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

 

전셋값으로 백지수표를 내야 할 판이다. 지난 5년간 서울 전셋값은 평균 6600만원이나 뛰었다. 같은 기간 증가한 소득(3400만원)의 두 배 수준이다. 전세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주택임대 방식이다. 집주인에겐 ‘돈 놀이’의 기회를, 세입자에겐 무상거주의 혜택을, 정부는 손 안 대고 주택수를 확보하는 ‘너 좋고 나 좋은’ 제도였다. 하지만 주택경기 하락, 저금리 기조 등으로 시장 지형도가 바뀌었다. 집주인들은 전세를 월세로 돌려가는데, 매매포기를 선언한 수요자들은 끊임없이 전세를 갈구했다. 이 과정에서 전세는 귀하신 몸이 됐다. 전세대란의 배경이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정부가 칼을 빼들었다. 이른바 ‘8.28 전월세대책’이다. 다주택자의 양도세 중과 폐지, 취득세 영구 인하, 장기 모기지론 공급 확대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월세 세입자 소득공제율이나 공제한도를 확대한 점도 눈에 띈다. 이번 대책의 핵심은 ‘주택시장 매매거래 활성화’다. ‘있는 사람, 없는 사람’ 할 것 없이 집을 더 사들여야 ‘전월세대란’을 종식시킬 수 있다는 말.

시장은 관망하는 모양새다. “임차인의 숨통을 트일 수 있을 것”이라는 환영도,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든다”는 회의도 있다. 하지만 ‘전세난’을 지나치게 의식한 정책이라는 점은 아쉽다. 전문가들은 “전세는 구조적으로 항구적인 유지가 불가능한 제도”라고 했다. “전셋값이 실제 집값에 근접하게 되면 전세는 자연스럽게 사라진다”는 주장도 있다. 이미 전셋값이 집값을 뛰어넘은 지역이 있을 정도니, 금융 시장에서 제기되는 ‘전세 절멸설’도 무리는 아니다.

임대사업 현장에서도 이런 변화는 감지된다. ‘월세 대세론’이다. 지난해 국토교통부 조사에 따르면, 수도권 주택의 월세 비중은 22.95%로 전세(29.32%)와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왔다. 5년 전에 비해 5.4%나 늘어난 수치. 흥미로운 것은 ‘사글세’ 수요가 다양해지고 있다는 점. 사글세는 집을 얻을 때 임차기간 동안의 차임 전부를 미리 지급하는 것으로, 집값의 5% 정도를 1년 치 집세로 내는 외국의 렌트 형태와 비슷하다. 형편이 안 좋은 세입자가 짧은 기간을 계약할 때 활용되는 측면이 강했으나, 최근에는 외국인 직원이나 해외 유학생의 거주지, 상가의 단기임차 방식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주거에 일정 비용을 지불하는 문화가 자리 잡아 가고 있는 양상이다. 그래서 아쉽다는 거다. 소멸 기로에 놓인 전세에 집착하는 부동산 개혁안 말이다. 전세를 대체ㆍ보완하는 정책개발과 그에 대한 지원에 방점이 찍힌 정책 개발은 시기상조였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