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저축은행에 보험과 펀드, 할부금융 판매를 허용해주기로 했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지난 10일 저축은행중앙회 40주년 기념식에 참석, “저축은행의 지역 밀착형, 관계형 영업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편해나갈 것”이라며 저축은행에 보험과 펀드, 할부금융 판매 등 새로운 먹을거리를 제공키로 했다고 밝혔다. 또 서민과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자금 취급도 허용하고 다른 업종에 비해 엄격했던 점포 설치 기준도 완화해주기로 했다. 즉 2011년 저축은행 사태 이후 어려워진 업계 사정을 감안해 규제 완화를 통한 새로운 수익사업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축은행의 근본적인 제도 개혁 없이 정부가 단편적인 규제 완화에만 치중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현재 저축은행 인력과 금융당국의 감독수준을 고려해볼 때 저축은행에 펀드와 보험 판매를 허용할 경우, 분명한 상품 설명이 이뤄지지 않은 불완전판매로 고객 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과당경쟁과 대출조건 등으로 끼워 파는 꺾기 등이 조장돼 서민금융이 다시 위험에 빠질 수 있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 같은 규제 완화로 이미 저축은행 부실과 소비자가 피해를 경험한 바 있다. 2000년 중반 정부는 금융자유화와 개방화로 영업 경쟁력을 잃어가던 저축은행을 위해 88클럽(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율 8% 이상, 부실대출 비율 8% 이하 저축은행)에 대한 법인 동일인 대출한도(80억원)를 폐지했다. 더욱이 상당수 저축은행이 88클럽의 기준을 맞추기 위해 무분별하게 후순위채권을 판매했고 정부도 저축은행에 서민금융기관으로서 올바른 수익모델을 제시하지 않은 채 규제 완화를 밀어붙였다. 그 결과 저축은행의 부동산 PF 대출이 큰 규모로 증가했다. 고금리로 조달한 자금을 굴릴 데가 없자 부동산 PF 등 고위험 자산에 막대한 자금을 대출한 것이다. 당시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가 겹치면서 부동산 경기가 하락, 부실이 터지기 시작했다. 결국 부동산 PF 대출의 부실로 인해 저축은행들이 도미노처럼 무너졌고 후순위채권 판매에 따른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해 지금까지 후유증이 가시지 않은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저축은행 대주주의 도덕적 해이에 따른 불법행위가 표면화되면서 서민금융 자체가 크게 흔들렸었다.

이에 따라 저축은행 문제의 해결을 몇 가지 단편적 규제 완화에서 찾아선 안 된다는 의견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지난 10일 참여연대는 논평을 통해 “현재의 저축은행 인력과 금융당국의 감독 수준으로 금융소비자 피해를 예방할 수 있는 펀드 판매가 가능할지 회의적이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저축은행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경영실태와 건전성에 대한 모니터링과 적격성 심사가 필요하다”며, “그런 점에서 하루빨리 <금융기관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의 제정을 통해 저축은행을 포함한 모든 권역의 금융기관에 대해 동태적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같은 날 금융소비자원 측도 “과거 서민들의 후순위채 피해사태처럼, 향후 펀드나 보험피해 사태를 초래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결코 허용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또한 “대형 금융지주계열 은행에서도 불완전판매가 발생되는 상황에서 인력, 조직, 경영능력, 도덕성, 맨 파워, 시스템 등에서 비교도 안 되는 저축은행들에 무슨 명목으로 보험, 펀드 등의 상품판매를 허용하려는 것이냐”며 강하게 반박했다.

보험과 펀드, 할부금융 판매를 허용하기로 한 이번 정부정책은 저축은행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새로운 먹을거리를 제공해 추가적인 부실화를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우는 아이 젖물리는’ 식으로 단편적 규제 완화로는 저축은행 산업의 구조조적인 문제점을 해결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후순위채 사례와 같은 소비자의 피해도 속출할 수 있다. 이에 참여연대는 “감독기구의 역할 재정립, 공시와 투명성, 책임영업행위 강화 등을 우선적으로 실행해 시장의 신뢰를 받는 후에 규제 완화를 해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또한 “저축은행도 은행과 대부업 중간 지대에서 지역밀착형 영업을 펴는 등 스스로 체질을 개선하는 노력으로 신뢰 회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