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6년 만에 원-달러 환율이 지난주 1030원대로 떨어졌다. 글로벌 달러 약세와 원화 강세 기조 속에 그동안 박스권에서 머물러 있던 대기물량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여파다.

금융 전문가들은 미국 나스닥 ETF(지수연동형펀드)에서 이머징(Ishares MSCI Emerging Markets) ETF로 돈이 몰리면서 달러 약세를 가져왔고, 나스닥에서 유출된 돈이 이머징으로 유입되는 만큼 현지 이머징에서 덜 빠지게 돼 결국 한국시장으로 외국인의 돈이 유입된 것이란 평가를 내놓고 있다.

따라서 금융투자 전문가는 “나스닥지수를 잘 살펴야 한다”며 “나스닥지수 하락이 코스피 강세로 이어지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실제 코스피지수는 지난 10일 외국인의 3000억원에 가까운 순매수로 전날 대비 9.7포인트 오른 2008.61을 기록했다. 같은 날 이머징마켓지수(EEM) ETF도 지난달 17일 952.48포인트에서 3주 만에 약 50포인트 상승한 1021.71로 나타났다. 나스닥지수는 129.79포인트(3.1%)내린 4054.11을 기록했다. 이 같은 코스피의 강세로 원화 또한 당분간 강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원·달러 환율이 1080원대에 이어 1030원대로 결국 970원대까지 곤두박질했다. 현재 원·달러 환율도 1080원 지지대에서 50원이나 맥없이 빠지면서 1030원대를 형성하는 비슷한 형국이다. 이 때문에 외국인의 순매수와 신흥국으로 투자가 분산되면서 원화의 강세가 이어진 것이란 분석이 힘을 얻고 있지만, 일각에선 외국인의 원화 순매수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장담할 수 없다는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보수적인 관점에서 전문가들은 “환율 급락이라기보다는 경상흑자가 지속적으로 오랫동안 상승한 만큼 빠져나갈 시기가 온 것뿐”이라며 시장이 유동성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럼에도 2008년 금융위기와 꽤 흡사한 상황과 단기간에 1050원의 지지대가 무너진 만큼 신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전히 힘을 얻고 있다.

한편, 환율 급락으로 수출 비중이 큰 국내 기업들의 매출 하락이 우려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 관계자는 “국내 기업들이 1050원대를 지지대라고 믿고 있었던 만큼 단기간의 환율 급락에 대응하지 못했다”며 “금융당국과 기업이 환율 하락에 따른 대응책을 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에서 금리인상이 대기 중이고, 글로벌 경기회복 속도가 완만한 편이라 환율이 빨리 내려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지만 현실은 장담할 수 없다”고 낙관론을 경계했다.

동부증권 박유나 연구원 등 시장 전문가들은 “정부가 개입해 1030원 방어선을 지키려 하겠지만 하향돌파 가능성 또한 배제하기 힘들다”고 입을 모았다.

이에 따라 국내 업계는 희비가 엇갈릴 것으로 보인다. 환율 하락이 이어질 경우 IT나 전자부품, 자동차 등 수출 비중이 큰 업계는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투자 전문가들은 “IT와 부품산업 매출이 작년처럼 성장하지 못했고, 업계에서도 보수적으로 대응한 부분도 있어 우려된다. 매출의 1%의 하락은 예상되는 부분이고 1000원 수준까지가 버틸수 있는 마지노선으로 판단된다”고 전망했다. 우리투자증권 하석원 연구원은 “환율은 업계 차원에서 대응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에 전망조차 어렵다”면서도 “수출 비중이 큰 업종들은 부정적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반면 패션, 철강, 유틸리티, 음식료 업계 등은 환율 하락이 반갑다는 표정이다. 수입중간재 비율이 수출비율을 압도하는 업종이기 때문이다.

대신증권 오승훈 연구원은 “원-달러 환율이 주요 지지선을 하향 이탈할 때 철강금속, 전기가스, 화학(정유), 음식료 업종은 원달러 환율 하락에 따라 펀더멘털 개선이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한편, 원-달러 환율 하락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변수가 너무 많다는 지적이다.

이달 중으로 예정돼 있는 미국 재무부의 환율 보고서 발표와 금융당국의 대응에 따라 환율의 변동 추이가 바뀔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 원-달러 환율 하락은 특정 리스크의 문제가 아닌 만큼 명확한 답을 찾기도 어렵다는 의견이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이다.

우리투자증권 이지형 책임연구원은 “경상수지 흑자가 지속되고 있고 주식시장에서 외국인의 매수가 적극적인 상황이기에 원화강세는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하지만 원-달러 환율이 급락하는 것을 외환당국이 좌시하진 않을 것이기에 당분간 달러당 1030~1040원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어 “경기 상황이 2008년 900원대까지 내려간 때보다 좋진 않아 더 내려갈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하는 만큼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다른 전문가들도 단기여파일지, 장기적 흐름으로 이어질지 의견이 엇갈리고 답을 내놓지 못하는 만큼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환율 변동에 민감한 국민이라면 잠시 환율 추이를 지켜보는 것이 최선의 방도일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