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설팅을 하다 보면 그야말로 사경을 헤매는 기업이 많다. 다르게 얘기하면 죽음에 이르기까지 전혀 손을 쓰지 않다가 숨이 끊어진 것과 다름없는 혼수상태에 이르러서야 경영지도를 의뢰한다.

몇 달 전에만 경영지도를 의뢰했다면 충분한 구제책이 나올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뭔가 회생책이 있겠지 하는 실낱같은 희망으로 그냥 버티다 막판에 병원에 온다는 것이다. 초기암을 내버려두고 있다가 말기암이 돼야 병원에 오는 격이다.

필자에게 의뢰된 문제 기업 중 이 같은 상태가 아닌 경우가 없었다. 거의 다 숨이 끊어진 상태에서 기사회생을 바라며 온다는 것이다. 중국의 명의인 화타와 편작이 온다 한들 이미 죽은 목숨이 회생이 되겠는가?

한 기업의 예를 들겠다. 고객 외면으로 매출이 급감하고 있고, 원재료가 올라 원가가 급증하고 있고, 인건비가 몇 달째 밀려 있고, 세금고지서가 쌓여 있고, 만기가 지난 단기고금리채무가 자본금의 수 배를 넘고, 설상가상 이런 상태에 한 수 더 있다.

CEO나 오너가 남아 있는 현금을 몽땅 챙기고 해외로 도망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아 있는 직원들이 경찰에 고발까지 해놓은 상태였다. 필자에게 눈물을 흘리며 기사회생을 부탁했다.

간곡한 부탁을 물리칠 수 없어 필자는 40여년의 기업 경험을 살려 전반적인 경영실태 파악, 전략적인 구조조정과 정상화 대책을 강구했다.

그야말로 한 달에 걸쳐 머리를 싸매고 불철주야 발로 뛰었다. 채권자를 일일히 만나 만기연장과 상환연기를 요구했고, 원재료 구입선을 변경하고, 기획 영업인력을 보강하고, 새로운 디자인 제품의 출시를 기획하고, 인건비마저 당분간 지급동결을 하는 등 할 수 있는 모든 자구책을 썼다.

이에 맞춰 운영자금도 끌어왔다. 여기에는 물론 필자의 과거 이력이 큰 설득력을 주었음은 당연지사였다. 그러나 서광이 비치던 이 회사는 결국 6개월 후 더 큰 손실로 파산하였다. 망한 이유는 뻔했다.

산소호흡기와 앰플주사로 생명의 불씨를 살리는듯 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시간의 연장에 불과했을 뿐 근원적인 생명의 불꽃이 돌아 온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기사회생의 기적이라는 말은 기업 경영에는 맞지 않는 얘기다.

언론에 보면 다 죽어가는 기업을 웬 저명한 CEO가 와 탁월한 경영지도로 6개월 만에 기사회생시켰다는 기사를 종종 본다. 그러나 몇 년 후 이 회사가 또다시 죽어간다는 기사가 뜬다.

“평소 경영진단을 외부 컨설턴트에게 맡겨라. 그리고 처치를 미루지 마라.”, “죽을 기업은 죽여라. 그 대신 새로운 기업으로 태어나라.” 이것이 필자가 기사회생을 바라는 기업에게 던지고 싶은 말이다.

기사회생(起死回生)에 얽힌 고사

춘추시대 오나라와 월나라는 불구대천지 원수였다. 오나라 왕 부차는 월나라 왕 구천에게 죽은 아버지 합려의 원수를 갚기 위해 땔나무 위에서 잠을 자며 복수심을 불태우고 마침내 월나라와 싸워 이겼다.

월나라 구천은 목숨을 보전하기 위하여 오나라 왕 부차에게 화해를 요청하였다. 오나라 왕 부차는 월나라에 은혜를 베풀어 항복을 받아들이며 귀국까지 허락했다. 이때 부차는 이렇게 말했다.

“월나라는 죽은 사람을 다시 일으켜 백골에 살을 붙인 것과 같다(起死人而肉白骨也).”

김우일 우송대 경영학과 교수·전 대우그룹 구조조정본부장
(wikimokg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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