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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고객, 무상품, 무실적…PB 수난시대
“대출받아 고객 돈 채워주고 있어요”

“답이 없습니다. 대출로 고객 손실을 대신 갚아주는 PB들도 있고, 고객이 분뇨통을 집어던졌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아직 심각하게 항의하지 않는 저는 어느 정도 행복한 거겠죠.”
대형 증권사 U증권 PB로 근무하는 박정원(가명·41) 씨는 PB 세계에 입문한 10년 동안 겪어보지 못한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 오전 10시 고객 상담으로 바빠야 할 시간이지만, 박 PB는 한가하다. 어찌 보면 한가한 샐러리맨 라이프로 보이겠지만 박 PB는 좌불안석이다.
그가 겪어온 10년간의 PB생활은 고객과의 전쟁이었을 정도로 바쁜 나날이었지만, 최근에는 고객들도 현저히 준 데다 고객들이 PB센터에 발을 들여놓지도 않기 때문이다.
박 PB는 얼마 전 황당한 소송까지 당했다. 자신이 판매한 펀드가 아님에도 소송이 들어온 것이다. 다행히 소송은 쉽게 해결됐지만, 고객 손해가 만만치 않고 알고 지내던 고객과도 관계가 소원해졌다.
그나마 금융위기 이전에 증권사 PB로 이직한 것이 박 PB에게는 천운(?)으로 작용했다.
채권투자자들이 증권사에 많이 몰리는 통에 어느 정도 실적을 채우고 있는 반면, 시중은행 PB들의 경우 판매실적은커녕 고객들 손실을 사비(私費)로 채워주고 있다.

펀드판매에 돈 잃고, 사람 잃고
보험설계사들도 영업이 어렵다고 하지만, 이보다 PB들이 힘든 이유는 ‘펀드 판매’를 들 수 있다. 특히 해외펀드를 판매한 PB들은 고객 항의를 무마하느라 대출까지 받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PB가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에 박 PB는 “소송하겠다는 고객을 말리려면 사비를 털어야 하지 않겠냐”며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고 좋게 넘어가야 자기 실적이나 이미지에도 마이너스가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PB가 아무리 억대 연봉이라고 해도 고객들 돈을 갚아주기에는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설마 몇 억원대도 갚아줄까. 박 PB에 따르면 1억원 이상 갚아준 이들은 보기 힘들다고 말한다.
몇 억원대로 투자한 고객들은 대부분 자산의 일부를 투자한 것이기 때문에 현재 상황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편이라고 박 PB는 전한다. 몇 천만원 대로 투자한 고객들 중에 ‘몰빵투자’한 이들은 손실을 물어내라며 항의전화를 한다고 한다.
“최대 4500만에서 최소 1000만원까지 물어주는 경우도 봤어요. 주변에 비일비재해요. 제 동료들도 신용대출받아서 갚아주기도 했습니다. 이자 나가는 것까지 생각하면 짜증 나기도 하지만 어쩔 수 있나요. PB는 사람 장사여서 인간 관계가 한번 무너질 경우에는 도미노처럼 무너져요.”
박 PB의 경우에는 괜찮냐는 질문에 “다행히 거센 항의를 하거나 손실을 물어내라는 전화는 없었다”고 답했다. 박 PB가 U증권사 이전에 활동했던 시중은행 고객들은 “입맛이 쓰지만 할 수 없다”며 잠자코 있는 상황이다.
인터뷰 도중 박 PB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자산가 고객 중 한 명인데, 현재 펀드에 36억원이 투자돼 있는 상태이다. 36억원은 현재 -50~60%의 수익률로 18억원까지 손실을 봤으며, 환매로 최종 남을 돈을 계산해본 결과 9억원도 안 된다고 한다.
“정말 감사한 고객들이에요. 이렇게 반토막 아니 원금의 1/4밖에 남지 않은 상황인데, 꾸준히 자기 자산을 관리해 주고 걱정해 주는 덕분에 마음이 많이 아프지는 않다고 하세요. 오히려 고맙다고 말하는데, 그 말을 듣는 제가 얼굴이 뜨거워질 정도예요. 어서 빨리 시장이 회복되길 바랍니다.”

스타급 PB들, 줄소송으로 마음고생
“저희 PB들도 고객들의 손실에 가슴이 아파요. 시중은행에 근무하는 동료 PB들은 고객을 마주하기 부끄럽다고 일반 점포로 가고 싶다고 한탄합니다. 펀드를 권유할 때 보다 꼼꼼히 체크하지 않았던 것을 후회 또 후회하고 있죠.”
투자설명에 대한 동의, 성향 분석, 리스크 한도 등을 면밀히 분석한 PB들은 고객들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고 있다. 투자자 스스로 상품을 이해하고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줬기 때문에 고객들도 자신이 선택한 결과에 대해 항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오랫동안 거래해 왔다는 이유로 고객 성향을 알아서 판단해 버린 PB들은 고객들의 항변에 지친 상황이다. 고객들의 경우 펀드 설명을 듣지 않았다며 소송까지 불사하는 고객들도 있다.
몇몇 스타급 PB들도 소송에 들어가 있다고 하는데, 박 PB의 말에 의하면 국민은행, 우리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 등 시중은행 PB들 중 소송당하지 않은 이들이 없을 정도라고 한다.
“아내가 남편의 주민등록증 사본을 들고, 대필서명 보증서를 쓰지 않고 투자한 경우가 소송에 많이 걸렸어요. 자신이 알지 못한 사이에 투자가 됐으니 펀드 설명을 듣지 않은 남편들이 은행을 대상으로 소송을 한 겁니다. 은행들도 할 말이 없고, 그렇다고 스타급 PB들을 내치겠어요? 은행직원에 대한 구상권도 있으니, 몇몇 은행들은 소송 기간을 길게 가져가려고 버티는 부분도 없지 않죠.”
몇몇 PB들이 사비를 털어서 고객들의 손실을 막아주는 것도 소송까지 가지 않기 위함이라고 박 PB는 언급했다. 소송까지 갈 경우 문제가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박 PB도 한 번 소송에 휘말렸다. 한 강남 아줌마에게 투자정보를 알려줬는데, 강남 아줌마는 박 PB가 아닌 다른 은행 PB를 통해 투자했다.
“한때는 수익률 50%까지 났어요. 주식 1주당 가격이 4000원에서 8000원으로 올랐거든요. 너무 올랐다는 생각에 바로 빼라는 조언을 했지만, 이를 무시하고 사모님은 투자금을 늘렸어요. 현재 투자원금은 반토막이 났죠. 이를 알게 된 남편이 소송을 걸었어요.”
박 PB는 투자정보만 제공했을 뿐이므로 다행히 소송이 좋게 해결됐다.
이처럼 정보만 받았거나 펀드 설명을 제대로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투자원금의 손실을 받아내기 위해 일부러 소송을 거는 고객들도 많다고 한다.
“몇몇 변호사들이 투자자들을 부추기는 경우도 있어요. 제 동료 PB는 대필보증서, 리스크 성향, 투자설명에 대한 동의까지 받았는데, 고객이 소송을 걸었어요. 그 고객은 펀드 설명을 못 들었다고 주장을 하는 거죠. 투자 손실에 대한 죄책감과 믿었던 고객에 대한 마음의 상처 때문에 PB들은 요즘 마음고생이 너무 심합니다.”
김현희 기자 (wooang13@ermedia.net)

박스

PB는 지금 이동 중

자통법 시행 맞춰 증권사로 몰려

한 외국계 은행의 스타급 PB들이 다 빠져나갔다는 소문이 PB 세계에서 파다하게 들린다. 몇몇은 증권사 PB로, 또 몇몇은 시중은행에 있다가 증권사로 자리를 옮겼다고 한다. 박 PB는 어쩔 수 없는 대세가 아니겠냐는 의견을 내놓는다.
“자통법이 시행됨에 따라 증권사 PB들이 판매할 수 있는 상품이 많아졌어요. 은행상품은 이미 메리트가 떨어진 지 오래고, 최근에는 채권을 많이 사는데 증권사로 많이 몰려요. 또 PB에게 주식투자를 맡기지 않고, 스스로 일부 자산을 투자하는 자산가 고객들도 늘어나서 투자 상담도 쏠쏠하죠.”
최근 회사채권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증권사 PB들에게 채권 상담과 자금이 몰리고 있다. 1년 회사채 200억원을 판매하는데, 수요자금이 2조4000억원이 몰리는 현상도 나타났다고. 우리파이낸셜 A+등급 채권을 예로 들면 선착순 10시에 3000억원이 몰리고, 30분에는 3배인 9000억원이 몰렸다. 1시간 만에 2조원이라는 거금이 유입됐다.
“시중은행에서도 현재 채권으로 자금이 몰리고 있어요. 채권 수익률과 가격은 반대로 가니까, 회사채권금리가 7%에서 3%로 하락할 경우 채권가격 수익률은 20~50%까지 올라갈 수 있거든요. 아무래도 증권사 PB들이 채권이나 주식 정보가 빠르니, 증권사 객장으로 시선들을 돌리게 되죠.”
10억원가량을 주식에 직접 투자하는 자산가 고객들도 증권사 PB들에게 자문을 구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시중은행 PB 관계자는 “제 고객들 중에서도 PB를 통하지 않고 직접 투자하는 분들이 좀 많아졌다”며 “펀드보다는 직접거래를 원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증권사를 찾아가는 경향이 많다”고 답했다.
이렇다 보니 증권사 PB로 이직한 동료 PB를 심심치 않게 본다고 박 PB는 전한다. 실제로 박 PB가 소속된 증권사 PB센터 센터장도 그의 선배이다. 또 박 PB가 팀을 이루는 이들은 대부분 시중은행에서 같이 일했던 동료와 선후배들이라고.
“타 증권사로 이직한 동료 PB인데, 외국계 은행에서 1년에 1000억씩 팔던 PB가 있었어요. 얼마 전에 타 증권사로 이직했더라고요. 그 동료에 따르면 ‘이제야 왔냐’는 말이 인사말이 될 정도로 아는 PB들이 증권사로 많이 왔다는 거예요. 다른 증권사 PB들을 둘러봐도 새로운 얼굴이 아니라서 ‘이제 왔다’는 인사를 하게 됐다는군요.”

김현희 기자 wooang13@ermedi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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