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각국의 유동성공급으로 인한 자산 거품이 꺼지면 대공황이 재연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지난 11월24일 신한금융투자 리서치포럼에 참석한 장하준 교수는 “달러 차입을 이용한 캐리트레이드가 늘어나 거품을 키우고 있다”면서 “숨쉴 틈을 만들어놨으면 자본시장 규제를 강화해 지나친 거품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했지만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지금 거품을 그대로 놔두면 더 커졌다가 꺼지면서 또 한번 커다란 경기하강이 올 수도 있다”면서 “대공황 때와 유사한 사태를 맞이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장 교수는 또“현재 한국은 단기이익을 노리는 펀드들의 힘이 강해지면서 장기적인 투자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면서 “국제자본이동을 규제하는 등의 조치로 장기적 안목을 가진 투자자가 지나치게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장하준 교수와의 일문일답.

금융위기 이후 한국 경제에 대해 전망한다면
이번 사태는 외부적인 충격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빠르게 회복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자동차, 전자 등 그동안 투자를 제대로 하고 준비를 해온 사업은 이번 기회에 한 단계 상승하는 효과까지 있었다.

다만 외환위기 이후 지난 10여년 동안 차세대 산업을 육성하지 못해 체질이 약해졌기 때문에 당장보다는 장기적인 부분이 걱정이다.

특히, 자본주의시장 개방으로 적대적 인수합병이 쉬워지고 단기이익을 노리는 펀드들의 힘이 강해지면서, 기업들의 단기수익에 대한 압력이 증가해 장기적인 투자도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자산시장의 거품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는데.
현재의 주가는 상당 부분 정부의 재정지출이나 통화정책 완화에 따른 거품이다. 특히 달러 약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미국 이자율이 거의 제로에 가깝다 보니 달러 차입을 이용한 캐리트레이드가 늘어나 거품을 키우고 있다.

숨쉴 틈을 만들어놨으면 부동산 담보대출 비율조정, 구제금융을 받은 금융기관의 이익에 대한 적절한 과세 등 자본시장 규제를 강화해 지나친 거품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했는데 실패했다.

지금 거품을 그대로 놔두면 더 커졌다가 꺼지면서 또 한번 커다란 경기하강이 올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대공황 때와 유사한 사태를 맞이할 가능성이 있다.

“현재 한국은 단기이익을 노리는 펀드들의 힘이 강해지면서 장기적인 투자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국제자본이동을 규제하는 등의 조치로 장기적 안목을 가진 투자자가 지나치게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렇다면 대안은 없는지.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셈이다. 지금 상황에서는 대안이 없다고 본다. 물론 지금이라도 정책을 바꿀 수는 있겠지만 정치적으로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공적자금을 투입하면서 잘못된 경영으로 위기를 초래한 경영자들을 제대로 처벌하지 않았는데 유사한 금융위기가 일어나 대규모 공적자금 투입을 다시 시도한다면 정치적인 저항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공적자금 투입을 통한 부실 금융기관의 청소가 불가능해지면 영미권 국가를 중심으로 제2의 대공황이 올 수도 있고 최소한 일본식의 장기불황이 올 거라고 생각한다.

국내 금융계에서도 황영기 전 KB금융지주 회장의 징계가 화두였는데.
기본적으로 파생상품 계약도 계약인데 모든 것을 전부 예상해서 보장을 하는 개념은 아니지만 거기서 구매자를 호도하는 경우가 있다면 처벌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본다.

장 교수는 세계 경제의 단기적 회복이 힘들다고 전망했지만 KDI에서 2010년 국내 경제성장률을 5.5%로 전망하는 등 긍정적인 전망치가 나오고 있는데.

한국 경제는 세계 경제가 어떤 식으로 회복이 되느냐에 따라 달려있다. 세계 경제가 3~4% 성장한다면 한국도 4~5% 성장이 가능하겠지만 한국의 힘만으로는 안 될 것이다.

출구전략을 성급하게 시행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는데.
출구전략은 상황을 봐가면서 해야 한다. 경기가 회복하는 것 같으면 돈을 걷어들이고 경기가 나빠지면 다시 풀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에 시점은 의미가 없다.

전 세계적으로 더블딥을 전망하는 학자들이 많은데.
더블딥 가능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꼭 더블딥이 온다고 보지는 않는다. 현재 미국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는 실업률과 그에 파생되는 크레디트 카드와 주택담보대출, 상업용 부동산 문제다.

이 둘이 정확히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운이 좋고 정책 집행을 잘해서 조합이 잘 이뤄진다면 V형의 경제성장은 아니지만 서서히 회복될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의 소비가 언제쯤 정상화될 거라고 보는지.
미국 소비는 당분간 위기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기는 힘들 것이다. 유럽과 비교해 미국은 실업보험이 커버하는 사람이 적고 그 기간도 6개월밖에 안 된다.

때문에 이미 실업수당이 끝난 사람도 있어 향후 실업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가계들도 이미 빚을 많이 지고 있기 때문에 소비를 더 이상 늘릴 수 없어 당분간 미국 소비에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세계 경제를 지탱시키고 있는 중국은 어떤가.
중국이 소비를 늘린다는 것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중국의 소비 성향이 낮은 이유는 크게 4가지다.

고성장으로 인해 소비문화가 지체됐고, 복지국가 미발달에 따른 보험용 저축 성향이 강하고, 소득분배 불평등으로 소비 성향이 높은 저소득층의 지분이 낮고, 소비자 금융이 상대적으로 미발달해 영미식의 빚에 의존한 소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일부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영국발 금융위기가 터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은데.
영국이 미국보다 문제가 더 심각한 것은 사실이다. 영국은 달러처럼 패권통화를 가지고 있지 않다.

또한 금융 산업의 어느 부분까지 통계로 잡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GDP에서 금융업이 차지하는 비율이 미국은 8%이지만, 영국은 15%에 이른다. 금융업이 기울어지면서 영국은 더 큰 위기가 닥쳐 2차 금융위기 진원지가 될 가능성도 있다.

금융자산은 체크하기 어렵다는 것도 문제다. 이번 서브프라임 사태도 제일 먼저 문제가 불거진 곳은 미국이 아니라 스위스, 독일이었다.

미국처럼 영국도 문제가 어디에 숨어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 영국발로 터질지, 생각지도 않았던 곳에서 터질지 알 수 없다.

달러패권이 무너질 것이라 지적했는데 위안화가 아닌 유로화를 대안으로 보는 이유는.
유로화는 하나의 실험이다. 15개 국가들이 공동통화를 사용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유럽은 단일국가의 중간단계에 와있다.

중앙재정이 있어 재분배가 가능하고 노동이동도 법적으로 자유롭다. 유럽은 세계 최대 경제권으로 형성돼 있고 실물이 받치고 있다.

이번 아일랜드 사례에서 큰 통화에 속해 있는 이점이 드러났다. 이에 유로화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약소국가들도 있을 것이고 장기적으로는 영국도 파운드화를 포기하고 유로화에 가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유로화가 힘을 얻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유로화의 위상을 높이려는 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동은 미국에 불만이 많기 때문에 결제화를 유로화로 바꾸겠다는 협박을 하고 있다. 대체통화가 없을 때는 소용이 없었지만 이제는 유로화라는 대안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중국의 과도한 SOC 부작용을 우려했는데 국내 역시 상당량의 SOC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국내 발전단계에서는 정부가 투자로 수요를 늘리려면 SOC보다는 연구개발비나 사회복지비를 늘리는 것이 맞다고 본다.

1970년대는 SOC투자라는 방향이 적절했지만 현재 단계에서는 국내경제성장에 결정적인 요소가 아니다. 한국이 기술적으로 진정한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연구개발비를 늘리는 것이 필요하다.

실제로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연구개발비가 낮다. 실제로 대부분의 국가가 30% 수준이고 미국은 40%수준인 데 반해 우리는 20% 수준이다.

사회복지 확대는 대의적인 부분에서 다 같이 잘사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진정한 선진화라는 관점에서도 필요하지만 장기적인 성장동력으로서도 필요하다.

학생들이 상대적인 보수가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의사나 변호사가 되려고 하는 이유는 고용불안과 재기가 불가능한 사회환경 때문이다. 국내 상위권 학생 80%가 의대나 법대가 적성이라는 것은 말이 안된다. 그들이 과학자,

공학도가 돼야 하는데 그만큼 미래가 불안하다는 것이다. 브레이크가 없는 차는 아무리 운전기술이 좋아도 속도를 낼 수 없다. 브레이크가 좋은 차가 속도도 낼 수 있는 것이다. 국내 발전단계에서는 그런 브레이크가 존재해야 한다.

적대적 M&A, 국제자본이동을 규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는데.
고정된 실물자산을 유동화시켜 경제가 원활히 돌아가게 하는 것이 금융의 역할이다. 실물과 금융은 시차가 있다.

그 시차가 없으면 금융이 아니다. 문제는 그 시차의 간격이 너무 짧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이 돌아가는 방식이 다음 선거, 내년 임기를 보고 행동하는 금융기관들이 점점 많아지는데 그런 식으로 실물투자를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

미국 경제가 한때 세계를 호령했지만 경쟁력을 잃고 망한 것은 제조업체들까지도 금융적인 시각으로 기업을 운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토요타나 폭스바겐이 5~10년 보고 투자할 때 GM·포드는 파이낸셜 기업을 만들어 투기하고, 기술투자는 안하고 기술이 필요하면 한국에 가서 대우를 사고 스웨덴 가서 사브를 사서 기술을 빼가는 방식으로 운영했다.

금융회사는 금융의 시각으로 운영하는 것이 맞지만 제조업까지 금융의 시각으로 운영을 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정부가 새로운 성장동력을 녹색성장으로 보고 있는데.
좋은 방향이라고 본다. 국내 기업들은 자동차, 조선 등 이미 과열인 시장에 진입해 성공하기도 했지만, 전자 산업은 다른 나라보다 일찍 들어갔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다.

녹색성장도 현재 최첨단이 아니기 때문에 좀 더 일찍 진입해 선점하는 것도 좋다.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에 옳은 정책이라고 본다.

한국 투자자들에게 조언 한마디 해준다면.
금융투자의 성격상 무조건 장기적으로 투자하라고는 할 수 없다. 금융의 장점은 유동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투자자들이 단타주의로 흐르면 실물경제 생산성 향상이 어려워져 전체적인 경제기반이 약화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적대적 인수합병을 어렵게 만든다든가, 지나치게 빠른 국제 자본이동을 규제한다든가 해서 장기적 안목을 가진 투자자가 지나치게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오희나 기자 hnoh@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