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file /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미 뉴욕대와 한양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제14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후 한국산업기술재단 사무총장,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전문위원, 한국기술경제학회 부회장 및 한국수출보험공사 사장 등을 거쳐 현재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인간개발경영자연구회가 2009년 12월17일 개최한 제1626회 세미나에서 조환익 코트라 사장이 ‘한국, 밖으로 뛰어야 산다’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이를 발췌해 싣는다.

지금 세계 경제는 많이 회복된 것 같으면서도 보면 늘 불안하다. 얼마 전엔 두바이에서 일이 터져 세계가 요동을 쳤었고, 한국 주가도 80포인트가 떨어졌었다.

갑자기 유동성이 부족해서 두바이가 그렇게 됐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평면적인 생각이다.

작년 3월에 두바이에 갔을 때 나는 이미 위험하다는 것을 예감했었다. 그때 그곳 사람들은 벌써 두바이가 위험하다고 이야길 했었다.

아부다비가 경고를 많이 하면서도 두바이에 유동성 문제가 생길 때마다 계속 지원을 해줬는데 계속해서 두바이가 달라지는 것이 없자 이번에 기합을 아주 제대로 준 것이다.

지금은 모든 거품이 부글부글 올라오는 그런 상태다. 어딘가에는 항상 그런 것들이 잠재해 있다. 어차피 세계 경제는 과잉 유동성으로 굴러왔기 때문에 빚을 많이 진 데 대해서 한번은 혼나게 돼 있다.

한국도 빚을 많이 져서 결국 10년 전에 혼난 것이다. 지금 미국도 마찬가지로 자국의 실물경제는 하나도 성장을 안 했으면서 채권, 국공채 발행하고, 외국 돈 들여서 빚잔치하다가 그렇게 된 것이다.

2008년에 우리 수출이 세계 시장에서 2.6%를 차지했다. 그런데 2009년에는 3.0%가 됐다. 대단한 것이다. 12등에서 9등이 되었다. 어디어디를 제쳤냐 하면 영국, 캐나다, 러시아다.

8등이 벨기에지만 불과 몇 십억 달러 차이밖에 안 나고 벨기에가 사실상 동유럽 중계무역을 하는 나라라고 볼 때 사실상 G8까지 올라온 것이다.

그 정도로 2009년은 우리에게 굉장히 어려운 해인 동시에 행운의 해였다. 그리고 뭐니 뭐니 해도 환율 덕을 많이 보았다. 만일 환율이 이렇지 않았으면 우리나라가 이렇게 부각이 될 수 없었고, 숨은 실력이 있었다 하더라도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환율이 굉장히 많이 올라갈 때 일본은 이상하게 환율이 계속 내려갔다. 그들이 그렇게 신봉했던 토요타 경영이 지금 별로인데 한국은 어떻게 해서 위기를 극복했는지 굉장히 당혹스런 상황에 빠져있다고 한다.

위기관리 비결은 다양한 포트폴리오
얼마 전에 후쿠오카에 갔는데 일본인들이 자기들은 완전히 한국에 졌다면서 3가지를 들어 이야기했다.

첫째는 인천공항이다. 전 세계의 어떤 공항도 인천 공항의 시스템이라든지 속도, 서비스를 따라 갈 수 없다. 허브공항으로서의 커넥션 또한 모든 게 디지털로 되어있고 공항 잘못으로 인해 출발이 지연된다든지 이런 일이 절대 없다.

둘째는 부산항이다. 고베, 요코하마 이런 곳은 도저히 허브항이 되지 못한다. 그런데 한국은 어떻든지 간에 몰아줬다. 그래서 실제 상당한 물량이 부산으로 들어오고 있다.

셋째는 삼성전자이다. 일본은 국가 전체가 주식회사 형태로 토요타는 뭐를 하고, 샤프는 뭐를 하라는 식으로 다 정해줬다.

그리고 그 분야에서 세계 1등이 되도록 만들었다. 그것은 지금까지는 통했다. 그런데 이제는 모든 것이 융·복합화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계속 그렇게 해서는 더 이상 안 되는 것이다.

그런 속에서 삼성전자는 반도체가격이 떨어지면 휴대폰으로 복구한다든지, 휴대폰 가격이 떨어지면 LED로 복구한다든지 하는 포트폴리오가 상당히 잘돼 있다.

또 우리를 버틸 수 있게 해준 부채경영이 있다. 지난 외환위기 때 우리는 호되게 당했다. 그래서 갖은 수모도 당했다.

시장도 좋고 물건도 잘 팔리는데 빚 때문에 도대체 감당을 못하겠어서 은행에 연장을 해달라고 했는데 안 해주면 그 어려움은 말도 못했다. 그땐 한국 전체가 그랬다.

그런데 그때 그렇게 당하고 나서는 기업들이 미련할 정도로 돈을 벌면 빚 갚는 데만 썼다. 대기업 부채비율이 특히 그랬다. 100% 밑으로 내려가고 그랬다. 나는 미국 MBA에서 재무 쪽을 전공했는데 그건 경영학에서 있을 수가 없는 이야기다.

어느 정도는 은행에서 돈을 빌리고 은행이자보다는 많이 벌면 되는 것이 맞다. 그런데 우리 기업들은 은행이자보다도 많이 벌면서도 빚만 갚은 것이다. 그런데 그게 효자 노릇을 했다.

“사슴은 빠르지 않으면 잡아먹힐 수밖에 없다. 또한 쫓는 맹수들은 사슴보다 더 빨라야 한다. ‘못 잡아먹으면 말고’가 아니라 ‘목숨이 달린’ 문제다. 이것이 바로 ‘중원축록’이다. 2010년은 아마 엄청난 경쟁의 해가 될 것이다.”

한국 기업의 강점은 비빔밥 문화
거대한 오일탱크부터 작은 주사기 바늘까지 못 만드는 것이 없을 정도로 복합적인 제조기술을 가진 우리나라이기에 2009년은 잘 넘겼다. 그렇다면 내년은 어떨까. 사자성어로 표현하면 ‘중원축록(中原逐鹿)’이다.

중원에서 사슴을 쫓는 형세라는 말이다. 2009년에는 우리가 나름대로 몸을 많이 숨길 수 있었고 그래서 공격적인 자세도 취할 수 있었지만 2010년엔 상처받았던 선진국 기업들이 다 들어올 것이다.

일본 기업 같은 경우는 명치유신 이후에 쓴 ‘탈아입구(脫亞入歐)’정책, 즉 아시아를 벗어나기 위해 많이 노력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탈구입아’해서 다시 아시아로 들어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뭐니 뭐니 해도 제일 신경을 써야 할 나라는 일본이다. 중국만 하더라도 상품대가 조금 다르지만 일본은 거의 경합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모든 나라가 다시 들어오지만 전체 시장 상황은 좋아졌고 우리의 점유율도 2.6%에서 3.0%로 되었으니 더 넓어진 점유율을 가지고 유리한 상황에서 경쟁할 수 있다. 점유율을 넓히면 일단 쉽게는 바뀌지 않는다. 우리가 신경 써야 할 점은 스피드다.

사슴은 바로 시장이다. 사슴은 빠르지 않으면 잡아먹힐 수밖에 없다. 또한 쫓는 맹수들은 사슴보다 더 빨라야 한다. ‘못 잡아먹으면 말고’가 아니라 ‘목숨이 달린’ 문제다. 이것이 바로 ‘중원축록’이다.

2010년은 아마 엄청난 경쟁을 할 것이다. 중국과 미국이 합작한 차이메리카라든지, 중국과 대만이 합작한 차이완이라든지, 한국의 전자 IT 업계를 견제하기 위해서 일본 업계가 전부 공조를 한다든지, 일본하고 대만하고 LCD 공조를 한다든지 해서 압박을 해올 것이다. 그런 면에서 2010년은 결코 만만치 않은 해가 될 것이다.

우리가 굳이 떨어질 것이 없고 얼마든지 해볼 만한 저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너무 낙관하면 안된다. 환율이 지금 1150원에서 1160원 정도인데 이대로만 가면 정말 좋다. 유가도 이 정도면 괜찮다고 본다.

우리나라의 제일 큰 강점은 비빔밥 문화이다. 사실 IT 정보통신이나 기술 자체를 가지고 돈 번 건 별로 없다. 이 부분을 기존 산업하고 융합을 시켜서 새로운 경쟁력을 낸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강점인데 앞으로 점점 더 이렇게 갈 것이다.

이재훈 기자 huny@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