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세일하는 데 안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다 같이 안 하기로 하면 담합했다는 말이 나올 테고요.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이죠.”

최근 한 화장품 업체 팀장을 만난 자리에서 ‘세일을 너무 자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한 그의 반응이었다. 이제는 너무 무분별하게 세일을 하고 있지만, 이렇다 할 뾰족한 수도 없다는 것. 다른 업체도 입장은 마찬가지다. ‘다 하는데 우리만 안 할 수 없지 않느냐’는 대답에 기자 역시 그렇지 않다고 반박할 수 없는 게 현재의 환경이다. ‘그럼 진작 합리적인 가격에 내놓았으면 좋지 않았느냐’는 말을 하기엔 이들의 최근 성적표가 하락세라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꼴 같아 말을 삼켰다.

로드숍 화장품 브랜드 ‘미샤’를 운영하는 에이블씨엔씨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132억원으로 전년 동기(536억원)보다 75.4% 감소했다. 당기순이익은 420억원에서 126억원으로, 매출은 4523억원에서 4424억원으로 줄었다. 지난해에는 LG생활건강의 ‘더페이스샵’에 1위 자리를 내줬다. ‘네이처리퍼블릭’은 2012년 43억원의 영업 적자를 기록했다. ‘에뛰드’ 역시 2011년 9.1%에서 2012년 8.5%, 2013년 7.7%로 영업이익률이 매년 감소하는 추세다.

이들이 지속적으로 하락세를 보이는 데는 무분별한 세일도 한몫하고 있다는 게 업계 전문가의 지적이다. 경쟁사들이 세일 기간을 공표하면 앞다퉈 다른 업체들도 본격적인 세일에 뛰어든 게 약 2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지난해 상위 5개 브랜드의 세일 기간은 평균 50~60일로 사실상 ‘연중세일’이 지속된 것으로 봐도 무방했다.

치킨게임(Chicken Game)이 떠오른다. 두 대의 차량이 마주 보며 돌진하다가 충돌 직전 한 명이 방향을 틀어서 치킨, 즉 겁쟁이가 되거나 아니면 양쪽 모두 자멸하게 된다는 게임 말이다. 업체들은 본의 아니게 이 시대의 ‘치킨’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게임에서도 그렇듯 이들의 할인 경쟁은 멈추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벌써 이달 들어서 미샤, 네이처리퍼블릭, 에뛰드하우스, 더페이스샵, 아리따움 등 주요 로드숍 화장품의 세일이 진행됐거나 진행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이고, 세일을 멈출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미샤는 중국, 일본, 캐나다 등 해외 시장으로 판로를 개척하고 있으며 더페이스샵 역시 중국에서 긍정적인 호응을 얻고 있다”며 “국내보다는 글로벌 시장에서의 이익에 더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결국 기업은 내수 시장보다는 해외 시장에 더 큰 기대를 하고 있다는 얘기에 최근 명동에서의 경험이 떠오른다. 명동에 즐비한 미샤, 에뛰드하우스, 네이처리퍼블릭, 토니모리, 더페이스샵 매장 앞을 지나갈 때면 이곳이 대한민국인지 또는 중국인지 일본인지 헷갈릴 만큼 한국말을 듣기가 어렵다.

심지어 판매원들은 중국인, 일본인들에게 유창한 그 나라 말로 매장 내부를 둘러볼 것을 권유하며 선물을 건네지만, 국내 소비자는 본체만체한다. 세일 품목 중에서 네일이나 펜슬 등 1000~2000원짜리 사려고 매장 안에 들어가기가 오히려 눈치가 보인다. 반면 마스크 팩을 20~30개 사거나, 화장품 세트를 대량으로 구입하는 외국인에게는 호의적인 분위기다. 끝나지 않는 세일에 이어 국내 시장 외면까지? 이들의 글로벌 전략이 또 다른 치킨게임의 시작은 아닐지 곰곰이 고민해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