잦은 술자리·인스턴트 식사·업무 스트레스 3단 콤보 

평소 시간에 쫓겨 식사를 인스턴트식품으로 때우는 경우가 많다. 술자리가 잦고, 안주로는 짠 음식을 선호한다. 마감이 임박하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피곤하니 운동은 거의 안 한다. 최근 들어 뒷골이 자주 땅겼다. 직접 내과를 찾아 혈압을 재봤다. 고혈압 초기라는 진단을 받았다. 왜일까. 전문의와 원인을 분석해봤다.

 

박지현 기자의 하루

동틀 녘, 갑자기 귓전을 때리는 소리. “한잔 더!” 이게 무슨 소린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젯밤에도 거나하게 들이부었다. 간밤에 얼마나 ‘한잔 더’를 외쳤으면, 환청까지 들리나. 목구멍 깊숙한 곳에서 올라온 비릿한 냄새, 엊저녁 안주가 ‘어리굴젓’이었음을 알렸다. 씻는 둥 마는 둥 하고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었다. 9시까지 영등포로 가야 한다. 인터뷰가 있다. 버스를 잡아탔다. 분명히 잔 것 같은데 너무 피곤하다. 휴대전화 문자에 찍힌 택시요금 결제 내역을 보니 이거 웬걸. 새벽 4시 5분에 귀가했나 보네. 갑자기 LTE급으로 몰려오는 피로감.

괜히 피곤한 게 아니었다고 정당화하자 까무룩 잠이 들었다. 술도 덜 깨고 아침도 못 먹고, 병든 닭이 따로 없었다. 덕분에 내려야 할 정류장을 시원하게 지나쳤다. 뒤늦게 뒷문으로 뛰어갔다. 껌 좀 씹는 여고생들과 부딪쳤다. “어우, 대박. 민폐갑이네!” 속으론 ‘쬐끄만 게…’라고 생각하고, “죄송합니다(굽실굽실)”라고 뱉었다.

인터뷰 장소 도착. 건물 1층에 있는 편의점에서 커피를 샀다. 아무리 바빠도 커피 한잔의 여유는 가져야 하는 것 아니겠음? 몽롱한 정신이지만 최대한 집중해서 ‘담백하게’ 인터뷰를 끝낼 작정이었다. 후후. 난 베테랑 기자이니까, 라고 나는 믿었다. 그러나 1시간 후. 어라, 이 취재원 은근 삼천포로 빠지는 스타일이네. “제가 군대에 있을 때 말이죠. 상병 말호봉 때 말입니다. 방철통 메고 벼랑에서 따악 굴러버린 거 아닙니까.” 아니, 님아…. 올바른 자녀교육법 물었는데, 군대 얘긴 왜 자꾸…. 돌려놓으면, 또 제자리로. 흡사 오뚝이와 같았던 취재원님 덕분에 피로감 두 배 추가요.

전날 폭음 후 아침을 못 먹었더니 허기졌다. 장장 2시간 가까이의 인터뷰를 끝내고 다시 1층 편의점으로 갔다. 컵라면을 찾았다. 속을 풀어줄 뜨끈한 국물이 필요했다. 이왕이면 큰 사발로. 뜨거운 물은 점선에서 조금 모자라게 부었다. 짭조름한 라면을 한 사발 하니 뭔가 허전했다. 국물로 찰랑이는 속을 꾹 눌러주고 싶은 그런 느낌. 패스트푸드점에 가서 치즈를 추가한 햄버거를 시키고 난 뒤 비로소 평안을 찾았다. 행복이란 게 이런 걸까.

그때 갑자기 전화가 울렸다. 중학교 동창. 간만에 전화해서 대낮부터 신세한탄을 늘어놓는다. “어휴…나 이렇게 계속 살아야 하니?” 길게 이어질 게 뻔한 그녀의 시름. 남자친구와 싸웠음이 틀림없다. 또 다른 전화가 들어오는 소리에 “어…미안한데, 내가 이따 밤에 전화할게.” 딸각. “여보세요?” “박 기자, 마감 안 하나? 자녀교육 기사 오늘 정오까지 마감이잖아! 요즘 기자들은 군기가 빠졌어. 나 때는 말야~” “아, 네. 지금 바로 써서 최대한 빨리 송고하겠슴다.” 그 자리에서 노트북을 열었다. 1시간 만에 끝낼 수 있을 거야…. 이게 웬일. 파일이 없다. 인터뷰 내용을 적은 파일이 저장이 안 됐다. 몸 구석구석의 혈관 가장 마지막 부분까지 피가 뻗치는 기분. 뒷골이 빡 땅겼다. 아, 뒷목! 혹시…나 고혈압?

 

결국, 병원 가다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에서 혈압을 측정하고 있다(사진: 이미화 기자).

공사가 다망했던(?) 하루를 보낸 다음 날. 득달같이 병원으로 갔다. 사실, 단 하루 증세 때문에 찾은 건 아니다. 요즘 들어 괜히 뒷목이 땅기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4월 23일, 미국 직업안내사이트 ‘커리어캐스트닷컴’에 따르면 미국의 주요 직업 200개 가운데 ‘최악’의 직업이 기자라지. 연봉, 전망, 작업환경, 스트레스까지 4대 부문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결과다.

발길이 닿은 곳은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내과. “요즘 들어 뒷골이 워낙 자주 땅겨서요.” 커프로 혈압을 재봤다. ‘140/90’이 나왔다. 140/90은 고혈압과 정상의 경계다. 수축기 혈압은 140이고, 이완기 혈압은 90이라는 얘기다. 김민경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순환기내과 교수는 “고혈압이 시작되는 문턱”이라고 진단했다. 고혈압 초기 증세라니. 세상 다 산 표정으로 물었다. “고혈압인 건가요? 이제 어떡하죠?”

김 교수는 “가족 중에 고혈압이나 심장병력이 있는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다. 없다고 했다. “그나마 유전적 병력이 없다는 것은 다행”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140/90을 한 번 찍었다고 고혈압이라고 볼 수는 없다”면서 “시간 차를 두고 한 번 더 재서, 이 같은 수치가 반복적인 패턴을 보일 때 비로소 고혈압 진단을 내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숨 놓았다. 만일 이후에도 이 같은 수치가 나왔을 경우에는 처방이 필요하단다. 김 교수는 “그러나 유전적 병력이 없고 지금처럼 젊은 나이(32세)라면, 생활 패턴부터 서서히 고쳐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이어 “고혈압은 합병증이 없는 한 증상이 거의 없다”면서 “뒷머리가 땅긴다거나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지만 개인에 따라 달라서 혈압이 아무리 높아도 증상이 없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조금만 높아도 두통을 호소하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이날은 팔에 감는 커프로만 측정했지만, 향후 고혈압 증세가 이어질 경우 소변검사, 망막검사, 심장검사까지 필요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김민경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순환기내과 교수

“생활패턴 개선으로 혈압 낮춰야”

고혈압을 두고 괜히 ‘소리 없는 살인자’라고 하는 게 아니다. 김민경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순환기내과 교수는 “생활습관이 똑같은 사람일지라도, 어떤 사람은 고혈압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했다. 말인즉슨, 특별한 증세가 없다는 뜻이다. 실제로 김 교수는 여러 환자들을 만나지만 그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습성은 딱히 없다고 했다. 그러니 자신의 혈압을 정기적으로 확인하고, 원인을 분석한 후 치료·개선해나가는 게 상책인 셈. ‘고혈압의 문턱’이라는 진단을 받고, 평소 생활패턴을 분석해봤다.

Q. 업무 볼 때 습관적으로 커피를 마신다. 많게는 대여섯 잔 정도까지.

고혈압은 심혈관 질환의 위험률을 높인다. ‘콜레스테롤’과 ‘포화지방산(동물성지방)’은 심혈관 질환의 위험을 높이지만, 커피 자체가 부정적이라고는 볼 수 없다. 반드시 섭취를 제한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커피에 포함된 카페인이 두근거림을 일시적으로 상승시킬 수 있기 때문에 하루에 두세 잔 정도로 줄이는 걸 제안한다.

Q. 사소한 스트레스를 자주 받고, 항상 긴장 상태에서 글을 쓴다.

같은 ‘스트레스’라도 누가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다르다. 이 때문에 스트레스 자체를 원인으로 규정하기는 모호하다. 다만, 스트레스는 일시적으로 혈압을 올릴 수 있다. 또, 이미 고혈압 환자일 경우에는, 스트레스로 올라간 혈압은 잘 조절되지 않는다. 따라서 긍정적인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Q. 일주일에 세 차례 정도 폭음을 한다.

각 술 종류에 맞는 잔으로 1일 여자 1잔, 남자 2잔 정도 마시는 소량의 음주는 심혈관 질환을 감소시켜준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과음하면 초기에는 혈관 확장에 의해 혈압이 떨어지나, 각성 시 혈압이 상승하고 맥박수가 증가해 심혈관계 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 특히 여자는 남성보다 알코올 분해 능력이 떨어진다. 음주량 조절이 필요하다. 담배는 두말 할 것 없다. 담배 한 개비에서 나오는 니코틴이라도 혈관을 조이는 작용을 한다. 몸을 긴장시킨다. 한 개비를 피우는 데는 약 1분밖에 걸리지 않지만,  혈관수축이 지속되는 시간은 4시간이다. 흡연자라면, 담배는 끊는 게 좋다.

Q. 평소 짠 걸 자주 먹는다. 라면·햄버거를 즐기고, 안주로는 찌개류·젓갈류를 선호한다.

소금은 체액의 균형을 조절하는 물질이지만, 수분을 보유하려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 고혈압, 부종, 심장질환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되도록 싱겁게 먹어라. 젓갈과 같은 저장식품, 치즈ㆍ버터와 같은 가공식품, 라면ㆍ햄버거와 같은 인스턴트식품에는 염분이 많이 들어 있다. 국, 찌개와 같은 국물음식은 건더기 위주로 먹는 게 좋다. 하지만 이 또한 개인마다 다르다. 나트륨을 처리하는 능력도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Q. 운동량이 거의 없다.

긴장된 혈관을 풀어주는 데는 운동이 제격이다. 지속적인 운동을 하면 체중 감소와 무관하게 혈압이 5~7mmHg 정도 낮아진다. 땀이 날 정도의 강도로 30~60분간, 일주일에 3~5회 정도로 하는 걸 권장한다. 고혈압이 있는 사람에게 적절한 운동은 빨리 걷기, 조깅, 자전거타기 등의 유산소 운동이다.

Q. 일주일에 세 차례 정도는 새벽에 잠든다.

잠을 잘 못자는 사람이라고 해서 무조건 고혈압이 생기는 건 아니다. 하지만 숙면을 취하는 건 중요하다. 심근경색 등 심장 관련 질환을 겪었던 사람에게는 적어도 7시간은 자라고 권한다. 몸의 항상성 유지를 위해서라도 규칙적인 생활패턴을 따르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