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논리가 통하지 않는 자동차보험으로 손보회사들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영업손실을 감수하며 골병이 들고 있다. 팔면 팔수록 손해를 보기 때문. 그러나 자동차보험은 의무보험이기 때문에 정부의 입김이 작용, 손보사 마음대로 보험료를 올릴 수 없다. 손보업계 일부 전문가 사이에서는 차라리 정부가 자동차보험의 책임보험을 운영하라는 주장도 나온다.

 

손해보험업계가 자동차보험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손해율이 치솟아 팔면 팔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다. 그러나 자동차보험은 손해보험사 마음대로 가격을 올리지 못한다. 의무보험으로 정부의 입김이 작용하기 때문. 최근 손보업계는 부담을 덜기 위해 사고건수제 도입, 책임보험 2억원으로 인상, 외제차 등급 변경 등의 방안을 논의하고 있지만 임시방편일 뿐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라는 평가다. 따라서 일부 전문가는 기업 논리에 맡기지 못할 바에는 아예 정부가 자동차보험을 운영하라고 주장한다.

최근 금융권 구조조정이 거세다. 증권사와 카드사는 물론 은행도 대규모 구조조정 중이다. 보험업권도 예외가 아니다. 업계 1위인 삼성생명·화재가 구조조정 방안을 본격화하자 눈치를 보고 있던 중·소형사들이 줄줄이 구조조정 방안을 내놓거나 내놓을 예정이다.

보험업권은 상대적으로 다른 금융권역보다 경제의 영향을 덜 받는다. 은행은 물론 카드사나 증권사보다 호흡이 길다. 즉, 경제 부침에 따라 보험가입을 급하게 늘리거나 줄이지 않는다. 따라서 보험업권의 구조조정은 전 금융영역이 곪을 대로 곪아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금융업계 한 연구원은 “일반적으로 보험은 활황기라고 해서 갑자기 더 많이 가입하거나 불황기라고 해지하지 않는다. 보험 상품은 다른 금융상품보다 가장 늦게 가입하고 마지막으로 해지한다”며 “보험업권에서 구조조정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금융업권 전체가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보험업권 중에서도 더 골치가 아픈 곳은 손해보험사들이다. 올 상반기(4월~9월) 손해보험사의 당기순이익은 1조1184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25.5%(3834억원) 감소했다. 자동차보험 때문이다. 제 살 깎아 먹기 식의 치열한 경쟁도 문제지만, 정부의 입김으로 인해 손해를 보면서도 보험료를 올리지 못한다.

대형 손해보험사 한 관계자는 “금융당국은 보험사 자율로 보험료를 올릴 수 있다고 말하지만 이는 실제와 다르다”며 “자동차보험은 의무보험이기 때문에 가격을 조금이라도 올리려면 정부의 눈치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2008년 이후 단 한 해도 자동차보험이 이익을 내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요컨대 정부가 암묵적으로 가격을 통제, 자동차보험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어쩔 수 없이 판매하는 상품이다.

 

◆ 높은 손해율은 기조적 문제, 보험료 현실화 주장

실제 자동차보험의 현재 손해율은 86%로, 자동차보험으로 인한 올 한 해 손해액은 1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손해율이란 자동차보험에 가입한 고객으로부터 받은 보험료에 대한 보험금 지급 규모의 비율이다. 손해율이 90%라면 100원을 받아 90원을 지급했다는 뜻이다. 손해보험사 임직원의 급여나 설계사 수수료 등을 고려할 때 적정 손해율은 75~77% 정도다. 만약 이 이상으로 증가하면 역마진이 발생, 즉 보험사는 손해를 보면서 상품을 판매하는 셈이 된다.

문제는 올해 피해를 줄 만한 태풍도 없었고, 뚜렷한 집중호우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 지난겨울 폭설로 인해 잠깐 손해율이 90%에 육박했지만 봄부터 차 사고를 부를 정도의 기상악화는 없었다. 자동차보험 손해율 상승은 당분간 발생하는 일이 아닌 기조적인 문제라는 인식이다.

손보업계는 보험료를 현실화해 적어도 손해는 보지 않도록 해달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일부 손해보험사들은 경쟁적으로 부과했던 할인 서비스를 축소하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고객에게 돌아가는 서비스가 줄어들면 재계약율이 낮아지는 것은 뻔하다. 그러나 손실 폭을 조금이라도 줄여보자는 의도에서다.

실제 자동차보험 충성도는 낮다. 1년마다 만기되며, 만기를 맞은 소비자 10명 중 3명은 다른 보험사로 갈아탄다. 이 때문에 가격과 서비스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서비스를 줄이고 있는 것은, 경쟁 자체를 포기하겠다는 의미다.

손해보험협회 관계자는 “올해 자동차보험만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전업사가 사실상 사라졌다. 즉, 자동차보험으로는 도저히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는 의미”라며 “손해보험사도 기업이다. 기업이 장기간 손해를 보면서 상품을 판매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손해보험 업계도 노력을 안 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공청회를 진행, 자동차보험료 할증기준을 기존 ‘점수제’에서 ‘건수제’로 변경할 것을 공론화했다. 점수제는 사고의 경중에 따라 점수를 매겨 보험료를 할인 또는 할증하는 제도고, 건수제는 이와 관계없이 건수에 따라서 보험료를 할인 또는 할증하는 제도를 말한다.

허창언 금융감독원 부원장보는 이 자리에서 “자동차보험 할증제도는 1989년 개정된 이후에 24년간 변화가 없었다. 의견을 종합해 조만간 입장을 정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주 홍익대 교수는 “시뮬레이션 결과 보험사가 보험금을 지급하는 손해율은 점수보다는 건수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1989년 점수제 도입 당시 차량 대수가 355만 대에서 지난해 1828만 대로 5.1배 증가하였으나, 사망자 수는 1만 명에서 지난해 4000명으로 63% 줄었다”고 밝혔다. 아울러 “일본 등 대부분 보험 선진국에서는 건수제를 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요컨대 가벼운 물적 사고가 대다수인 상황을 현행 점수제가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반면 반대 의견도 있다. 건수제가 도입되면 사망사고 운전자보다 접촉사고 운전자가 보험료를 더 내는 불합리한 요소가 있으며, 전체적으로 보험료가 상승할 수 있다는 것. 소액 사고는 보험처리보다 자비 처리가 많아질 우려 등이다.

손보사들의 자구책도 보인다. 국산차를 타는 서민들이 외제차 보험료를 일부 내주고 있다는 지적에 따라 외제차의 자차보험료 기준을 더욱 세분화했다. 따라서 내년부터 일부 외제차 보험료는 상승, 형평성을 맞췄다. 또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자동차보험 진료비 심사를 진행, ‘나이롱 환자’를 선별하고 과잉진료를 적발할 수 있도록 했다.

국토교통부도 자동차보험 개선 방안을 내놓았다. 책임보험의 보상한도를 현재 1억원에서 최고 2억원까지 올리는 것이다. 책임보험은 운전자라면 누구나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보험으로, 자동차 사고로 상대방이 죽거나 다친 경우 보상하는 대인배상 보험이다. 지금까지 보상 한도가 낮아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다.

평균 사망보험금은 1억800만원이며, 경제활동인구인 20~50대는 1억8000만원이다. 그러나 책임보험에 가입되어 있어도 사망사고 등은 전액 보상할 수 없다. 따라서 이를 끌어올리겠다는 방침이다. 물론 책임보험 보상한도를 높이면 보험료도 상승한다는 반발도 있다. 하지만 이로 인한 보험료 상승은 소폭이다.

그러나 이런 자구책들이 모두 시행된다고 해도 임시방편일 뿐이라는 주장도 있다.

자동차보험 한 전문가는 “의무보험이라는 미명하에 정책당국은 손해보험사에 할인 정책을 더 많이 도입하라고 압박해왔다. 국민 대다수가 가입한 보험이기 때문에 정치인의 입김이 작용할 수밖에 없다”며 “자본주의에서 장기간 손해를 보면서 상품을 판매하는 기업은 없다. 어차피 수익성 사업이 아니니 보험료를 현실화하든지 아니면 아예 책임보험을 공익적 차원에서 국가가 관리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