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델라 카사(Thomas Della Casa) 맨 인베스트먼트(Man Investment) 본부장은 스위스 국적의 금융전문가다.

한눈에 보기에도 190cm은 넘어 보이는 큰 키에 금테 안경을 착용한 그는 지난 3월 서울을 방문하고 돌아갔다. 그가 소속된 이 헤지펀드는 대안투자 부문의 강자다.

절묘한 위기관리 노하우로 정평이 나 있는 이 헤지펀드는 재작년 미국 리먼브러더스 발 글로벌 금융 위기의 후폭풍을 비껴갔다. 운용 규모만 424억 달러에 달하는 헤지펀드다.

대한민국의 대안투자 시장을 두드리는 글로벌 헤지펀드의 발길이 부쩍 잦아졌다. ‘맨 인베스트먼트' 관계자의 방문에 이어, 최근 미국의 사모펀드(PEF)인 블랙스톤 경영자가 다시 4월 초 방한을 하면서 이른바 ‘대안투자’를 둘러싼 관심도 부쩍 높아지고 있다.

주요 사모펀드의 대안투자 담당자들의 방문이 부쩍 증가한 배경에는 올 들어 고속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한국의 대안투자 시장을 빼놓을 수 없다. 국내에서 올해 출시된 펀드의 30% 이상이 바로 ‘대안펀드’다.

미래에셋맵스운용을 비롯한 주요 자산운용사들도 대안투자본부를 신설하거나 인원을 보강하는 등 관련 조직을 키우고 있다.

대안투자 상품은 물, 통화, 원자재, 농산물, 예술품을 비롯한 가축을 일컫는다. 그리고 대안투자펀드는 주식·채권 일변도에서 벗어나 투자 대상을 이들 상품으로 확대한 금융 상품이다.

위험을 분산하고, 투자 수익을 높이기 위한 목적에서 주로 헤지펀드들이 많이 활용하는 투자 상품이다.

국내에서 대안투자 상품들이 잇달아 선을 보이는 이면에는 정부의 강력한 경기 부양 의지 속에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부동산 시장마저 침체에 빠져 있어 딱히 돈을 굴릴 곳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 한몫을 하고 있는 것. 대안투자 상품은 뭉칫돈의 물길을 되돌릴 미끼인 셈이다.

증권사, 자산운용사를 비롯한 국내 금융사들의 입장에서는 주식·채권 투자의 단조로움을 폭넓은 대안투자 상품으로 보완해 ‘수익성’ ‘위험 관리’라는 양립하기 힘든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겠다는 포석이다.

작은 충격에도 출렁거리는 변동성이 강한 장세에서는 위험 분산이 투자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 변수다.

지난해 자통법이 발효된 한국시장 상황도 주효했다. 증권사와 보험사들이 은행의 지급결제 영역을 넘보는 등 물고 물리는 각축전이 뜨거운 가운데 주요 금융사들이 이들의 노하우에 자연스레 눈을 돌리고 있다는 것.

위험관리·고수익 두 마리 토끼 좇아
대안 상품 투자가 화려한 조명을 받은 것은 재작년 미국발 금융 위기를 전후한 시기이다.

금융 위기로 미국, EU, 일본, 한국을 비롯한 주요 증시의 주가 지수가 40% 이상 급락하고 그 후폭풍으로 문을 닫는 회사들이 속출하자, 투자 위험을 적절히 분산할 ‘완충 장치’가 절실해졌다.

주식·채권 포트폴리오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신흥시장, 유럽연합, 미국 등 국내외 주식·채권에 골고루 투자하며 위험을 분산해온 투자자들은 리먼 발 금융 위기로 미국을 필두로 글로벌 주식시장이 무너져내리자 속수무책이었다. 주식시장 전체가 무너져내릴 때는 분산 투자의 노하우가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헤지펀드 업체들의 대안투자 운용전략이 초미의 관심사가 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금융 위기의 격랑에 휩쓸려 떠내려간 헤지펀드들이 속출했지만, 투자 대상을 주식·채권은 물론 통화, 옵션, 부동산, 가축, 귀금속, 예술품, 파생상품 등으로 확대하며 위험을 분산한 업체들은 손실 폭을 줄이거나 막대한 수익을 올리며 주목을 끌었다.
이 와중에 대박을 터뜨린 것도 역시 투자은행 출신의 금융전문가들이 주도하는 헤지펀드들이었다. 존 폴슨을 비롯한 주요 헤지펀드 운용자들은 이른바 부동산 버블을 내다보고 베팅한 ‘대안투자’로 ‘돈방석’에 올라 앉았다.

존 폴슨이 부동산 시장의 버블 붕괴를 예측하고 계약한 대규모 ‘CDS(Credit Default Swap)’ 로 올린 차익만 무려 150억 달러. 온두라스와 볼리비아 그리고 파라과이의 국내 총생산에 맞먹는 수치이다.

성공한 헤지펀드들은 정세의 변화에 주목하며 스위스 프랑화 포지션을 늘리고 달러 비중을 축소했다.

때로는 태국 해안가의 땅을 사들이고 팔라디움이나 동을 매각하는 등 탄력적인 자산 운용으로 위험을 분산하고 수익을 극대화했다. 헤지펀드들이 연간 수십 퍼센트에 달하는 수익을 올린 이면에는 이러한 노하우가 있었다.

한우 투자 등 이색 대안 펀드도 눈길
시장에 봄기운은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 글로벌 경제가 여전히 혼조세를 보이고 있지만, 미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들은 여전히 저금리 정책 공조의 끈을 움켜쥐며 경기 부양의 군불을 때고 있다.

막대한 빚을 얻어 고급 주택을 사들이던 미국의 소비자들이 저축을 늘리는 등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고 빚을 털고 있는 것도 호재다.

경기가 호전되면 소비 심리가 되살아나고, 팔라디움이나 원유를 비롯한 원자재 수요가 커질 개연성이 크다.

재작년 금융 위기의 직격탄을 맞아 가격이 30% 정도 하락한 팔라디움은 올 들어 내구재인 자동차 수요가 기지개를 켜면서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복잡한 변수들이 서로 얽혀 있지만, 경기 회복 국면은 일반적으로 대안투자의 호재다. 니켈, 아연, 구리를 비롯한 비철금속이 연일 상승세를 보이는 것도 경기 회복에 따른 수요 증가가 한몫을 한다. 국내에서 대안투자를 할 수 길은 간접 투자 상품을 통해서다.

국내 금융사들은 해외 업체들이 설계한 엄브렐러 펀드를 들여와 재판매하거나, 국내에 있는 대안투자 상품을 겨냥한 펀드를 출시해 금융 소비자들의 주목을 끌고 있다.

한국투자농산물특별자산펀드(한국투자증권), 우리투자증권의 우리Commodity인덱스플러스특별자산 등이 이 범주에 들어간다.

이색 대안 펀드도 눈에 띈다. ‘마이에셋롯데쇼핑-순한한우특별자산은 생후 6개월 된 송아지를 구입해 2년 동안 사육한 후 시장에 팔아 발생하는 수익금을 배당한다. 증시 하락장에서 수익을 내는 리버스펀드 역시 대표적인 대안투자형 펀드다.

최정원 현대증권 애널리스트는 “상품시장의 혼조세와는 달리 상품투자 펀드들은 투자 품목별로 수익률의 편차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영환 기자 blade@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