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꼬마도 될 수 있고
엄청난 거인도 될 수 있다.
아파트 벽쯤 단숨에 오르고
물 위로 벌렁 누울 수도 있다.
하지만 난
혼자서는 안 논다.
꼭꼭 누구랑 같이 논다.
누구가 누구냐구?
바로 너지 누구야.
언제나 너를 따라
함께 노는 나.
그럼 나는 누구게?

-문삼석 <그림자>

‘내게 그런 핑계 대지 마 입장 바꿔 생각을 해봐/ 네가 지금 나라면 넌 웃을 수 있니.’
가수 김건모가 부른 ‘핑계’라는 노래의 일부다.

핑계 대지 말고 입장을 좀 바꿔서 생각해 보라는 이 가사가 통찰에 이르는 ‘치환하기 생각법’이다. ‘입장을 바꿔보라’는 말이 곧 치환해 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치환하기 생각법’은 ㄴ에서 ㄱ의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는 방법이다. 수업 시간에 ‘치환하기 생각법’을 활용해 시를 쓰라고 학생들에게 주문했다. 그랬더니 어떤 학생이 ‘의자’라는 제목으로 이런 시를 썼다.

“오늘도 난/ 비밀을 알게 되었다// 알고 싶지도 / 알아내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들이 내 품에 기대기만 하면/ 저절로 밝혀지는 일급비밀들// 어제 저녁엔/ 경영학과 여학생이// 오늘 아침엔 국문학과 여학생이// 나에게 슬며시 떨어뜨리고 갔다// 누구에게도 가르쳐 주지 않던/ 그들의 몸무게/ 취업을 위해 짓눌린 생각의 무게, 눈물의 무게를”

4학년 학생이라면 누구나 취업이 걱정일 것이다. 이런 상황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때문에 만약 자신의 입장에서 취업을 걱정하는 모습을 시로 서술했다면 감정 울림이 크게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의자의 입장에서 졸업반 학생들의 취업 고민을 바라보고 서술했기 때문에 의자마저도 이들의 취업 걱정을 해주는 대상으로 변한다. 취업이 사람만의 걱정거리가 아닌 의자까지 걱정하는 문제가 된다. 그만큼 울림이 커지는 것이다.

이런 생각법을 생활 속으로 연장하면, 의자에 앉으면 몸무게가 나타나는 체중계 의자를 만들어 다이어트용품으로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어떤 과학적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생각의 무게를, 눈물의 무게를 달 수 있는 의자를 만들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생각의 무게나 눈물의 무게는 결국 삶의 무게이니 생활의 고민도를 측정하는 기구를 체중계 대신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가능과 불가능이 확연히 구분되는 아이디어지만 ‘치환하기 생각법’은 이처럼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추출해 낼 수 있다. 특히 기존 사물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데 매우 좋은 생각법이다.

의자가 앉는 기구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몸무게를 재기도 하고, 체중계는 몸무게를 재는 기구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생각의 무게를 재고, 삶의 고민도를 측정하는 기구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오늘 소개할 동시는 문삼석 시인의 <그림자>라는 작품이다. 초등학교 3학년 교과서에 실려있는 이 동시가 ‘치환하기 생각법’의 전형이다.

이 동시에는 제목이 ‘그림자’이면서도 그리자라는 단어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그림자를 의인화해 그림자 입장에서 시상을 전개한다.

꼬마도 되고, 엄청난 거인도 되고, 아파트 담벽을 단숨에 오르고, 물 위로 벌렁 누울 수도 있단다. 그림자는 생명이 있는 존재가 아니기에 꼬마도 거인도 될 수 없다.

담벽을 오를 수도 없다. 누을 수도 없다. 이는 사람이 하는 행동이다. 그런데 그림자를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모두 가능한 일이다.

사람으로 만들어놓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방식으로 그림자를 표현했다. 이런 생각법이기에 그림자에 대한 고정관념이 깨지면서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황인원 시인·문학경영연구원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