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라플리에 女心 공략 묘수 있어

케이블 채널인 ‘온스타일’의 일등공신이 바로 미국 드라마 <섹스 앤 시티>이다. 뉴요커들의 일상을 다룬 이 드라마는 국내에도 미드 열풍을 일으킨 ‘선두주자’ 격이다.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미란다는 뉴요커들의 오늘을 엿볼 수 있는 ‘창(窓)’이다. 그녀는 변호사로 보수적이면서도 자유분방하다. 그리고 웬만한 동년배 남성보다 소득 수준이 높은 ‘골드미스’이다.

이 여성 뉴요커들은 업무로 누적된 피로를 쇼핑으로 씻는다. 꿉꿉한 기분을 떨쳐버리는 데는 쇼핑이 제격이다. 백화점 메이시(Macy)에 들러 명품들을 둘러보는 맛은 쏠쏠하다.

때로 ‘지미추(Jimmy Choo)’에 아낌없이 지갑을 여는 기분파이다. ‘지미추’ 브랜드는 여성 뉴요커들을 사로잡는 패션 아이콘이다.

미드 <섹스 앤 시티> 등장인물들은 뉴욕 여성들의 전형이다. 이 도시의 20~30대 커리어 우먼들의 평균 소득은 이미 남성 근로자들을 상회한다.

소득의 역전이다. 보스톤컨설팅그룹 조사에 따르면 뉴욕의 정규직 여성들은 남성들의 117% 수준의 급여를 받는다.

투자은행이나 증권사, 은행 등이 몰려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시카고나 댈러스 등도 이러한 ‘여초(女超)’ 현상이 비교적 뚜렷한 도시다.

남성 정규직 중심의 근로시장은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미 노동시장에서 비정규직을 포함한 취업 여성들의 수는 남성들을 앞질렀다.

글로벌 무대로 눈을 돌려봐도 여성 근로인구는 10억명에 달한다. 중국, 브라질을 비롯한 신흥국가에서도 여성 취업자들의 수는 급증하고 있다.

펩시콜라를 이끄는 인디라 누이 CEO, 그리고 오프라 윈프리를 비롯한 슈퍼우먼들도 신문 지상을 장식한다.

일찌감치 신흥 시장의 잠재력에 주목하던 글로벌기업들은 유럽, 미국, 중앙아시아, 이슬람, 그리고 아시아의 ‘여성시장’에서 ‘성장’의 기회를 포착하고 있다. 여성, 실버, 틴에이저는 성장의 3대 키워드이기도 하다.

이 부문에서 탁월한 실적을 내고 있는, 여심(女心) 공략의 고수 중 첫손가락에 꼽히는 인물이 바로 ‘오프라 윈프리(Oprah Winfrey)’이다.

자신의 이름을 딴 텔레비전 쇼를 진행하는 그녀는 전 세계 여성들의 마음을 쥐락펴략하는 심리 공략의 마술사이다.

그리고 이러한 공감의 능력을 기본 자산으로 출판, 잡지시장으로 활동무대를 넓혀나가며 수십억 달러 가치의 자신의 제국을 만든 살아있는 ‘브랜드’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브랜드보다 여성을 잘 이해하는 진정한 브랜드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이다.


오프라 윈프리, 최고의 여성 브랜드
“오프라는 마치 세상에서 나를 유일하게 이해하는 여성처럼 느껴집니다.

삶을 버텨낼 뜨거운 에너지를 주고, 희망을 안겨줍니다.” ‘오프라 윈프리 쇼’는 사우디아라비아 여성들 사이에서도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뉴욕타임스> 기사에 실린 중동의 사우디아라비아에 사는 ‘나일라(Nayla)’라는 여성의 고백은 그녀의 영향력을 가늠하게 한다.

위성방송으로 이 프로를 시청하는 사우디 여성들은 그녀의 잡지에도 열광한다. 오프라 윈프리가 발행하는 매거진인 는 아직 이 나라에 수입되지 않고 않지만 사우디의 여성들이 이 잡지의 칼럼을 구해서 돌려볼 정도로 광범위한 인기를 끌고 있다.

‘히잡’을 두르고 생활하는 이슬람 문명권의 여성들을 흑인 여성이 사로잡는 이면에는, 그녀의 탁월한 공감의 능력이 있다.

오프라 윈프리는 그녀들에게 두 가지 감정을 일으킨다. 하나는, 그녀가 자신들과 ‘닮은꼴’이라는 점이다. 그녀도 한때는 뚱뚱한 아줌마였다.

그러나 눈물겨운 노력 끝에 ‘다이어트’에 성공해 슬림한 몸매를 만든 오프라 윈프리는, 젊은 시절 우울증을 앓은 경험이 있으며 친척과 남자들의 폭력에 시달려 본 악몽도 있다. 오프라 윈프리는 ‘속(俗)’과 ‘성(聖)’의 양면성을 두루 갖추고 있다.

그녀는 어떤 브랜드보다 여성을 더 깊숙이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이다. 오프라가 국적을 불문하고 수많은 여성들을 움직이는 진정한 비결은 ‘양면 전략’이다.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해 상대방을 무장해제하고 ‘비전’으로 사로잡는다.

“다른 사람들의 변화를 유도하려면 스토리, 실화, 그리고 아이디어를 적절히 활용해야 합니다.

그들이 내적 자아와 스스로 교감할 수 있는 진실의 순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내 책무입니다.” 오프라 윈프리가 내세운 자신의 ‘미션(Mission)’이다.

그런 그녀가 늘 대화의 주제로 삼는 단골 메뉴가 바로 ‘청소’이다. 손님이 불시에 집을 방문했을 때 늘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고 싶은 것이 여성들의 바람이다.

그러면서도 집안을 쓸고 닦고 하는 데 들여야 하는 품을 줄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이런 스토리로 그녀는 27억달러의 제국을 형성했다.

하루 종일 쓸고 닦고 해도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허드렛일의 고통만큼 절절한 것이 또 있을까.


라플리, 주부들의 청소시간을 덜어주다
여성들은 더 이상 집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래서 가사일에 소요되는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가 늘 아쉽다. 성공한 기업들은 바로 이 지점을 절묘하게 파고든다. 라플리가 이끄는 피앤지가 선두주자다.

이 소비재 기업은 ‘스위퍼 스위퍼(Swiffer Sweeper)’로 미국의 청소장비시장을 뒤흔들었다. 미국에서 빅 히트를 한 이 상품은 여성 고객들의 수고를 크게 덜어준 효자상품이다. 일손을 대폭 덜어주면서도 수동이어서 전기가 들지 않는다. 그리고 무게가 가볍고 사용하기도 간편하다.

젖은 천과 마른 천을 번갈아 사용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효율적인 것이 가장 큰 강점이다. 품을 덜 팔고도 청소 효과를 높인 점이 주효했다. 먼지나 쓰레기를 한편으로 밀어내는 방식이 아니다.

바닥의 이물질들을 흡수하는 것이 강점이다. 이 청소도구는 미국에서 판매 첫해에 무려 2억달러어치가 팔려 나갔다.

최첨단 전자 청소기들이 서로 주부들의 손길을 차지하고자 다툴 때 이 제품은 단순함을 앞세워 미 여성 소비자들을 파고드는 데 성공했다. 단순함을 비교우위로 삼은 닌텐도 게임기에 비견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 글로벌기업은 이 제품을 기본 자산으로 삼아 빗자루, 자루걸레 등 인접 시장으로 높여나갔다.

주부들을 포커스 그룹(Focus Group)으로 한 특유의 시장조사로 이른바 ‘카니벌라이제이션(Cannibalization, 시장충돌)’도 피했다.

가정용 청소장비시장에 진출하자마자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둔 것도 이 회사의 저력이다. 창업 이후 부단히 신시장을 성장의 동력으로 삼아온 강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하루 종일 소요되던 가사 일을 불과 한 시간 대로 줄이는 제품. 서비스가 등장한다면 대박을 터뜨릴 것입니다.”

보스톤컨설팅그룹의 실버스타인 수석파트너가 밝히는 여심 공략의 원칙이다. 이 원칙에 충실해 미 유아시장을 제패한 또 다른 기업이 바로 ‘거버(Gerber)’이다.

‘슈미트’ 거버(Gerber) CEO, 브랜드 확장의 대가
거버는 여성들의 ‘모성’을 파고드는 마케팅 역량이 발군이다. 지난해 전파를 탄 이 회사의 광고는 공중파는 물론 유튜브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제품, 서비스 판매의 일등공신 역할을 톡톡히 했다.

유아 시장의 피앤지로 불리는 거버는 ‘경청(敬聽)’의 역량이 돋보인다는 평가다. 아기 엄마들의 바람은 물론 걱정이 제품·서비스 개선의 열쇠다.

이러한 바람을 파고드는 맞춤형 제품. 서비스 출시 노하우가 독보적이다. 인접 분야로 꾸준히 브랜드를 확대해온 점이 피앤지와의 공통점이다.

지난 1928년 출사표를 던진 이 기업은 완두콩 유아 식품이 첫출발이었다. 완두콩 식품, 우유병 제조, 그리고 이유식 상품을 잇달아 출시하며 시장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굳혀온 브랜드 확장의 고수이다.

하지만 이 글로벌기업은 슈미트 CEO가 부임할 당시인 지난 2004년, 둔화되는 성장속도로 부심 중이었다.

여성들의 출산율 감소 추세가 위기의 불씨였다. 위기는 눈덩이처럼 커지며 업계 전체를 삼킬 태세였다.

거버의 신임 최고경영자는 당시 여성들의 라이프사이클에 주목했다. 그가 제시한 해법은 이유식 제품라인에 대한 집중 투자였다.

이 회사는 일하는 엄마를 상대로 이유식의 비교우위를 집중 홍보했다. 육아에 걸리는 시간을 대폭 줄이면서도, 균형 잡힌 식단을 짤 수 있다는 점이 이러한 홍보 전략의 골자였다. 또 이유식 라인을 ‘유아’에서 ‘취학전 아동’으로 확대하며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멕시코, 미국, 중앙 아메리카, 폴란드 등으로 시장 포트폴리오를 넓혀나가며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

스위스의 다국적 식품업체인 네슬레는 지난 2007년 이 회사에 주목했다. 그리고 이 회사를 ‘55억’달러에 사들였다.

여성 시장 공략의 선봉장들은 ‘소통’, ‘확장’을 양날개로 삼아 인접 시장으로 꾸준히 활동무대를 넓혀가며 성장의 정체를 극복해 온 특징이 있다.

여성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수십여 개로 정밀하게 분할해(19p 박스 기사 참조) 맞춤형 대응전략을 구축한 것이 성공의 기본 자산이다.

서로 상반되는 전략으로 여심을 공략해 온 의류업체 바나나리퍼블릭, H&M, 그리고 존슨앤드존슨, 테스코 등도 대표적인 성공사례이다.

“이번 경기침체가 더 심각한 국면으로 빠져든다고 해도 여성들은 우리 생애에서 가장 거대한 시장 기회의 하나를 대표하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또 경기회복과 새로운 기회의 블로오션을 개척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여지가 있다고 봅니다.” 보스톤컨설팅그룹 실버스타인 수석파트너의 말이다.

박영환 기자 blade@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