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제약기업 화이자의 2011년 매출은 679억달러(약73조원). 이 기업의 1년 연구개발(R&D) 비용은 94억달러(약 10조원)로 이를 환산하면 국내 제약사 전체가 1년간 전문약을 통해 벌어들이는 매출(2012년 11조4526억원)과 맞먹는다. 국내 10대 제약사 R&D 투자를 합친 금액인 5억달러 또한 화이자 1개사의 5.3% 수준에 불과하다.

지난 7월 발표된 보건복지부의 ‘제1차 제약 산업 육성지원 5개년 종합계획(Pharma 2020)’의  2020년 세계 7대 제약 강국 도약은 사실상 불가능한 목표가 아닐지 의구심이 들 정도로 현실은 척박하기만 하다. 2013년 한국 신약의 현주소와 대안을 찾아본다.

◆ 20년간 20개 신약 출산, 하지만 4개 신약은 사실상 사망선고
사람으로 치면 태아의 탄생이라고 할까. 개량, 오리지널 등으로 나뉘는 신약은 최소 수백억원을 투자하고 비임상, 임상 1~3단계의 험난한 과정을 통과해야 결실을 맺을 수 있는 제약산업의 ‘새 생명’이다.

이 가운데 오리지널 의약품(혁신 신약)이란 제약사가 처음 개발한 원개발 의약품을 말하며, 혁신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선 최소 10~15년의 기간과 최소 몇천억원에서 1조 이상의 비용이 소요된다. 국내 신약 가운데 LG생명과학의 ‘팩티브’는 약 3000억원(GSK 83% 부담)으로 가장 많은 연구 개발비가 들었으며 일양약품의 ‘놀텍’의 경우 22년이라는 엄청난 개발 기간을 들였다.

물론 오랜 시간과 고비용을 들여 약을 개발하더라도 임상시험에서 효과와 안전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신약으로 출시되지 못한다.

우리나라가 물질특허 제도를 도입한 것은 1987년.

신약 개발 초기, 국내 제약사들은 항생제 합성을 중심으로 제네릭(복제약) 사업의 근간이 되는 기술 개발에 매진해왔다.

1990년대에 들어서는 범정부 차원의 선도기술 개발사업인 ‘G7프로젝트’ 추진으로 선진국 시장을 향한 신약 개발이 본격적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1993년 국산 신약 1호인 SK케미컬의 항악성 종양제 ‘선플라주’가 탄생했고 20년 만인 지난 7월, 종근당의 당뇨병 치료제 ‘듀비에’가 신약 20호로 승인받았다.

20년만에 20개 약품이 국산 오리지널 신약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지만 실적만 놓고 보면 글로벌 신약으로 충분히 도약할 수 있다고 평가를 받는 제품은 아쉽지만 손가락을 꼽을 정도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공개한 ‘2012년 국내 의약품 생산실적 분석’ 자료에 따르면 새로 등장한 종근당의 듀비에를 제외하고 지금까지 개발된 국산 신약 19품목 중 지난해 생산실적이 집계된 제품은 14개에 그쳤다.

생산실적이 없는 신약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선플라주·밀리칸주·아피톡신주·슈도박신주·피라맥스정은 생산실적이 ‘0원’ 인 국산 신약이다.

이 가운데 CJ제일제당의 ‘슈도박신주’, 동화약품의 ‘밀리칸주’, 대웅제약의 ‘이지에프외용액’ 등은 신약 목록에서 빠지기도 했다.

지난 2009년 8월 품목 취하된 CJ제일제당의 슈도박신주는 3상 임상시험을 완료하지 못해 허가를 자진 취하했고 8년간의 개발과정을 거쳐 국산신약 3호로 이름을 올렸던 밀리칸주 역시 임상시험 과정에서 시장성이 없다고 판단, 시장에서 철수했다.

대웅제약이 50억원을 투입, 국산신약 2호로 승인받은 이지에프외용액은 관련 규정이 변경되면서 신약 목록에서 빠졌다.

국산 신약으로 허가 받은 제품 중 10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린 품목도 LG생명과학의 ‘팩티브’, 유한양행의 ‘레바넥스’, 동아제약의 ‘자이데나’와 ‘스티렌’, 부광약품의 ‘레보비르’에 불과하다.

가장 크게 생산실적이 늘어난 것은 종근당의 항악성종양제 ‘캄토벨주’와 일양약품의 ‘놀텍정’이다. 캄토벨주는 2011년 10억원이었던 생산실적이 2012년에 30억원으로 늘어 194.3% 생산이 증가했다. 놀텍정은 2011년에 7억원에 불과하던 생산실적이 지난해 28억원으로 늘어 301% 생산이 증가했다.

한편, 국산 신약 중 가장 많은 생산실적을 가진 품목은 보령제약의 ‘카나브정’으로 꼽힌다. 고혈압 치료제인 카나브정은 지난해 253억원으로 가장 높은 생산실적을 나타냈다. 이는 2011년 139억원에서 114억원이 증가한 금액이다.

카나브의 뒤로 동아제약의 발기부전 치료제 ‘자이데나정’이 따른다. 자이데나정은 지난해 183억원의 생산실적을 기록, 2011년 180억원에 비해 3억원이 늘어나 현상을 유지하는 선에 그쳤다.

이어 부광약품의 간장질환용제인 ‘레보비르캡슐’이 61억원, JW중외제약의 퀴놀론계 항균제인 ‘큐록신정’ 54억원, 같은 회사의 발기부전치료제인 ‘제피드정’이 53억원, 대원제약의 해열.진통 소염제인 ‘펠루비정’이 52억원 등의 순으로 생산실적 성적표가 매겨졌다.

◆ 한미약품-LG생명-동아ST-녹십자 등 신약 한줄기 빛
생산실적 결과만 놓고 봤을 땐 국산 신약은 아직 초보 단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몇 년 사이 국산 신약들의 글로벌 시장 도전과 성공 가능성은 높게 점쳐진다.

특히 개량신약의 강세와 전략적 제휴 등을 통한 국내 제약사들의 해외 시장 진출 성공 소식은 국내 신약산업에 한 줄기 빛으로 비춰진다.

한미약품은 지난 8월 역류성 식도염치료제인 ‘에소메졸’이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국내 개발 개량신약 중 최초로 시판허가를 획득했다고 밝혔다.

에소메졸 외에도 LG생명과학, 동아ST, 녹십자 등의 제품도 미국 임상을 완료하고 올해 안에 품목허가를 앞두고 있다.

이에 앞서 셀트리온의 ‘램시마’는 유럽의약품청 바이오시밀러 허가를 받았다. JW홀딩스 또한 토종 영양수액으로는 처음으로 지난달 미국 박스터사와 3체임버 영양수액제에 대한 라이선스 아웃과 수출계약을 했다.

한국투자증권 이정인 연구원은 “이러한 호재성 이벤트가 개별 업체의 단기 실적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나, 제약 업종의 장기 성장에 중요한 근간이 되기 때문에 제약업계의 모멘텀에는 긍정적”이라며 “앞으로도 제약·바이오 업종의 관전 포인트는 해외·신약 모멘텀”이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 역시 “에소메졸 출시는 특허 도전을 통해 미국과 같은 선진국 시장에 진출하는 좋은 성공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국내 기업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최근 미국의 의료보장 확대 정책에 따라 가격과 품질 경쟁력을 앞세워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상업적으로 성공하는 최초의 국산 의약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이어 “한미약품 에소메졸 외에도 LG생명과학·동아제약 등 상당수 제품이 미국에서 임상이 완료되어 올해 안으로 품목 허가를 가시화할 전망”이라며 “국내 기업의 다양한 글로벌 진출 사례가 증가하면서 제약업계 전반에 글로벌 진출을 ‘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어 2013년이 제약산업 성장의 원년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생산실적 또한 2004년 7품목 131억원에서 2010년 9품목 654억원으로 증가했고, 이듬해인 2011년에는 12품목 823억원으로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식약처가 공개한 2012년 국내 의약품 생산실적에 따르면, 국내 신약 14품목(생산실적 없는 5품목 제외)의 생산실적은 856억원이다. 이는 지난 2011년 생산실적보다 약 4%가 증가한 수치다.

배기달 신한금융투자증권 연구원은 “국산 신약의 역사가 쌓여가면서 국내 제약업체도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신약이 무엇인지 알아가고 있어 앞으로 국산 신약의 상업화 가능성은 크다”고 말했다. 

◆ 국내업체 총 R&D투자 외국 1개사의 5%수준… 그래도 2020년 7대 제약강국 ?
2011년 기준으로 1000조원 규모가 넘는 세계 제약 시장에서 19조원에 불과한 국내 제약산업이 꾸준한 성장세를 보인다는 것은 분명 호재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국내 신약이 ‘블록버스터’로 커가기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책과 함께 제약사의 구조 변화 그리고 의료계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지적한다.

이정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국산 신약 부진에 대해 ▲처방권을 지닌 의료진들의 국산 신약에 대한 신뢰 및 인식 부족 ▲약 처방을 쉽게 바꾸지 않는 보수적 처방 관행 ▲다국적 오리지널 제품 대비 경쟁력 부족 ▲제한적인 적응증에 따른 처방 한계 등을 꼽았다.

여기에는 국내 제약사들의 문제도 포함된다. 600개가 넘는 국내 의약품 생산업체 대부분이 중소기업인 데다 제네릭과 국내 영업 중심의 내수로 먹고살다 보니 매출 1조원을 넘기기도 힘든 ‘우물 안 제약사’가 되어버린 것이다.

우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제약산업 발전의 핵심안으로 꼽히는 ‘블록버스터급’ 신약을 개발하는 것이 가장 좋은 탈출구다.

물론 미국 FDA 승인 등을 통과해 얻는 ‘글로벌 신약’이라는 타이틀과 이를 넘어선 ‘블록버스터’ 탄생 성공 확률은 매우 낮다. 하지만 이를 딛고 연 매출 5000억~1조원 이상 ‘블록버스터급’이 되면 글로벌 기업 도약과 20년간 독점 특허 및 대규모 국부 창출이 가능해진다. 글로벌 제약사인 ‘화이자’는 고지혈증 치료제 ‘리피토’를 통해 2010년 127억달러를 거둬들인 바 있다. 이는 자동차를 무려 94만 대나 수출한 효과와 같다.

신약 개발을 위해선 무엇보다 R&D 투자가 필요하다. ‘글로벌 제약’을 위한 현실은 골리앗에 덤비는 다윗 격이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의 통계에 따르면 국내 10대 제약사와 세계 10대 제약사의 R&D 비중은 8.2% 대 15.6%로 약 2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를 단순히 2배 차이라고 볼 수 없다. 지난해 세계 판매액 1위를 기록했던 스위스 제약사 노바티스의 매출액이 507억달러(약520조원)가 넘는 것을 감안해볼 때 15%가량의 R&D 비용은 그 규모나 비중 면에서 엄청난 차이로 벌어지는 것이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2020년 세계 7대 제약강국 도약’을 위한 마스터플랜으로 ‘제1차 제약산업 육성지원 5개년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계획안은 현재 2500억원 수준의 연구개발(R&D) 지원 규모를 2017년까지 두 배로 늘려 5000억원으로  확대하고 바이오시밀러나 줄기세포 치료제 등 유망분야에 집중 투자하는 한편 향후 5년간 신약 20개, 글로벌 신약 4개를 개발한다는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한다.

정보라 한화투자증권 연구원는 ‘Bio Touch! 신약개발’보고서를 통해“2012년 세계 의약품 시장 규모는 9895달러로 2007~2012년 동안 연평균 6.3% 성장했으며 2016년에는 1조1799억달러 규모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며 “국산 신약의 경우, 1990년대 후반 첫 허가를 받은 후 상업적으로 실패한 수많은 사례들이 있었으나 최근 출시되는 신약들은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고 있어 향후 몇 년 내 글로벌 신약의 탄생을 기대할 만한 시점”이라고 전망했다.

과연 국내에서도 이 같은 글로벌 제약기업이 탄생할 수 있을까. 해답은 결국 정부, 산업계, 학계의 유기적 협력 아래 있다.

 

[기고]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 여재천 상무이사
'건강한 실패'에 대한 정부투자 계속돼야.. 한국도 글로벌 신약 나올수 있어

우리나라 제약기업들은 1986년부터 시작된 25년간의 신약 개발의 역사 속에서 물질특허 출원, 전임상시험, 기술수출, 임상시험, 국산신약 개발, 글로벌 신약 개발까지 신약 개발의 전 주기 과정을 완주하고 있다. 이제는 신약 개발을 제약기업 성장의 바로미터가 아니라고 이의를 달 사람은 아무도 없다.

◆ 신약개발에 제약기업 존망 달려있어

미국과 일본의 제약기업들이 그러했듯이 우리나라에서도 글로벌 신약 개발을 통해서 세계적인 다국적 제약기업이 탄생할 때가 되었다. 이제는 신약 개발에 제약기업의 존망을 걸어야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나라가 글로벌 제약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신약 개발을 기반으로 한 해외 시장 진출을 도모해야 하고 그러자면 정부도 지금보다 더 분명하게 제약산업을 국가 기간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한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더욱 전향적인 정부의 정책 변화가 필요하다.

제약산업육성법의 제정과 시행에 따른 실질적인 혜택이 제약산업에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신약 개발’을 분명한 국가의 산업 육성 전략방향으로 정립한 다음에 법과 제도 개선, 연구비 지원 확대, 연구지원 시스템 개선 등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변화와 혁신을 이뤄나가야 한다.

신약 개발은 성공 확률이 1/5000, 1/10000이고 개발기간도 10~15년으로 길기 때문에 다들 힘들다고 한다. 하지만 신약 개발은 연구와 실험을 통해서 성공 확률을 좁혀나갈 수 있고 소요 비용을 줄여나갈 수 있다는 관점에서 도박이 아니라 과학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한 제약기업의 성장동력이다.

신약 개발에 필요한 투자비는 일반적으로 3000억원에서 1조3000억원이 든다. 그러나 이렇게 투자비의 편차가 심한 것은 글로벌 신약 개발에 성공한 다국적 제약기업들이 질환군을 넓혀서 다수의 환자에 적용하는 기회비용까지도 포함시켰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해서 절반 가까운 비용으로도 신약 개발이 가능해지고 있다.

해외 시장 진출을 목전에 두고 있는 우리나라 제약기업들은 ‘연구개발비’의 절대 규모가 매우 중요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정부 R&D 예산에 별도로 신약 개발 항목을 신설해야 한다. 민간의 직접적인 투자를 줄이자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정부는 종잣돈을 통해서 민간투자를 유도해왔는데 이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 2010년도 정부지원액1499억원은 2010년도 한 해 동안 정부가 BT 분야에 지원한 2조3000억원의 6.4%에 불과한 액수로서 생명공학 기술이 접목되는 시장의 80%가량이 의약품임을 감안한다면 신약 개발에 대한 현행 정부 지원액은 현실감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 신약개발, 전방위적 지원이 필요해

설상가상으로 제약기업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많은 신약 개발 자금을 투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약제비 절감정책으로 인하여 짧은 기간 동안에 급격하게 약가가 인하됨으로써 신약 개발을 위한 재투자 여력은 현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신약 개발을 장려하고 제약기업의 투자를 이끌어내려면 다른 어떤 인센티브 지원보다도 신약의 가치 반영을 통한 보험약가의 보너스 지원이 우선되어야 한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신약 개발에 대한 정부의 미래 전략적인 정책 투자방향을 설정, 그동안 매우 불투명하게 설정해온 사안 하나하나를 되짚어가면서 반성해야 한다. 부처별 비연계성 사업의 추진으로 인한 의료수요가 고려되지 않은 신약 개발 전략의 수립, 중복연구의 심화, 기초연구를 통한 파이프라인 구축 미약, 정부 지원 연구비의 산학연 간 출혈경쟁, 전 주기 연구개발 과정의 출구전략 부재, 범부처 신약 개발 지원사업의 비효율성 등을 손꼽을 수 있다.

해결 방안은 민간에서 신약 개발을 주도하는 것이다. 후보물질과 선도물질 도출까지는 미래창조과학부가, 그다음 임상 전까지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임상은 보건복지부가 담당하는 도식적인 정부 주도의 신약 개발 지원정책은 매우 비생산적이다. 정부가 그동안 신약 개발의 아이디어를 학계나 연구소를 중심으로 많이 반영했다면 이제부터라도 기업의 수요가 전폭적으로 반영된 산학연 연구와 개발이 추진되어야 한다. 빠른 시일 안에 국가 차원에서 질환 군, 환자 수, R&D 자원, 보험재정 형평성 등을 고려한 신약 개발 지원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이어서 집중지원이 필요한 와해성기술을 도출하고 지원할 수 있는 신약 개발 프로그램을 다 함께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