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와 ESS 시장서 성장동력 찾자

지난 6월 25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탄소오염 기준을 도입하고 석탄 사용을 줄이는 등의 다양한 탄소배출 저감 정책을 담은 ‘기후변화 행동계획 (The President’s Climate Action Plan)’을 발표했다.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온실가스의 배출을 규제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다.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온실가스 규제는 강화되는 추세이다. 중국도 지난 6월 광둥성 선전에서 처음으로 탄소배출권 거래 시장을 열면서 2020년까지 2005년 수준보다 탄소배출량을 40% 감축한다는 목표를 정했다. 유럽 또한 2020 package를 통해 에너지 효율성 제고, 재사용 에너지 비중 확대,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등으로 정책 목표로 내세웠고, 자동차 이산화탄소 배출량 감축 의무를 2015년부터 본격 시행할 예정이다.

이 같은 각국의 환경 규제 강화 분위기가 전기차와 ESS 성장을 견인할 전망이다. 특히 연간 4336조원의 석유 소비량 중에서 약 1/3 이상의 석유가 차량용 연료로 사용되기 때문에 범지구적 에너지 효율화 차원에서 리튬이온 2차전지를 기반으로 한 전기차(EV)가 꾸준히 관심을 받고 있다. 충전 인프라 미비 등은 여전히 전기차 성장을 억제하고 있지만 해당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벌금이 부과되고 기업 이미지에도 치명타를 입는다는 점에서 전기차 투자가 확대될 전망이다. 실제로 올 들어 전기차 시장은 더욱 커졌다.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미국 시장에서 전기차는 25만8000대가 팔렸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8.4%가 늘었다. 미국 전체 자동차 시장이 올해 7.5%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기차 시장의 성장 속도는 기대 이상이다. 특히 올해 초 테슬라(Tesla)가 보여준 EV 성공 사례는 전기차의 새로운 사업 모델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시장 내에서 EV를 포함한 전기차에 대한 기대감도 높였다.

전력공급이 불안정해지면서 에너지저장시스템(ESS)도 EV와 함께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는 시장이다. 과거에는 이러한 전력수급의 불일치를 해결하기 위해 피크 시간대에 전력 사용을 자제하거나 발전소를 더 짓는 해결 방안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유 전력을 휴대전화 배터리처럼 충전했다가 피크시간대에 가정이나 공장에서 쓸 수 있다면? 새로운 발전소를 계속 짓는 것보다 훨씬 지속가능한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전력을 저장하는 장치인 에너지저장시스템(ESS∙Energy Storage System)이 획기적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ESS는 스마트그리드 구축의 핵심 요소로서 전기를 전력 계통에 저장했다가 전력이 가장 필요한 시기에 공급하여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시스템이다. 특히 리튬이온 전지는 다른 전지에 비해 에너지 밀도가 높고 에너지 효율이 좋기 때문에 ESS에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평가받고 있다. 실제 리튬이온 전지를 활용한 ESS시장은 2013년 1.4GWh에서 2020년 20.6GWh로 연평균 46.8%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며,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보조금 지급을 통한 설치비용 부담 완화로 그 시장규모는 더욱 성장할 것으로 분석된다.

 

LG화학 중대형 전지 부문에서 발굴의 실력

앞으로 전기차 시장과 ESS 시장의 확대로 2차전지 시장이 IT용 소형 전지에서 중대형 전지로 이동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이 연구원은 “전기차에 사용되는 배터리 용량은 IT용 소형 전지에 비해 압도적으로 크고 에너지 효율 개선에 따른 수요 증가 영향으로 ESS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러한 2차전지 시장의 변화에 따라 국내기업들도 성장하는 전기차와 ESS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업계 안팎에서는 국내업체들이 소형 리튬이온 2차전지에서 다진 경쟁력을 발판으로 중대형 전지에서 선전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실제 글로벌 시장조사업체인 네비건트 리서치는 자동차용 2차전지와 ESS 분야에서 LG화학을 글로벌 경쟁력 1위 기업으로 평가했다. 이뿐만 아니라 삼성SDI와 SKㆍ콘티넨탈 이모션(SK이노베이션과 독일 콘티넨탈의 전기자동차용 전지 합작사)도 높은 순위에 랭크됐다.

특히 LG화학은 중대형 전지 부문에서 글로벌 리튬이온 전지 업체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역량을 보여주고 있다. LG화학은 전기차 배터리부문에서 GM, 포드, 르노, 현대기아차 등 10개 이상의 글로벌 메이저 자동차 회사를 고객사로 확보해 안정적인 물량을 바탕으로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또한 ESS 시장에서도 미국, 유럽 등 주요 시장의 수주를 확보하며 경쟁력을 높여가고 있다. 2001~2010년까지 출원된 ESS 관련 특허건수 중 LG화학이 ESS용 리튬 배터리 출원건수의 41%를 차지할 만큼 ESS 시장에서도 경쟁사를 압도하는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지난 5월에 미국 캘리포니아 최대 전력회사인 SCE(SoutherCaliformia Edison)가 추진하는 ESS 실증 사업의 중대형 전지 공급업체로 최종 선정됐다. 이는 북미 최대 규모인 32MWh급의 실증 사업으로 향후 실증 결과를 미국 전체 전력사들과 공유할 것으로 예상되어 미국 시장에서의 선점효과가 기대된다. 유럽에서는 7월에 태양광 인버터회사인 독일 SMA사의 차세대 가정용 태양광 ESS용 중대형 전지 공급업체로 선정됐다. 최근 독일은 ESS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결정하면서 향후 수요 증가 속도가 빨라질 것으로 기대된다.

삼성SDI는 미국과 일본의 전기차 배터리와 ESS 시장을 선점해 소형 2차전지 시장에서의 주도권을 중형 2차전지 시장에서도 이어가겠다는 전략이다. 삼성SDI는 지난해 9월 독일의 보쉬(Bosch)와 50대50 비율로 투자해 2008년 설립한 SB리모티브의 지분을 전량 인수하면서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사업 부문의 경쟁력을 한층 강화했다. 특히 BMW그룹이 지난달 29일 첫 전기차 i3를 출시함에 따라 삼성SDI도 함박웃음을 짓게 됐다. 삼성SDI는 BMW i3에 들어가는 자동차용 2차전지 독점공급업체이기 때문이다. ESS 시장에서도 적극적인 수주활동에 나서고 있다. 삼성SDI는 자사의 리튬이온 전지를 사용한 가정용 ESS에 대해 일본의 JET 인증, 미국의 UL 인증 및 독일의 VDE 인증 등 주요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인증을 모두 받았다. 이러한 인증을 바탕으로 2011년부터 각각 일본 내 가정용 ESS 시장에서 시장점유율 1, 2위를 기록하고 있는 니치콘과 교세라에 가정용 ESS용 리튬이온 전지를 납품하고 있다. 또한 삼성SDI는 지난달 29일 영국의 S&C와 ESS 공급 계약을 맺었다. 올 초에는 독일 베막, 이탈리아 에넬에도 ESS를 공급하기로 해 ‘유럽 빅3’ 시장에 모두 진출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에 따라 소형 2차전지 분야 세계 1위인 삼성SDI가 유럽 대형 전지 시장 공략에도 가속도가 붙었다는 분석이다.

SK이노베이션도 지난해 9월 전기차 1만 대에 공급할 수 있는 전극 800MWh, 조립 200MWh 규모의 생산능력을 갖춘 서산의 배터리 공장을 가동하면서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미 2012년 5월 일본 미쯔비시 후소(Mitsubishi Fuso)사와 약 2년 반 동안 공동개발을 통해 생산한 하이브리드 트럭 ‘칸터 에코 하이브리드’를 기반으로 본격적인 세계시장 공략의 닻을 올렸다. 특히 올해 1월 콘티넨탈과 합작한 ‘SK-콘티넨탈 이모션’을 설립하면서 세계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평가다. 그동안 현대∙기아자동차, 다임러(Daimler) 등 글로벌 자동차 기업의 전기차에 배터리를 공급 중인 SK의 배터리 셀 기술과 BMW, 다임러 등에 배터리 팩을 공급해온 콘티넨탈의 배터리 팩 시스템, BMS 및 자동차 부품 기술 노하우가 접목되면서 전기차용 배터리 기술 분야에서 시너지 효과가 극대화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한편 중대형 전지 시장은 아직 사업 초기 단계이지만 업계가 예상하는 것보다 시장 팽창 속도가 빨라 글로벌 시장에서 초기 주도권을 누가 잡느냐도 관건이다. 국내 업체들도 자동차용 2차전지와 ESS 시장이 아직 완전히 성장세에 접어들지 못한 만큼 시장을 선점하고 경쟁우위를 점하기 위해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각국의 정부정책 지원 등으로 전기차와 ESS 시장 성장이 가시화되고 있는 가운데 기존 소형 및 전기차 등의 2차전지에서 국내 업체들이 주도권을 잡음에 따라 이와 연계된 중대형 2차전지 시장에서도 좀 더 유리한 위치에서 접근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따라서 국내 2차전지 업체들이 현재의 전기차 2차전지와 ESS 초기시장을 선점하면서 ESS 시장 성장에 수혜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니인터뷰 : 정경윤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

 국가차원의 체계적 핵심소재 원천기술 개발 필요

“전반적으로 리튬 2차전지 시장에서 한국이 세계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매우 잘하고 있죠. 삼성SDI나 LG화학 등이 소형 전지 쪽에서 세계 시장점유율 1위와 2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대형 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괜찮아요. 그런데 문제점이라고 해야 하나. 제조기술은 뛰어난데 부품소재와 원천기술이 취약해요. 특히 4대 핵심소재는 2차전지의 용량, 수명, 출력, 가격 등을 결정하는 핵심 인자로 작용하기 때문에 후방산업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정경윤 책임연구원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서 2차전지 소재부문을 연구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소재기술이 취약한 점을 일찌감치 지적했다. 실제 한국 소재기술은 선진국에 비해 뒤떨어져 있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가 발표한 ‘리튬 2차전지 산업 동향’에 따르면 2차전지 제조기술은 경쟁력을 확보한 상태지만 소재 및 핵심기술은 선진국 대비 30~40%수준에 불과하다.

“최근 대기업을 중심으로 2차전지 소재 사업에 잇따라 진출해 시장확대에 기대감이 높아지고 많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부가가치가 높은 소재분야의 기술력이 선진국 대비 50% 정도 수준에도 못 미치는 상황입니다.” 실제 삼성정밀화학, SK이노베이션, 포스코 등의 진입으로 핵심소재 경쟁력이 과거에 비해 향상됐다. 하지만 고성능 2차전지 소재 관련 원천기술력이 일본, 독일 등 선진국에 비해 뒤처져 있고 수요처도 삼성SDIㆍLG화학 등 일부 업체에 불과해 아직 국내 업체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까진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4대 핵심소재 중 양극활물질과 전해액의 경우에는 국내 생산업체의 참여율이 높은 편입니다. 특히 양극에서는 유미코어(Umicore)라는 100% 벨기에 자본으로 만들어진 회사와 L&F가 선전하고 있고 분리막에서는 SK이노베이션이 참여하고 있지만, 음극 같은 경우에는 거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양극활물질과 전해액을 제외한 음극활물질, 분리막은 여전히 수입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게 사실이다. 또한 양극활물질과 전해액의 대표적인 기업인 L&F와 솔브레인의 해당 사업부 영업이익률도 여전히 매우 낮다. 음극활물질의 경우에는 일본이 산업재산권을 많이 확보하고 있고, 중국 업체들이 풍부한 천연 흑연 자원을 바탕으로 원가절감의 이점을 살려 가격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어 국내업체들에게 높은 진입 장벽을 갖추어놓은 상태다.

“부품소재가 취약한 이유는 지금까지 소재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는 기술에 대한 지원을 할 때 해외에서 어느 정도 검증된 것만 국가적 차원에서 도와줍니다. 정부에 이러한 것을 하기 위해 도와달라고 말하면 가시적인 결과물을 보여달라고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부품소재 산업에서도 First mover가 되는 게 아니라 Fast Follower가 되고 있는 거죠. 선진국 같은 경우에는 실패가능성이 있더라도 신기술과 기술개발에 금융지원 등과 같은 혜택이 많거든요. 하지만 최근 3~4년 사이에 소재산업을 바라보는 인식이 많이 바뀌었는지 정부지원이 많이 늘어났어요. 정부 지원이 늘어났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리튬전지 다음의 새로운 전지기술과 원천기술에 대한 지원은 아직 미숙하다는 것이에요. 선진국과 핵심기술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선 국가차원의 로드맵을 수립해 체계적인 연구 개발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