 말 기준 개인조합원 245만 명, 지역 농·축협, 품목 농·축협과 인삼협 등을 합해 1165개의 조합으로 이뤄진 국내 최대의 농업생산자 단체로 우뚝 섰다. 우리나라 농가인구가 약 291만 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조합원 수 245만 명의 농협이 전체 농가 인구의 약 85%를 차치하고 있는 셈이다.

1960년대 농촌에 만연했던 고리 사채를 없애는 데는 농협상호금융이 공을 세웠다. 지난해 12월 기준 총 수신 233조원, 여신 156조원 규모로 성장했을 정도로 농협의 든든한 금고지기 역할을 해내고 있다. 비과세 예탁금 등 정책적 혜택과 높은 고객 충성도를 바탕으로 급속한 성장을 이룬 점이 돋보인다. 특히 읍·면 도서지역에 걸쳐 약 4550개 사무소(지점 포함)를 갖춰 전국 농촌지역 어디에서든 금융소외 계층이 생기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쓰고 있다.

농협은 지난 2012년 3월 사업구조 개편을 통해 협동조합의 정체성은 유지하면서 시장경쟁이 필요한 사업부문에 지주회사 체제를 도입, 전문성과 효율성을 강화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중앙회는 농업인 농·축협 중심 협동조합의 구심체 역할을 맡아 더욱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경제부문은 경제지주 산하에 자회사를 두고 중앙회 판매·유통 등 경제사업을 2017년까지 단계적으로 키워 농민에게 실익을 주는 판매농협으로 개편된다.

또한 금융지주 산하에 NH농협은행·NH농협생명보험·NH농협손해보험 등 7개 금융자회사를 편입해 종합금융그룹 체계로 재편함으로써 국내를 뛰어넘는 ‘글로벌 협동조합’을 향한 거보를 내디뎠다. 농협이 이처럼 강력한 조직으로 거듭날 수 있는 이유는 실핏줄처럼 촘촘히 이어진 농업인 특유의 생활경제와 이심전심(以心傳心)의 네트워크가 마치 땅처럼 굳건한 데서 기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자료제공=농협중앙회]
◇ 한삼인·목우촌·또래오래 등 농가소득 증대 지원

홍삼 한삼인·축산 목우촌 같은 식품 브랜드와 치킨 프랜차이즈인 또래오래는 농협의 농업경제사업 지원으로 탄생한 농식품·축산물 대표 브랜드로 꼽힌다. 이처럼 농협은 농업인들이 영농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생산·유통·가공·소비 등 활동 전반에 걸쳐 다양한 경제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작황에 따라 농산물을 집중 매입하거나 출하해 풍년이나 흉작으로 인한 농산물 가격변동 등에 대응하는 것도 농협 고유의 역할이다. 폭우·폭설·혹서·혹한 등의 경우에도 농산물 가격 안정을 위한 중심추 역할을 해내고 있다. 자연재해뿐 아니라 조류독감·구제역 등 각종 재해로 피해를 입은 경우에도 농협의 어깨가 무겁다. 해당 농가에 자금 지원은 물론 필요한 각종 장비와 인력 지원에 적극 나서는 등 해결사로서 늘 맏형의 역량을 발휘해야 하기 때문이다.

농협의 활동이 농민들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농민에게 유리한 동시에 유관 협력업체 등에도 도움이 되는 상생의 정책을 농협이 늘 염두에 두고 있다는 얘기다.

농산물 도매사업 부문에서 전국 단위 농산물 물류체계를 구축해 산지에서는 생산에만 전념하고, 수요처에는 맞춤형 상품과 연중 안정적인 공급체계를 갖춰 지난 5년간 50% 넘게 성장했다. 2020년까지 매출 7조원 달성, 도매유통 50% 점유를 목표로 하고 있다.

경기도 안성은 경제사업 분야에서 말 그대로 ‘안성맞춤’ 도시다. 지난해 9월 이곳에 문을 연 농식품물류센터는 물류·저장 기능뿐 아니라 소포장·전처리 과정을 통해 편의점·외식업체·신선편의시장·외부유통업체로 유통까지 수행할 수 있는 복합시설로 눈길을 끌고 있다.

축산업을 보고, 만지고, 즐길 수 있도록 꾸민 농축산테마공원도 관심을 가질 만하다. 1969년 한독낙농시범목장으로 설립된 안성팜랜드는 129만㎡(39만 평)의 드넓은 초원에 펼쳐진 웰빙공간이다. 지난 2012년 체험형 놀이목장으로 문을 연 이곳은 다양한 가축들과 교감을 나누며 레저·체험·휴식·교육·맛·문화를 모두 즐길 수 있는 체험학습의 장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이국적인 초원과 독일풍의 건물, 그 사이에서 누비는 가축들을 보며 축산업의 가치를 몸과 마음으로 체험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다.

하나로클럽·마트와 인터넷 쇼핑시대를 맞아 농협a마켓·홈쇼핑 등 다양한 판매채널을 구축해 소매유통 판로도 넓히고 있다. 또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농산물 우수관리제도(GAP)와 HACCP 인증 도축장과 한우 DNA검사 및 항생제 잔류검사를 통한 식품 안전체계도 점차 견고한 틀을 갖춰가고 있다.

지난 3월 21일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에서 전개된 깨끗한 농촌마을 만들기 운동에 참여한 최원병 농협중앙회 회장(사진 가운데)이 농약병·폐비닐·생활쓰레기 등을 수거하고 있다. [사진제공=농협중앙회]
 

◇ 도농 간 가교역할 ‘나눔경영·사회공헌’

지난 12일 서울 도심 한복판 농업박물관 앞 체험농장에서 초등학생 30여 명이 못줄을 잡고 줄에 맞춰 손모내기를 하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과거 조상들의 협동정신을 체험하기 위해 마련된 행사였다. 앞서 지난달에는 농민 복장을 하고 직접 똥장군을 지게에 지고 거름대와 삼태기를 사용해 두엄과 퇴비를 뿌리는 거름내기 체험도 펼쳐졌다.

농촌에서나 볼 법한 풍경이 서울 시내에서 펼쳐진 것은 농협이 운영하는 농업박물관 덕분이다. 농협은 도시민과 학생들에게 농업의 중요성과 전통 농경문화를 알리기 위해 농업박물관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연면적 약 3500㎡ 규모의 박물관에는 5000여 점의 농경 유물이 소장돼 있고, 농업역사교실·농경문화체험교실 등을 마련해 도심 속 우리농업문화지킴이 역할을 한다.

1사 1촌 자매결연을 통해 도시와 농촌이 지속적으로 교류하면서 일손을 돕고 수확한 농작물을 구매하는 등 상생을 추구하는 농촌사랑 운동도 빼놓을 수 없다. 농가에 머물면서 농사·생활·문화체험과 마을 축제에도 참여할 수 있는 팜스테이도 호응을 얻고 있다.

농협의 진짜 매력은 이익에만 올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도농 간 가교역할을 하면서 농촌의 문제점을 해소해주는 농협의 나눔 활동. 조합원의 출자를 통해 사업을 진행하고 여기서 얻은 이익은 또다시 농촌에 환원한다. 농업인들이 농협을 더욱 신뢰하고 의지하는 이유인 셈이다.

농촌·다문화·청년·고령자를 지원하는 등 다채로운 사회공헌 활동도 매우 활발하다. 지난 2004년 약 4000억원 규모의 재단까지 설립해 이후 매년 1000억원이 넘는 막대한 자금을 거름처럼 이 분야에서 활용하며 자양분 구실을 해내고 있다.

최근 농촌 지역에 지속적으로 늘고 있는 다문화가족에 대한 지원도 다양하다. 결혼이민여성과 이들의 2세가 한국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인적 자원화를 위해 기초·1대1 맞춤·전문 농업교육을 실시하는 한편, 상담인력을 육성해 다문화 가족의 정착을 지원한다. 또한 경제적 어려움으로 장기간 친정에 다녀오지 못한 결혼이민여성을 대상으로 모국방문 사업을 진행해 자녀와 함께 온 가족이 모국에 다녀올 수 있는 방문 기회도 제공한다.

농협 관계자는 “농업인의 복지 증진과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도시에 비해 취약한 농촌지역의 의료·교육서비스와 공연·음악회 등 문화 예술 활동도 대폭 지원하고 있다”며 “읍·면 단위지역에 지역문화복지센터 550개소를 운영하는 등 지역 실정에 맞는 문화사업과 맞춤형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생활 속에서 더불어 사는 농협의 지향점을 실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