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늦은 지각 출발, 하지만 日 아성 깨고 글로벌 빅3 중 2사가 한국

 IT 제품을 중심으로 다양한 모바일기기가 확산되면서 고용량, 고에너지밀도 전지의 필요성이 절실해졌다. 또한 친환경, 배기가스로 인한 환경오염, 에너지 수급의 비효율성 등이 부각되면서 2차전지의 수요가 늘고 있다. 이에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은 일찍감치 2차전지 산업을 집중 육성하고, 미래형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인식해 국가 프로젝트 차원에서 본격적인 연구개발 작업에 착수하고 있다.

 #A씨는 알람시계 소리에 잠을 깬다. 허겁지겁 일어나 욕실에서 전기면도기로 면도를 한 뒤 샤워를 한다. 옷을 입은 A씨는 서둘러 차를 타고 출근한다. 회사에 도착한 A씨는 노트북과 태블릿 PC를 이용해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한다. 프레젠테이션을 끝낸 A씨는 수고했다는 동료들의 메시지를 스마트폰을 통해 받는다. 업무를 마친 A씨는 아들 녀석 생일 선물을 사기 위해 백화점에 잠시 들른다. 생일선물로 평소 사달라고 조르던 RC카를 사주기로 했다. 집에 도착하니 장난 심한 아들 녀석이 집 안을 심하게 어질러 놓았다. 아내가 지쳐 보여 로봇청소기와 핸드청소기를 이용해 청소하기로 했다.

2차전지는 흔히 IT기기의 심장이라고 불린다. 21세기 세계 정보기술(IT) 시장을 주도할 3대 핵심 부품으로 손꼽히는 반도체와 LCD가 흔히 인체의 두뇌와 눈에 비유된다면, 바로 심장에 해당되는 것이 2차전지라 할 수 있다. 이러한 2차전지는 일상생활 곳곳에서 접할 수 있다. 우리가 항상 지니고 다니는 스마트폰 안에도 2차전지가 내장돼 있고 책상 위에 있는 노트북과 태블릿 PC에도 들어가 있다. 조금만 관심을 갖고 주변을 바라본다면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2차전지는 한 번 사용으로 폐기되는 1차전지와 달리 여러 번 재충전하여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러한 장점 때문에 최근에는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사업과 각종 융복합 에너지 사업에서도 활용되고 있다. 친환경과 에너지 절감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본격적인 전기차의 보급과 전기에너지 저장장치의 수요 확대가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고유가로 인한 차량 유지비의 상승과 환경오염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면서 BMW, 폭스바겐, 벤츠 등 주요 자동차 업체들이 순수 전기차를 대거 출시했다. 또한 2003년과 2006년, 2012년에 블랙아웃을 겪으면서 전력 부족 문제로 골치를 앓았던 미국과 유럽에서는 정부 주도로 에너지저장시스템(ESS)을 개발하거나 보급하는 데 힘쓰고 있다. 이에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은 일찍감치 2차전지 산업을 집중 육성하고, 미래형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인식해 국가 프로젝트 차원에서 본격적인 연구개발 작업에 착수하고 있다.

2차전지로 본 변화된 일상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소비자들이 가장 아쉬워하는 부분은 한 번 충전해서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짧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의 사용시간은 전적으로 전지에 의해 결정되며 구체적으로는 전지 안에 저장된 화학에너지 양에 의해 결정된다. 개인용 디지털 기기는 날로 지능화, 복합화되고 있지만 전지가 저장할 수 있는 에너지의 양은 포화상태에 다다르고 있기 때문에 사용시간이 짧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니켈카드뮴, 니켈수소 등이 전지로 사용돼왔지만, 에너지 밀도가 낮고 유해물질이 사용돼 에너지 공급원으로서 효용이 떨어졌다. 하지만 1990년대 일본 소니(SONY)사가 고용량, 고에너지밀도의 리튬이온 전지를 개발하면서 2차전지 시장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리튬 2차전지는 2000년까지는 니켈수소 2차전지에 비해서 확산 속도가 빠르지 않았다. 그러나 기술 발전으로 에너지 밀도와 안전성이 향상되고 대량생산으로 원가가 낮아지면서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2차전지 중에서 가장 빠른 확산 속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 결과 최근 10년 동안 리튬 2차전지 수요증가율은 연평균 21.8%(수량 기준) 증가해 전체 2차전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17.6%에서 2012년 90% 넘게 증가했다. 더욱이 휴대폰, 노트북컴퓨터, 캠코더, PDA 등 휴대형 소형 가전기기 수요가 크게 늘면서 리튬 2차전지의 수요도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고에너지밀도ㆍ소형화에 유리한 리튬 2차전지가 휴대형 정보통신 기기의 소형화ㆍ경량화ㆍ고성능화를 실현할 수 있는 최적의 동력원으로 손꼽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고용량ㆍ고출력이 가능한 2차전지 채용 범위가 중소형 가전으로 확대되면서 소비자들의 관심과 함께 제품 수요가 늘고 있는 추세다.

무선청소기와 로봇청소기는 유선청소기와 달리 전선이 없어 여러 모로 편리했지만, 충전 후 작동시간이 짧고 흡입력이 약한 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리튬이온 전지를 장착한 제품이 출시되면서 성능이 몰라보게 개선돼 소비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밖에도 디지털 액자, 휴대용 스피커, 게임기, 내비게이션, 휴대용 프린터, 충전이 가능한 무선 마우스, MP3, 안마기, 손난로, 전동칫솔, 다리미, 전동공구, 손전등과 같은 제품들에서 리튬 2차전지의 활용도가 증가하고 있다. 특히 리튬이온 전지는 충전량이 줄어드는 메모리효과가 없어 배터리 수명이 길고 자주 충전해 사용할 수 있어 향후에도 IT기기와 가전시장 내에서 영역을 넓혀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2차전지 시장 글로벌 1위 삼성SDI

‘2차전지’ 하면 흔히 일본의 소니 혹은 산요를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지난 10년간의 긴 투자와 연구개발 끝에 2009년에 이르러서 국내기업의 본격적인 도약이 시작됐다. 이어 2011년에는 2차전지 산업에 진출한 지 12년 만에 일본을 추월했다. 당시 일본 IT전문 시장전망기관 IIT(Institute of Information Technology)는 보고서에서 “20년 동안 일본이 지켜왔던 중소형 2차전지(리튬이온 전지) 시장 1위가 올해 한국으로 바뀔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 2012년에는 일본 기업들이 2차전지를 총 12억4000만 셀을 생산한 반면 한국기업들은 약 17억9000만 셀을 생산해 시장점유율을 50% 가까이 끌어올렸다. 한국의 2차전지 사업이 일본에 비해 10년 가까이 늦어 전지 성능과 안정성에서 일본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것으로만 생각했지만, 삼성SDI와 LG화학 등 주요 기업들이 상용화 10년 만에 일본을 추월하는 대역전극을 펼친 것이다.

지난 3월 현재 일본 2차전지 전문 조사기관인 ‘B3’가 발표한 2013년 1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삼성SDI가 지난해 10억7200만 셀을 출하해 3년 연속1위에 올랐다. 삼성SDI의 시장점유율은 26%로 전 세계 2차전지 제품 4개 중 1개가 삼성SDI의 배터리를 사용한 셈이다. LG화학도 지지부진한 성장 때문에 애를 태웠지만 꾸준한 투자로 시장점유율 17.5%를 차지하며 2위인 파나소닉(18.7%)를 바짝 쫓고 있다. 이와 같은 국내 기업의 선전은 선제적 투자와 기술개발을 통한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기존 일본업체들이 선점하고 있던 시장을 비집고 들어간 덕분이다. 이다솔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2000년 중반 이후 한국 업체들이 독자적인 기술 개발, 엔고/원저 상황 속에서 가격경쟁력 확보, 주요 고객이자 계열사인 삼성전자, LG전자의 성장 등을 통해 일본 업체들을 넘어서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2차전지 시장에서 더욱 견고해지는 한국

국내 2차전지 업체들의 경쟁력은 더욱 견고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SDI가 삼성전자, LG화학이 LG전자라는 Captive Market을 확보하고 있고 이를 바탕으로 글로벌 유수의 업체들에게 공급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글로벌 리튬이온 전지 시장도 2016년까지 연평균 8.4%의 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돼 양호한 수급상황이 전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글로벌 경기침체와 2차전지 제조업체들의 활발한 증설로 30% 이상의 공급과잉률을 보였다. 더욱이 기존에 다양했던 모바일 제품이 스마트폰과 태블릿 PC로 통합되면서 디지털카메라, 휴대용 게임기, 내비게이션, MP3 등 기존의 2차전지 수요처가 잠식되면서 한때 수요 정체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전방산업인 스마트폰과 태블릿 PC의 판매량 증가 추세와 해당 기기에 탑재되는 배터리의 용량 증가로 공급과잉률이 16%까지 떨어지는 등 수급이 개선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태블릿 PC 시장의 확대로 전반적인 2차전지 시장이 안정적인 증가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태블릿 PC량 출하 비중은 전체 소형 전지의 6%밖에 되지 않지만, 태블릿 PC 출하량이 매년 증가세에 있고 대당 채용되는 셀도 3개이기 때문에 2차전지 내 비중이 지속적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또한 스마트폰 시장의 지속적인 성장도 2차전지 성장을 견인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시장조사 전문기관인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선진 스마트폰 시장은 포화 상태에 가깝지만 신흥시장 수요는 여전히 증가세다. 이에 이다솔 연구원은 “소형 전지 출하 비중에서 45%를 차지하는 스마트폰 시장이 견고한 성장세를 보임에 따라 향후 2차전지의 수요가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측된다”고 분석했다.

또한 국내업체들도 다가올 2차전지의 시장 재편에 앞서 생산설비 강화와 제품 차별화에도 선제적으로 대응해 향후 2차전지 시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삼성SDI와 LG화학은 폴리머 2차전지 생산량을 30% 안팎으로 확대하면서 신규 모바일 성장에 대비하고 있다. 스마트폰, 울트라북 등 모바일 제품이 더욱 얇아지고 이동성이 강조되면서 폴리머 2차전지 수요가 급격하게 늘어나는 데 따른 복안이다. 폴리머 전지는 기존의 리튬이온 전지보다 높은 에너지밀도, 고성능 발휘가 가능하며, 전해액이 고체화된 젤 상태이기 때문에 더 안전하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또한 기존 전지보다 얇고 사이즈 조정이 수월하기 때문에 최근 경박화되는 모바일 IT기기에 적합한 전지라고 분석된다. 실제 애플과 같은 대규모 배터리 구매고객들의 폴리머 전지 선호도가 높아짐에 따라 폴리머 전지는 연평균 34.6% 성장해 원통형(-2.6%)과 각형(-2.4%)의 성장률을 압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록호 대신증권 연구원은 “폴리머 전지는 기존 전지 대비 에너지 밀도나 성능 면에서 우월하다”며 “High-end Product에서 대체로 폴리머 전지 채택을 확대하고 있는 추세고 일본 경쟁업체인 소니와 파나소닉이 capa 증설에 적극적이지 못해 2013년 하반기까지는 타이트한 수급이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이에 삼성SDI와 LG화학은 폴리머 전지 생산 경쟁에 적극 나선다. 삼성SDI는 말레이시아 세렘반 공장에, LG화학은 중국 남경공장에 폴리머 생산설비를 확충할 계획이다. 또한 제품 차별화에도 나설 방침이다. 제품의 슬림화 트렌드에 맞춰 소재 차별화를 통한 고성능의 폴리머 전지 개발에 주력하고 제조 기술을 통해 얇고 대면적의 전지 개발에도 집중할 계획이다. 물론 애플로부터 선수금을 받아 공격적인 플리머 전지 생산라인 증설을 계획 중인 중국의 ATL(Amperex Technology Limited)과 폴리머 전지 세계 5위인 리센 등 중국 업체들이 생산설비 확충과 기술 개발로 국내기업을 맹추격하고 있지만 아직은 그 위협이 제한적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김 연구원은 “Apple향 폴리머 전지 공급업체로 성장 중인 ATL, Lishen 등의 중국 업체들의 폴리머 전지 Capa 증설이 진행되고 있지만, 대면적 폴리머 전지의 경쟁력이 국내업체에 비해 열위에 있고, 생산능력 역시 절반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기 때문에 위협적이지 못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