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1달러와 연봉 131억원. 단순 숫자로 비교하면 천문학적인 연봉 액수 차이가 난다.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인 마크 주커버그와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지난해 소득 차이다. 얼핏 보면 하늘과 땅의 격차로 보일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두 사람이 보유한 주식 가치를 살펴보면 달라진다. 주커버그의 2013년 주식 자산 규모는 270억달러(약 28조4600억원)이며, 김승연 회장은 6552억원(2013년 12월 기준)이다. 주커버그가 김 회장보다 43배나 많다. 주커버그는 연봉 1달러를 받았지만 지난해 스톡옵션 행사로 33억달러(3조5000억원)를 집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2012년에도 봉급 50만여달러를 포함 연봉 약 200만달러를 받았다. 물론 그해에도 그는 스톡옵션으로 23억달러(2조4000억원)를 챙겨갔다. 미국의 언론마저도 1달러 연봉의 가치를 의미 없다고 잘라 말할 정도다.

 

 

미국도 등기임원의 연봉을 공개한다. 하지만 그 기업의 규모와 영업이익 등의 평가요소에 입각해서 연봉의 액수를 평가한다. 주주들이 등기임원이 적정하게 보상받고 있는지를 오히려 더 따진다. 적정하게 보상을 안 할 경우 열심히 기업을 위해 뛰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지난 1일 개정된 자본시장법에 의거해 공개된 국내 기업 등기이사들의 연봉 금액에 대해 ‘적정성’을 놓고 찬반 논란이 많은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앞으로도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평가기준의 근거치 없이 단순 공개가 지속된다면 기업별, 임원개인의 능력에 따른 연봉의 크고 많음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구속 수감 중에도 지난해 301억원을 받아 연봉(보수) 1위에 오른 SK그룹 최태원 전 회장은 비난을 집중포화로 받았다.

SK측은 “301억원 보수는 전년도(2012년) 실적에 대한 것”이라며 최 전 회장의 구속기간과는 관련이 없음을 해명하는 한편 “보수 수령에 따른 세금 납부액과 2014년에 받지 않은 성과급을 합하면 320억원에 이른다”며 억울하다는 입장을 표시하기도 했다.

반면에 이번 등기이사 연봉공개에서 131억원을 기록했음에도 ‘세간의 눈총’ 세례에서 비껴간 한화 김승연 회장에 대해 세인들은 긍정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김승연 회장은 지난해 계열사 5곳으로부터 131억원의 상여금을 받았다. 이 금액은 지난 2012년 1월부터 8월 16일 구속되기 전까지 근무했던 기간에 대한 성과급이었다. 김 회장은 5개 회사로부터 같은 기간 급여 약 200억원을 수령했지만, 재판을 받느라 경영에 전념하지 못한 것에 대한 도의적, 윤리적 책임 차원에서 전액을 회사에 반납했던 것이다. 또한 올 2월 판결 확정과 대표이사직을 사임하면서 2013년도 보수 전액을 회사에 돌려줬다.

한화 측은 “재판 종료 이후 등기이사 사퇴 등과 함께 여러 조치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김 회장이) 반납 결정을 했고, 지난 3월 20일 각 계열사에 반납조치를 완료했다”고 전했다.

반납한 200억원과 관련해 한화 측은 “세금을 원천징수한 상태로 받은 금액을 다시 반납할 때는 세금을 포함한 전액을 반납한 것”이라며 “근로소득세 38% 등 과세 부분을 감안하면 최소 80억원 이상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세금을 뗀 성과급을 다시 반납할 때 세금을 포함시킨 사례는 단순히 위기 리스크 차원의 기계적 대응이 아닌 ‘경영 공백에 따른 도의적 책임’을 이행하려는 김 회장의 진정성의 표출이라는 점에서 비교적 수긍하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김승연 회장의 급여 반납 같은 ‘통 큰 결정’은 일회성이 아니다.

한화는 1990년대 중반부터 김 회장의 주도로 구조조정을 선제적으로 추진, 곧이어 닥친 IMF 외환위기를 모범적으로 극복한 기업으로 평가받았다. 특히 김 회장은 구조조정 당시 직접 총괄 지휘를 맡아 어려운 고비 때마다 협상 테이블에 나서는 동시에 그 과정에서 그룹의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자신의 개인 주택과 주식 등 사재를 모두 담보로 내놓는 특유의 ‘승부사적 리더십’을 발휘해 위기를 극복해냈다. 당시 7개 계열사를 외국에 매각해 3억3000만달러의 자금을 확보함으로써 이후 한화를 명실상부한 대기업으로 키우는 계기를 마련했다.

지난 1981년 29세라는 젊은 나이에 창업주인 김종희 선대회장으로부터 그룹 경영권을 이어받은 이후 김 회장은 2011년 말 기준으로 30년간 총 자산 135배, 매출액 32배로 늘렸다. 순이익과 자기자본도 163배, 63배로 키우는 데 성공했다. 이 바탕에는 유사업종의 수직 계열화와 태양광 등 첨단산업에 과감한 투자 등을 추진한 김 회장의 강력한 오너 경영과 위기관리 능력이 깔려 있었다고 기업 전문가들은 평가했다.

김 회장의 ‘통큰 결정’은 사업적 성과 등 순수 경영 활동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200억원 반납에서 보듯 김 회장의 진정성은 그룹 오너이자 수장으로서 줄곧 견지해왔던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의리’와 ‘신용’에서 나온다고 김 회장을 아는 기업인들은 서슴없이 한목소리로 말한다.

사실 총수로서 세 차례의 구속이라는 불명예를 쓴 입장에서 세인의 시선은 김 회장의 ‘진정성’에 의문을 표시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김 회장은 한화 구성원들에게 조직, 상사, 동료 및 선후배 간의 의리를 역설해온 것으로 유명하다.

의리의 진정성을 잘 보여준 대표 사례로 IMF 외환위기 때 단행한 구조조정에서 최우선 조건으로 임직원의 고용 안정과 신분 보장을 매각조건으로 관철시킨 것을 꼽을 수 있다. 가령 1998년 한화에너지를 현대정유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김 회장은 20억~30억원 손해를 보더라도 한화에너지 임직원의 고용승계를 보장해 달라고 요구했고 결국 성사시켰다.

또한 대덕 테크노밸리 조성사업도 성공사례로 평가받았다. 다른 기업들은 대덕밸리의 낮은 사업성을 이유로 손사래를 쳤지만 충청 연고기업인 한화는 김 회장의 지역사회 공헌이라는 의리를 내세워 대덕밸리 조성사업을 맡아 성공리에 끝마쳤다. 이를 계기로 한화는 도시개발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됐다.

이 같은 김승연 회장의 진정성은 일련의 국내 기업 CEO들의 자발적인 연봉 반납이나 삭감 움직임과 일맥상통한다. 권오준 포스코 회장은 회사가 수익이 발생할 때까지 연봉 30%를 반납하겠다고 책임경영의 진정성을 드러냈다. 황창규 KT 사장 역시 경영위기 극복을 위한 비상경영의 일환으로 자신의 연봉 30%를 자진삭감한다고 발표, ‘책임경영의 진정성’ 대열에 합류했다.

물론 CEO들이 한결같이 진정성을 스스로 발휘하는 건 아니다. 과도한 연봉 체계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음에도 선제적 내부 조치를 취하지 않던 금융지주사 회장들은 결국 금융당국의 개입을 자초하며 기본 연봉의 30%를 삭감당하는 ‘수모’를 감수해야만 했다.

여전히 연봉공개를 둘러싼 찬반 의견이 팽배하다. 심지어 연봉공개를 주도했던 정치권은 야당을 중심으로 등기이사에서 미등기이사로 물러난 일부 재벌 일가 고위임원의 이른바 ‘갈아타기’ 편법행위를 막기 위해 연 5억원 이상 보수를 받는 미등기이사까지 연봉공개에 포함시키자는 자본시장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어 재계의 우려를 낳고 있다.

이에 대해 재계는 물론 자유경제원을 비롯한 친기업 성향의 경제단체들은 우리나라 등기이사(임원)들의 보수가 외국과 비교해 높지 않고, 국민의 알 권리만 내세워 기업인의 프라이버시(사생활)를 과도하게 침해하고 있는 문제점을 들어 관련법을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례로 애플 CEO 팀 쿡이 스톱옵션을 포함해 지난 3년간 연평균 3780만달러(약 420억원)의 보수를 받고 있으며, 애플 경영진의 평균 연봉이 6240만달러로 삼성전자보다 8배나 많다는 점을 들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미국의 경우 모든 임원(등기이사)의 개별 보수를 공개하라는 게 아니라 연봉 10만달러를 초과하는 상위 3인을 포함한 총 5인의 임원 보수만 공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의 5억원 이상 모든 임원의 보수 공개는 선진국과 비교해 그 범위가 과도하다”고 밝혔다. 앞으로도 임원연봉 공개는 ‘뜨거운 감자’로 논란의 대상이 될 것이라 재계는 전망한다.

기업 관계자는 “한화 김승연 회장의 보수 반납을 포함해 일부 CEO들이 보인 진정성이 기업 오너나 임원들의 적정 보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재고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