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배너광고가 눈에 띈다. 태국 패키지 단 29만원. 하마터면 클릭할 뻔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근 5년 전, 지인들과 나눈 대화 내용이 떠올라서다. 먼저, 가족들과 캄보디아에 패키지 여행을 다녀온 A가 한 말이다.

“가이드가 장소를 옮길 때마다 옵션을 요구하더라고. 참다 못해 항의를 했더니, 못마땅했는지 갑자기 ‘지금부터 자유 시간 가지라’더니 훌쩍 자릴 뜨더라. 일정대로 끌고 다니다 어딘 줄도 모르는데 방류되니, 뭘 할 수 있겠느냐고. 밥은 꼭 지정식당에서만 먹게 하고 쇼핑센터는 줄기차게 들르더라. 아무것도 안 샀더니, ‘이러면 일정에 차질 있다’면서 엄포도 놓데?”

A는 당시 상품가가 인당 30만원대였다고 말했다.

그러자 모 여행사에 다니는 B가 받아쳤다. “덤터기 쓸 만했네. 여행지 가서 옵션 강요받기 싫으면 그냥 제값 주고 갔어야지. 그건 비행기 값도 안 나오는 가격이잖아. 지상비(현지 발생 비용)는 전혀 책정이 안 된 거야. 그럼 현지 가이드들은 뭘 먹고 살아. 이걸 어디서 채우겠어. 거기서 한 세 배 정도 더 줬어야 정상가야. 그러니 앞으로는 적정가로 가.” B는 A에게 ‘아주 무난하고 상식적인 걸 모르고 있던 네가 무지했다’는 투로 이렇게 말했다.

B의 말을 듣자니, 불편한 마음이 서걱거렸다. ‘오지랖도 저 정도면 초특급이다. 표기되지 않은 ‘적정가’를 알아서 고르라니. 월례행사로 해외에 나가는 것도 아니고, 바득바득 모아 벼르고 벼르다 나가는 사람이 ‘적정가’까지 파악하고 여행상품을 직접, ‘친절하게’ 검열해야 하나.’

‘알고 피하란’ 식의 패키지 판매 풍조. 결국 사달이 난 것 같다. 지난해 소비자원에 접수된 해외여행상품 관련 분쟁건수는 7700건. 경각심을 가진 소비자원, 관광공사, 그리고 여행업협회가 부랴부랴 개선안을 내놨다. 이들 단체는 지난 11월 27일, 내년부터 ‘여행계약서표준안’을 도입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표준안은 가이드팁이나 옵션관광·숙박시설에 대한 용어, 쇼핑횟수나 환불규정에 대해 명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또, 피해 구제 요청방법이나 취소 수수료 규정에 대해 체크 리스트를 만들어 계약과 관련된 소비자의 오해를 최소화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소비자원은 “여행사들이 표준안을 도입할 경우 여행사와 소비자 모두 정확하고 구체적인 정보를 공유해 분쟁 발생이 줄어들 것”이라고 기대했다.

긍정적인 흐름이다. 마땅히 그래야 하지만, ‘그랬었다면’ 더 좋았겠다. 여행업계가 지금 가장 주목하고 있는 시장은 ‘개별여행객(FIT)’이다. 실제로 방장한 계층을 중심으로 호텔과 항공권을 따로 구입해 자유여행을 즐기는 이가 늘고 있다.

인터파크투어에 따르면 크로아티아, 헝가리, 체코, 라오스, 베트남 등 기존 비인기 여행지의 FIT 고객 수요는 전년 대비 50% 이상 늘었다. 전통적인 그룹투어 지역인 필리핀 세부, 보라카이의 경우에도 FIT 수요가 그룹 수요를 앞지르고 있다. 이에, 홀세일 여행사들도 저마다 FIT 부서를 만들었고, 여행사 및 항공사에서는 내년도 사업계획에 FIT를 위한 마케팅을 확대하겠다는 항목을 기재했다. FIT를 위한 맞춤형 포털 사이트의 종류도 점차 다양해지는 추세다.

시장 분위기가 이런데, 패키지 여행에서나 있는 ‘투어가이드’, ‘옵션관광’, ‘쇼핑횟수’ 등이 담긴 ‘표준안’이 ‘내년’부터 적용된다라…. 왠지 늦은 감이 드는 건 기분 탓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