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회 연재를 맞아 떠올린 슐렌버거 기장…뛰어난 인재는 열정·취미부터 다르다

권대우 아시아경제·이코노믹리뷰 회장 president@asiae.co.kr

가능한 일이 있고, 불가능한 일이 있습니다. 스스로 가능할 것으로 판단, 일을 시작했지만 일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고,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매일 아침 그 날의 이슈를 잡아 독자들과 대화를 나눈다는 것, 정말 쉬운 일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권대우의 경제레터’였습니다.

경제기자 생활을 30년 이상이나 했으니 당연히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그러나 시작해놓고 보니 그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하루하루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주는 요인이 됐습니다.

때로는 아침 시간의 상당 부분을 갉아먹어 다른 일을 수행하는데 지장을 초래하는 일도 적지 않았습니다. 퇴근시간 웬만한 약속이 있어도 취소하고 경제레터 준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때도 있었습니다.

1970년대 후반. 초임기자 시절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때는 컴퓨터 사용이 범용화되지 않았습니다. 기자의 필수품이 볼펜과 200자 원고지였습니다. 요즘 기자들은 노트북에 메모를 하고, 정리도 노트북으로 합니다. 그러니 지우고, 새로 쓰고 하는 일도 쉽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달랐습니다. 취재수첩에 메모하고, 200자 원고지를 들고 다녀야 했습니다. 원고지에 글을 메워나가다가 잘못되면 다시 써내려 갈 수밖에 없었지요. 원고지 10장짜리 해설 박스를 쓰려면 책상 밑에 버려진 원고지가 훨씬 더 많았습니다.

밤새 원고를 다 쓰고 난 다음 책상 밑을 보면 쓰다 버린 원고지가 수북이 쌓일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생각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난 신문기자가 될 자질이 없어.” 10장짜리 원고지 몇 장 메우는데 밤을 지새워야 하고, 잘못된 원고 다시 쓰느라 버린 원고지가 그렇게 많으니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 과연 역량 있는 기자가 될 수 있을까. 능력이 부족한 걸 알았으니 지금이라도 직업을 바꿔야 하는 게 아닐까…이런 생각을 했겠지요.

그런 제가 매일 아침 경제레터를 쓰기로 결심한 것, 그 자체가 무모한 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50대 중반을 훌쩍 뛰어넘은 때, 그런 생각을 했으니 스스로를 몰라도 한참 몰랐던 셈입니다.

스스로 ‘글 감옥’에 갇히기를 자처한 저의 모습을 지켜본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걱정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글 감옥’을 자처했던 습관이 저에게는 가능성을 조금씩 키워나가는 일과가 돼 버렸습니다.

매일 아침 특정 이슈에 대한 생각을 공유해보자는 소박한 꿈과 이에 대한 여유시간 투자가 나의 생활을 이끌어준 셈입니다. 그러다보니 3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오늘로 ‘권대우의 경제레터’를 보내기 시작한 지 700회가 됐습니다. 지나 놓고 보니 저 자신에게는 대견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부족한 지식, 짧은 필력으로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아침마다 함께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큰 행복이었습니다. 매일 매일 새로운 이슈를 선정해 관련 자료를 뒤적이고,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했던 습관은 부족한 저를 메워주는데 큰 힘이 됐습니다.

물론 더 큰 힘은 독자들의 격려와 사랑이었습니다. 독자들의 격려와 사랑이 없었다면 3년 넘게 이 일을 계속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 아침 ‘권대우의 경제레터’ 700회를 맞으면서 비행기 조종사인 슐렌버거를 떠올렸습니다. 그는 역사에 남을 훌륭한 조종사 임무를 수행한 분입니다. 그가 평소 살아온 얘기를 들으며 ‘나도 그와 닮은 인생을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해보게 됩니다.

2009년 1월15일. 미국 뉴욕의 허드슨 강에 육중한 비행기가 비상 착륙했습니다. 탑승한 승객은 155명이나 됐습니다. 전 세계의 언론들은 연일 이 사실을 주요 기사로 다뤘습니다.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많은 탑승자가 있었지만 이 사고로 죽은 자는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모두가 안전했습니다. 이를 보고 지구촌의 많은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기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대형사고가 일어나야 할 상황에서 탑승객 모두의 생존이 가능했다는 것-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위기의 순간, 엄청난 인명이 죽음으로 몰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천사의 역할을 수행한 사람은 기장인 슐렌버거였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운이 좋아서 일까?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슐렌버거 기장. 그는 10대에 남들과 달랐다고 합니다. 친구들이 운전면허를 따기 위해 노력하는 동안 그는 다른 목표를 정했습니다. 파일럿 자격증을 따는데 많은 노력을 투자했습니다.

유년 시절. 그는 모형 항공모함을 조립하는 일을 즐겼습니다. 부품 하나하나에 일일이 페인트칠까지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취미 역시 달랐습니다. 글라이더 비행기 날리기였습니다. 남는 시간을 쪼개 여객기파일럿협회의 사고조사관으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연방의 항공 관리자들과 함께 여객기가 사고를 냈을 때 기체 탈출에 관한 트레이닝과 방법을 찾아내는데 열정을 쏟는 일도 잦았습니다.

위기 상황에서도 많은 인명을 구할 수 있는 저력은 그런 그의 성장 과정, 경력, 여가활동 경력에서 나왔습니다. 비행기가 비상착륙하고 난 후 마지막까지 남아 기내 전체를 두 번이나 돌아보며 남은 승객이 없는지 확인하는 여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뉴욕 주 공공안전부문 장관인 마이클 발보니(Michael Balboni)가 기장으로서의 뛰어난 능력을 칭찬하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평소 익힌 대로, 훈련 받은 대로 했을 뿐입니다.” 지극히 겸손한 코멘트 한 마디를 했을 뿐입니다. 최근호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는 슐렌버거 기장의 이 같은 역량을 특별한 관점에서 분석하고 있습니다.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들이 항상 부딪히게 되는 문제가 있다. 역량 있는 스타와 자격 미달인 사람을 어떻게 구별, 채용할까 하는 것이다. 수많은 이력서들 가운데 어떤 이력서가 뛰어난 것일지 어떻게 판단할까?”

“슐렌버거 기장의 사례를 보고 난 후 당신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될 것이다. 특정분야를 넘어선 곳에 관심이 있거나 좀 더 넓은 분야에 소통이 가능한 사람을 고용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집착은 성공으로 가는 좋은 이야기가 될 수 있다. 한 사람의 집착을 이해하는 것은 그의 자연스러운 열정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 열정은 지구 끝까지 가지고 가고 싶어 하는 것이다.”

“여러 지원자들 속에서 슐렌버거 기장과 같은 인재를 가려내는 쉬운 방법이 있다. 이 방법은 지금까지 그리 중요한 요인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지원자들을 기술, 경력, 지식 등에 의해 가려낸 다음 한 가지를 질문해 보라. 취미와 여가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 슐렌버거 기장이 뛰어날 수 있었던 점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