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상하이 같은 중국의 대도시에서 택시만 타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운전석을 둘러친 ‘방범용’ 철창이다. 중국 대도시의 택시 기사들은 얼마 전만 해도 범행 대상이 되곤 했다. 일반인들로서는 쉽게 만지지 못할 거금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몇 년 전만 해도 택시 운전기사 하면 으레 우쭐한 모습을 떠올렸다. 그만큼 택시 기사는 돈을 많이 버는 인기 직종이었다. 신입 대졸 직장인의 평균 월급이 2000(약 40만원)∼3000위안이었던 시절 택시 기사들은 8000∼9000위안을 챙겼다.
사정은 달라졌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경기침체의 한파에 맞닥뜨린 중국 곳곳에서 요즘 택시 기사들은 사납금 채우기도 벅차다. 시민들이 지출을 줄이면서 생계까지 위협받고 있을 정도다. 최근 부쩍 잦아진 택시 파업은 글로벌 경제위기가 중국의 실물경제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반증이다.
택시 파업은 지난 3일 충칭(重慶)에서 가장 먼저 일어났다. 이날 8000여명의 택시 기사는 사납금 인하와 ‘헤이처(黑車)’로 불리는 불법 자가용 영업에 대한 단속 등을 요구하며 전면 파업했다. 충칭의 택시 기사 9000여명 가운데 절대 다수인 90% 정도가 파업에 참여한 것이다.
기사들은 시내 중심가에서 파업에 불참한 택시를 세워 기사와 승객을 끌어내리는가 하면 택시 20여대와 경찰차 3대를 파괴했다.
택시 파업은 다른 지역까지 확산돼 서부·남부 지방으로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내륙 간쑤성(甘肅省) 융덩현(永登縣)에서도 지난 10일 택시 기사들의 거센 시위가 벌어졌다. 기사들은 현내의 택시가 280여대에 불과한 반면 헤이처는 700여대에 달해 먹고살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경기하강에 따른 수입 급감이었다.
관광지로 유명한 하이난성(海南省) 싼야(三亞)에서도 택시 기사 수백 명이 운행을 중단하고 시청 앞으로 집결했다. 싼야에서는 6개사 1000여대의 택시가 영업하고 있다. 하지만 헤이처는 2000대가 넘는 데다 회사에서 사납금을 인하하지 않아 먹고살기 힘들다는 게 시위의 원인이었다.
시위가 소요로 비화할 기미를 보이자 해당 지역 당서기나 시장이 사태 해결에 발벗고 나섰다. 중국에서 노동계층의 시위에 지도자가 직접 나서 자제를 호소하는 것은 매우 보기 드문 일이다. 하지만 최근의 사태는 지도자들을 바짝 긴장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충칭에서는 보시라이(薄熙來) 당서기가 나흘째 파업 중이던 택시 기사 대표들과 직접 협상했다. 싼야에서는 왕융(王勇) 시장이 파업 이틀 만에 기사들에게 근무환경 개선을 약속하며 그동안 미진했던 부분도 사과했다.
중국의 노동문제 전문가들은 “최근 대도시 택시 기사가 기피 업종으로 변하고 있으며 기사 중 70∼80%는 도시 아닌 인근 농촌 출신으로 채워지고 있다”면서 “택시 파업은 그 자체가 세계경제의 위기와 이에 따른 중국의 경기하강을 절실히 느끼게 해준다”고 지적했다.

아시아경제 송화정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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