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file /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1년 대한태권도협회장, 1973년 세계태권도연맹 창설총재를 거쳐 1986년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이 됐다. 1992년부터는 IOC 부위원장으로 활동했으며 대한체육회장, 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냈다. 현재 아메리칸스포츠대학교 명예총장과 일본 게이오대학 법학부 방문교수직을 겸하고 있다.


휴넷 CEO포럼이 지난 12월8일 진행한 제23회 CEO Insight 월례 조찬회에서 김운용 아메리칸스포츠대학교 명예총장이 ‘글로벌 코리아, 스포츠로 도약하라’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이를 발췌해 싣는다.

예전에는 공부 잘 안 하고 춥고 배고프고 주먹 세고 나중에 할 일이 없는 사람들이 스포츠를 한다는 인식이 있었다.

하지만 원래 스포츠는 시간적, 금전적 여유가 있는 유럽 사람들이 즐기던 것이었다. 그러던 것이 우리나라에서도 20세기 말 경제가 발전하면서 극적인 대중화에 성공했다.

모두가 직접 스포츠를 즐기고 그것에 대해 얘기하는 사회적 운동으로 발전을 했다.
스포츠는 부가가치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대중화가 되니까 정치가 관여하기 시작했다. 올림픽 보이콧의 역사가 이를 말해준다. 베를린올림픽 때는 히틀러가 나치 체제 선전을 위해 활용하기도 했다. 구소련 역시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한 선전 무대로 올림픽을 활용했다.

2016년 하계올림픽 유치전이 얼마 전 코펜하겐에서 있었다. 도쿄, 마드리드, 시카고, 리오데자네이루 등이 후보지들이었는데, 해당 국가의 원수들이 모두 직접 유치하러 왔다.

스페인에서는 국왕이 직접 올 정도였다. 브라질에서도 룰라 대통령이 엄청난 비용을 들여서 왔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전 때는 우리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직접 참여했었다.

스포츠가 주는 발신력이 크기 때문에 정치 관여도 크고, 경제 효과도 크다. 하지만 마케팅해서 크게 돈 벌 수 있는 건 올림픽과 월드컵 정도뿐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2012년 런던올림픽 심사를 하던 2005년에는 블레어 총리가 직접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당시 블레어 총리가 많이 놀랐다고 한다.

그는 스포츠가 사회를 변혁할 만한 힘을 지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정부의 힘이 점점 제한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스포츠는 발신력과 동원력, 감동을 주는 힘이 크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정치의 관여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

올림픽이 국가 성장의 배경
정치가 관여하기 시작한 후에는 경제가 관여한다. TV 방영권을 두고 엄청난 금액들이 오간다. TV는 상품인 스포츠가 필요하고, 스포츠는 돈이 필요하다. 요즘엔 TV 방영이 안 되는 스포츠는 경제적 가치도 매우 떨어지게 됐다.

미국 NBC방송이 베이징올림픽 때 9억500만달러를 들여 중계를 했다. 한국은 1750만달러가 들었다. 여기에 기업들의 공식 스폰서 활동이 더해진다.

올림픽 때의 기업 스폰서는 전 세계에 기업의 이름을 알리고 상품을 홍보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국내에서는 삼성이 애니콜을 광고했다. 삼성이 올림픽 공식 스폰서가 된 후로 애니콜의 위상도 많이 높아졌다.

일전에 에미상 시상식에 초청받아 참석한 적이 있는 데 누군가 나에게 ‘쇼 메이커’ 아니냐 하면서 지나갔다.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사실 그렇게 된 측면이 있다. 스포츠가 일종의 쇼가 돼버린 것이다.

약물 복용 사례도 많다. 명예의 크기가 커지다 보니까 선수들이 유혹에 쉽게 넘어간다. 그 후로 도핑 테스트가 강화됐다. 법률 문제나 환경 문제도 거론된다.

특히 스키장과 같은 대형 시설물을 건설할 때 문제가 제기된다. 나중에는 윤리 문제까지 나아갔다. 21세기로 넘어오면서 스포츠 대중화는 성공했지만 올림픽의 원래 이념인 청소년 교육과 세계평화는 조금 훼손된 측면이 있다.

1894년 소르본대학에서 올림픽위원회를 만들고 그리스에서 제1회 대회를 열었다. 1924년 올림픽 때 오색기가 처음 나오고, 1936년 베를린올림픽 때는 나치가 정치선전장으로 썼다.

또한 그해 올림픽에서 성화 봉송을 처음 시작했고, 손기정 선수가 일장기를 달고 금메달을 따기도 했다. 그리고 1988년 서울올림픽을 통해 우리는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1976년 올림픽에서 우리는 첫 금메달 땄다. 지금은 동·하계 합쳐서 20여개를 딴다. 그만큼 서울올림픽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에서 도약할 수 있도록 자신감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1964년 도쿄올림픽을 통해 일본은 문화국가로 도약에 성공했다. 이때의 성공이 정치의 안정에도 30년간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성공한 스포츠 외교 3가지가 있다. 서울올림픽과 월드컵, 그리고 태권도를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시킨 것이다. 예전에는 서양에서 스포츠를 만들어 동양에 수출한다고 했는데, 요즘에는 반대다.”

점점 더 중요해지는 스포츠 외교
서울올림픽은 냉전 중이던 동서가 한자리에 모였다는 점에서 가장 위대한 올림픽 중 하나였다고 평가받는다. 당시 166개국 중 160개국이 참가했다.

수입도 좋았다. 당시 공식 주화를 판 것만 1억2500만달러, 방영권 수입이 4억1000만달러에 달했다.

서울올림픽 때 사마란치 IOC 위원장이 와서, “너희같이 작은 나라가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답은 교육인 것 같다. 어리석은 사람은 해답을 자기 경험에서 찾고, 현명한 사람은 선배들에게서 찾는다는 말이 있다.

교육은 차세대를 양성하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제 암기만 하는 교육으론 안 된다. 세계 무대를 제대로 보고 제대로 싸워 이길 수 있는 교육을 해야 한다. 여기에 스포츠도 도움을 줄 것이다.

스포츠 외교라는 말을 자주 쓴다. 우리나라에서 특히 많이 쓰는 말이다. 외교는 교섭의 술이다. 목적을 달성해야 한다. 때로는 질 때가 그 다음을 위해서 좋을 때도 있다.

영어와 체력은 기본으로 갖춰야 한다. 그 다음은 품성이 좋아야 한다. 그리고 스포츠에 대해서 굉장히 많이 알아야 한다.

이제 외교는 외교관 외교만이 아니다. 경제, 자원, 원자력, 과학·의료 외교 등 굉장히 많다. 제일 중요한 게 인재인데, 정치·사회·경제 어느 분야에서건 판단력도 있고 앞장설 수 있는 용기도 가진 그런 사람을 키워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성공한 스포츠 외교 3가지가 있다. 서울올림픽과 월드컵, 그리고 태권도를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시킨 것이다. 예전에는 서양에서 스포츠를 만들어 동양에 수출한다고 했는데, 요즘에는 반대다.

실패한 스포츠 외교 사례가 있다면 평창이다. 힐러리 클린턴은 “외교는 망상으로 하는 게 아니다. 현실적인 것으로 한다”고 했는데, 우리도 열심히 자본축적을 해야 할 것이다. 삼수니까 된다는 식으로 기대해서는 어렵다.

이재훈 기자 huny@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