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들이 애용하는 ‘정액분할투자법’에 주목…달러 사들이는 부자들 증가 추세

정병민 우리은행 테헤란로 지점 PB팀장은 요즘 <화폐전쟁> 두 번째 편을 탐독 중이다. 한 달여 동안 이 책을 읽고 있다는 것이 정 PB팀장의 고백이다.

그는 시장의 흐름을 좀처럼 예측하기 힘든 시기에는 결국 역사에 주목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덧붙인다.

정 팀장이 지난 1일 만난 부자 고객들만 5명. 피곤이 묻어나는 얼굴로 컴퓨터 모니터를 확인하던 그는 하반기 경기 추이를 묻는 고객들이 부쩍 늘어났다고 귀띔을 한다.

과연 하반기 살림살이는 좋아지는 건지, 경기가 재차 꺾이는 더블딥이 올지 오리무중이다.

최근 만난 부자 고객 중에는 50억 원대 오피스 빌딩을 매물로 내놓은 이도 있다.
정 팀장은 50억 원을 전후한 가격대의 매물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고 귀띔한다.

거액 자산가들이 부동산을 처분하기 시작한 것은 벌써 3년 전부터였다는 것이 그의 회고다.

미 서브프라임 모기지 업체인 컨추리와이드, 워싱턴뮤추얼 등의 파산을 신호탄으로 월가에서 신용 위기가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던 때다.

정병민 우리은행 테헤란로 지점 PB 팀장은 부자 고객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으로 펀드 관련 내용을 꼽았다. 부자들은 3년 전부터 부동산을 매각하기 시작했으며, 요즘도 강남에서는 50억 원대의 오피스 빌딩을 매각하는 고객들이 있다고 귀띔한다. 그는 부자들이 목표 수익률을 달성하면 바로 상환하는 스폿 펀드에도 관심들이 많다고 했다.

정병민 우리은행 테헤란로 지점 PB팀장 “스폿펀드가 다시 뜬다”
지난 2007년, 미국, 한국을 비롯한 주요 글로벌 증시는 유례 없는 상승 국면이었다.

같은 해 미국의 기업 인수합병 건수도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가운데, 태평양을 사이에 둔 한국에서 미국 월가에서 진행 중인 금융 위기의 징후를 엿보는 일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당시에 강남 요지의 부동산을 서둘러 팔아치우던 거액의 자산가들이 대한민국에 있었다는 것이 정 팀장의 회고다.

정 팀장이 부자 고객들의 타고난 감각을 신뢰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맹지(盟地)를 끼고 있는 땅을 사들이는 부자 고객의 고집에 당황했는데,

여기로 길이 나서 놀랐다는 경험담도 털어놓는다. 고객 권유로 보금자리주택에 들어가 재미를 봤다는 에피소드도 덧붙였다.

그는 “돈이 안 될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고 고백한다. 이런 부자 고객들이 요즘 그를 상대로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이 하반기 경기의 추이다.

그리스, 스페인을 비롯한 남부 유럽 국가들의 재정 위기 사태는 대한민국의 부자들을 두렵게 하는 판도라의 상자다.

정 팀장이 예금, 채권, 머니마켓펀드(MMF)를 비롯한 현금성 자산의 비중 확대를 권유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정 팀장은 부자들이 애용하는 투자 노하우로 정액 분할 투자법을 추천한다.

그는 “시장 변동에 관계없이 정액으로 나눠 투자하는 정액 분할 투자법이 ‘매입 단가 평준화 효과(cost average effect)’ 덕분에 더 유리하다”고 설명한다.

요즘 부자들의 기대수익률은 정기예금의 2~3배 수준인 연 7~8% 정도다. 그는 부자 고객들이 목표 수익률을 달성하면 바로 상환하는 ‘스폿 펀드(Spot Fund)’에도 관심들이 많다고 덧붙였다.

강원경 하나은행 압구정 골드센터 PB 팀장은 상업용 부동산을 매입하기 위한 부자들의 입질도 점차 늘고 있다고 귀띔한다. 주로 시가 50억~60억 원대의 건물들이다. 작년 빌딩을 매각해서 현금을 보유한 부유층들이 부동산에 대한 관심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고 설명한다.

강원경 하나은행 PB “브라질 국채 상품 상종가”
강원경 하나은행 압구정 골드클럽 PB는 대한민국 강남의 노른자위인 압구정동에서 부자 고객들을 컨설팅하고 있다.

조선시대에 재상을 지낸 ‘칠삭동이’ 한명회가 세운 정자 압구정에서 유래된 이 동네는 현직에서 은퇴한 나이 지긋한 부자들이 여생을 보내는 부촌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강 PB는 부자 고객들의 은밀한 움직임에서 변화의 낌새를 엿본다. 그는 최근 홍콩의 H주식에 관심을 피력하는 고객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고 귀띔한다.

아직 뚜렷한 추세를 형성하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중국 펀드에 시큰둥하던 부자 고객들의 태도에서 변화의 기미가 감지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상업용 부동산을 매입하기 위한 입질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주로 시가 50억~60억 대의 건물들이다.

강 PB는 “지난해 빌딩을 매각해서 현금을 보유한 부유층들이 부동산에 대한 관심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강남에 위치한 60억대 상업용 빌딩을 사달라고 요청하는 부유층 고객들이 최근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러한 사례를 뭉칫돈이 부동산 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조짐으로 보기에는 성급한 감이 있다”고 설명한다.

물론 지난 2007년 미국발 신용 위기의 조짐을 읽고 서둘러 부동산을 처분한 부자들이 내재 가치에 비해 저평가된 부동산 매물을 눈여겨보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

강 PB는 요즘 자주 받는 질문이 펀드 관련 내용이라고 귀띔한다. 주로 펀드 처분이나 매입 시점을 묻는 질문들이 꼬리를 문다.

지난 2일 현재, 코스피 지수는 1672.82. 강 PB가 보는 펀드 매입 시점은 주가지수 1650선이다. 그런 그가 요즘 주목하고 있는 금융상품은 브라질 국채. 부자들이 선호하는 채권이다.

그는 은행과 증권사의 브라질 국채 상품은 몇 가지 차이가 있다고 지적한다. 은행의 특정 금전신탁 상품이 환 헤지를 할 수 있는데 비해, 증권사의 브라질 국채 관련 상품은 비과세이지만 환 리스크를 헤지할 수 없다는 점이 한계다.

그는 사모 펀드는 테마형을 가급적 피하라고 조언한다. 한때 물 펀드, 럭셔리 펀드 등이 부자 고객들의 주목을 받았는데, 투자 성과가 대부분 좋지 않았다는 것. 금 상품은 부자 고객들 사이에서 여전히 찬밥 대우다.

문의가 뚝 끊긴 지 오래다. 반면 안전자산 확보 차원에서 달러를 사들이는 고객들은 증가 추세다.

강 PB는 채권 운용 전략으로 만기가 서로 다른 채권 상품을 고루 보유하는 이른바 ‘바벨 전략’을 고객들에게 제안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상언 신한은행 PB 팀장은 탄소 배출권도 나름대로 매력적인 투자 자산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사모펀드는 투자 환경 변화에 신속히 대처할 수 있으며, 개인 투자자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줄 수 있는 것이 강점이다.

한상언 신한은행 PB “사모 펀드 인기 뜨거워”
한상언 신한은행 PB는 국내 증시를 화제에 올린다. 작년 말 인덱스 펀드에 가입했다면 수익률은 제로에 그쳤을 것이라는 게 그의 분석이다.

작년 말 코스피지수는 1680. 그는 지난 달 30일 현재 국내 주가지수는 불과 10여 포인트 오르는 데 그쳤다고 강조한다.

원유, 금을 비롯한 상품시장, 스팩 펀드를 비롯해 과거에는 볼 수 없던 금융상품들이 잇달아 출시된 것도 이러한 맥락으로 풀이될 수 있다.

올 들어 지루한 횡보 장세가 계속되자 금융회사들이 불과 수 년 전만 해도 볼 수 없던 금융 상품들을 잇달아 출시하며 고객들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는 것.

한 PB는 재작년 금융 위기 이후 부자 고객들의 변화에도 주목한다. 분위기에 휩쓸려 특정 시장에 들어가는 고객들의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귀띔한다.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좀 더 신중해졌다는 것이 한 PB의 진단이다. 학습효과다. 글로벌 펀드에눈을 질끈 감는 부유층 고객들도 꼬리를 문다.

한국 시장에 올인하겠다는 포석이다. 재작년 이래 부유층 고객들의 주목을 받아온 사모 펀드의 인기는 올 들어서도 좀처럼 식을 줄을 모른다.

시장이 작년에 비해 변동성이 크다 보니, 상품 기획과 출시에 시간이 오래 소요되는 공모 펀드보다 사모가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미국 국채의 금리 차익에 투자하는 상품, 환율에 투자하는 사모 출시가 꼬리를 무는 배경이다.

중국 본토 시장의 우량 기업에 투자하는 ETF를 선호하는 고객들도 증가 추세다. 한 PB는 “탄소 배출권도 나름대로 매력적인 투자 자산이 될 수 있다”며 “사모 펀드의 인기는 당분간 식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투자 환경 변화에 신속히 대처할 수 있으며, 개인 투자자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줄 수 있는 사모 펀드가 금융 상품의 주종을 이루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지난해 이후 꾸준한 하락세를 보여온 부동산은 회복까지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는 것이 그의 진단.

호재 하나로 상한가까지 치솟으며 투자자들에게 막대한 이익을 안겨줄 수 있는 주식과는 여러 모로 차이가 있다는 것.

부자 고객들 사이에서 상업용 부동산 거래가 아직 활발하지 않은 것도 이런 맥락으로 풀이할 수 있다.

박영환 기자 blad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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