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가 본 지주사 조직개편

“전통적인 상업은행의 기능인 여.수신, 보험, 그리고 자산관리(Wealth Manage-ment) 등을 통합한 비즈니스 모델이 씨티뱅크의 선택이었습니다만 금융위기의 여파로 커머셜(상업은행)과 자산.증권.보험을 분리하지 않았습니까.”

금융지주회사들이 잰걸음을 밟고 있다. ‘영업’과 ‘전략’, 그리고 ‘재무’가 글로벌 경제위기 탈출의 핵심 키워드이다. 상고 출신 ‘트로이카(Troika)’ 진용을 구축한 지난 12일 신한금융지주 인사가 그 피날레였다. 자통법 이후 금융 복합기업 시대를 대비한 조직 정비도 마쳤다.

금융 계열사들의 ‘독자 경영’과 ‘시너지’를 정조준했다. 비용절감 차원에서 중복 업무를 단일화하고, 금융상품도 교차 판매하며, ‘베스트 프랙티스’를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장수’들의 경쟁은 물론 협력과 공존을 유도해 경영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조치이다.

보험, 증권, 은행, 카드 등 백화점식 영역 확장에 주력해 온 국내 금융지주사들의 이른바 ‘따로 또 같이’ 경영인 셈이다. 자통법, 글로벌 금융위기를 풀어나갈 국내 금융지주사들의 모범답안이다. 하지만 최근 ‘매트릭스형 조직개편’이 자칫하다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들려온다.

금융지주회사의 한 고위 관계자는 “그룹 회장들이 강력한 카리스마를 발휘하는 신한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 정도가 매트릭스 운용에 적합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독자행보를 취하는 부문장들을 통제할 강력한 리더십이 결여된 지주사들은 분권형 시스템이 혼란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진단이다.

미국계 컨설팅그룹인 ‘딜로이트 컨설팅’의 정윤영 상무를 만나 작년 말 이래 숨가쁘게 진행돼온 국내 금융지주사들의 위기 대응 시스템, 그리고 조직 변화에 대한 진단에 귀를 기울였다. 정 상무는 미국의 보험사인 아비바(Aviva), 캐나다의 티디뱅크(TD Bank), 홍콩상하이은행(HSBC), 그리고 영국의 에임트리마크(AIM Trimark) 등을 경영진단한 이 분야 대표 컨설턴트이다.

국내 은행들도 지난 10여년간 상전벽해식 변화를 겪지 않았습니까. 글로벌 금융사들과 실력을 견줘보면 어떨까요.
지난 1997년 외환위기 때만 해도 리스크 관리에 어두웠습니다. 정부만 바라보는 형국이었죠. 하지만 지금은 인적 자원도 뛰어나고 그 경험도 풍부해졌습니다. 위험관리 툴(tool)도 뛰어난 편입니다.

금융지주사들은 글로벌기업들의 움직임에도 매우 민감한 편입니다. 씨티그룹이 채택한 ‘매트릭스(Matrix)’를 도입하는 곳도 늘고 있습니다.
세 가지 장점을 꼽을 수 있습니다. 부문별 교차 판매(Cross-selling)로 이종 부문 간 시너지를 꾀할 수 있습니다. 또 중복되는 후선 지원 업무도 대폭 줄여 비용 대비 효율성을 높일 수 있겠죠. (서로 다른 부문을 하나로 조율할 ) 전략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는 강점도 있습니다.

SK그룹의 이른바 ‘따로 또 같이’ 경영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입니다. 경쟁과 협력의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포석인가요.
계열사들의 자율경영을 유도하면서도, 전략 목표라는 한 방향을 향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나가기 위한 포석이라고 볼 수 있겠죠. 글로벌 금융위기와 자통법 시대를 맞은 금융지주사들이 경영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조직입니다. 글로벌 금융사들도 비슷한 단계를 거쳤습니다.

‘전략과 재무 부문’을 통합한 KB국민지주의 사례도 눈에 띕니다. 연구개발에서도 투자 대비 효율을 따지는 요즘 추세를 떠올리게 합니다.
리스크 관리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는 방증이겠죠. 이번 위기를 이겨내는 기업들은 시장에서 무수한 성장의 기회를 맞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인수합병이나 신사업의 추진을 재무적 관점에서 더욱 철저히 검토하겠다는 포석입니다. 전략과 재무 양 부문을 힘찬 배경입니다.

하지만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직격탄을 맞은 씨티그룹은 정작 조직형태를 바꾸고 있지 않습니까.
전통적인 상업은행의 기능인 여·수신, 보험, 그리고 자산관리(wealth management) 등을 통합한 비즈니스 모델이 씨티뱅크의 선택이었습니다만 금융위기의 여파로 커머셜(상업은행)과 자산·증권·보험을 분리하지 않았습니까. 이러한 씨티모델이 한국 실정에 적합한지는 좀 더 고민할 필요는 있다고 봅니다.

정부 입김이 강하거나 전문경영인의 장악력이 떨어지는 지주사들은 리더십의 부재나 충돌 현상에 시달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요.
기능별로 전략, 리테일, 재무 부문 등을 담당하는 부문장이 지주사에서 활동하며 자신의 담당 분야에 한해 계열사들을 통제하는 방식이 ‘매트릭스’가 아닙니까. 이 경우 계열사 담당자가 지주사 부문장보다는 직속상관인 CEO에게 더 충성하는 부작용도 발생할 수 있겠죠.

한 나라를 창업한 유방도 ‘신하’이면서도 독자세력으로 움직이던 한신 탓에 골머리를 앓지 않았습니까.
매트릭스 형태로 가는 추세는 우리나라 금융지주 자회사들의 효율성이 아직 떨어진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조직 형태에 정해진 답은 없다고 봅니다. 글로벌 금융기업들은 매트릭스 형태를 갖추지 않고도 계열사들의 협업과 경쟁을 효율적으로 유도하는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지주사 회장은 ‘비전’을 제시하고 동일한 전략으로 이질적인 분야를 하나로 묶는 역할을 담당할 수 있겠죠.

국내 금융지주사들은 전략의 과잉이 아닐까요. 작년에 아마존에서 뜬 경영서들의 대부분이 실행을 다룬 책들이었습니다.
그런 면이 있다고 봅니다. 경영자의 전략적 결단은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위기의 시대에는 업무 프로세스의 효율성을 높이는 일 또한 빼놓을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직급을 가리지 않고 모든 이들이 전략을 논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글로벌 금융사들은 수년 전부터 ‘프라이싱(pricing)’, ‘위험 예측 시스템’에 관심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국내 금융사들은 정작 이 분야에서는 아직 걸음마 단계입니다.
미국의 보험사인 ‘아비바’를 상대로 경영진단을 수행하지 않았습니까.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보험사들은 항상 리스크에 노출돼 있습니다. 보험금을 부당한 수법으로 챙기는 사례가 보험금 지급액의 10% 정도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글로벌 금융사들은 보험사기를 예방하는 선제적인 대응시스템 구축에 상당한 공을 들여왔습니다.
보험 가입자의 직업군, 소득, 자녀 수, 병원과 자택의 거리 등을 따져 리스크를 관리하는 예측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금융사들도 상당수가 모기지 신용위기로 흔들리고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빅4’가 한꺼번에 흔들리는 사례는 드문 듯합니다.
국내 금융사들의 리스크 관리 수준이 1997년에 비해 큰 폭으로 나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은 가야 할 길이 멉니다. 정부의 입김이 여전히 강한 한국적인 상황 등도 물론 감안해야겠죠.

순혈주의에 방점을 둔 인사가 경쟁력 약화를 초래하는 요인은 아닐까요. 다들 자사 출신을 중용하려고 합니다. IBM을 바꾼 루 거스너는 과자회사의 CEO가 아니었습니까.
금융 부문은 대단히 복잡한 영역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발상이 다른 타 산업 출신의 진입이 불가능하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글로벌 금융시장을 봐도 다른 분야처럼 활발하지는 않을지 몰라도 이종 업종 출신의 이 분야 진출이 일정 비율을 차지합니다. 금융권 내의 타사 출신들에게 문호를 개방하는 것은 물론 빈번합니다. 정교한 시스템을 구축해 놓고도 똑같이 위기를 겪는 것도 서로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번 금융위기가 수습단계에 들어서면 성장의 호기가 펼쳐질 것이라는 관측이 많습니다. 금융지주사들은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신한은행이 올해 중국에 법인을 세울 예정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협소한 국내시장에서 벗어나 해외시장을 두드리는 금융사들이 적지 않습니다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산탄데르은행처럼 익숙한 시장을 우선 공략해 거점으로 확보하고 인접 부문으로 활동영역을 넓혀가는 방식이 필요합니다. 전략을 처음부터 다시 짜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멀리 내다보는 일도 중요하지만 기존 업무 처리의 효율성을 높이는 일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예컨대, 보험 영역은 사건사고 시 보험금 지급 관리를 지금보다 더 과학적으로 접근해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프라이싱도 좀 더 정교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박영환 기자 blade@ermedi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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