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小才)는 연을 만나도 연이라는 것을 모르고, 중재(中才)는 연을 만나도 연을 살리지 못하고, 대재(大才)는 옷깃을 스치는 인연까지도 살린다’는 말이 있다.

누구를 만나든 그 사람을 귀인으로 여기고 성심성의껏 대하면 누구든 나에게 귀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허은영 기업은행 도곡팰리스 지점장은 옷깃을 스치는 인연도 살리는 인물이다. 업계에서는 금융권 신(新)마당발은 허은영 지점장이 아닌가란 말이 있을 정도다.

허 지점장은 “눈사람을 만들 때 눈을 처음 뭉칠 때는 자꾸 풀어지고 깨지지만 어느 정도 뭉치고 나면 그 눈덩이는 조금의 노력만 기울여도 불어난다”면서 “휴먼 네트워크에도 복리라는 개념이 적용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키는 인맥 네트워크
“사람을 만날 때 이 사람이 나에게 어떤 부분을 채워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 전에 이 사람과 저 사람을 만나게 하면 시너지 효과가 나겠다,

이분 따님과 저분 아드님의 선자리를 잡으면 좋겠다란 생각을 먼저 합니다. 그런 점이 사람들이 저를 인간적으로 편하게 찾아오는 이유가 아닌가 싶습니다.”

허은영 지점장의 성공비결은 ‘Member get Member’이다. 기존의 고객이 다른 고객을 소개해 주는 것이다.

허 지점장은 “사람들을 만날 때 그 사람의 장점을 찾아내는 능력이 다른 사람에 비해 탁월한 것 같다”면서 “그 장점을 다른 이에게 알리는 것도 자신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또 “비굴하지 않은 영업을 하는 게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고 덧붙였다.
허은영 지점장의 강점은 거성과 거성을 연결시켜 주는 인맥 네트워크다.

그들의 시간을 절약시키기 위해 연결해 줬던 자리였는데 그들이 만나면 허 지점장과 단둘이 만났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시너지가 이뤄진다는 것이다.

한국 경제, 세계 정세와 전망 등 그들의 대화를 커닝하는 것 자체만으로 최대 수혜자는 자신이 된다는 것.

또한 그들이 만나면서 비즈니스 시너지 효과가 배가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고 말한다.

처음 이런 자리를 만들게 된 계기는 간단하다. 두 달 정도 미리 스케줄이 짜 있기 때문에 그분들과의 만남을 두 달 뒤로 미룰 수 없어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서로 코드가 맞는 자리를 만들다 보니 그분들이 너무 만족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도 만족감을 느꼈다고. 자신의 업무에 연관선상에 있는, 격에 맞는 사람만 만나서는 결코 좋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고위공직자가 아이디어 조언을 구해 적합한 사람을 연결시켜 주기도 했고 기업 CEO 중에는 정기적으로 허 지점장과의 인맥 네트워크 자리에 참석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윈(Win), 루즈(Lose)의 만남은 만들지 않는다.
이는 비슷한 레벨의 사람들끼리의 만남만 주선한다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만나서 윈윈하는 만남만을 주선한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누가 누구를 만나게 해달라는 부탁이 들어오면 이미 한 사람에게는 루즈의 만남이기 때문에 그에게는 손해이기 때문이다.

허 지점장의 인맥 업데이트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 줄 때 이뤄진다. 도움이 필요 없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누군가가 도움을 청할 때, 도움을 줄 때 진정한 인맥 업데이트가 이뤄진다는 것.

허 지점장이 직접 못하면 다른 사람을 통해 해결해 주면 두 사람 모두와의 관계가 업데이트된다. 이때 상대에게 각각 적합한 도움을 구하는 것이 필수다.

허 지점장은 “어떤 사람은 가래로 막을 걸 호미로 막고,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 사람이 있다”면서 “각각의 격에 맞는 부탁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기브 앤 테이크는 항상 쌍방향으로 오고가는 것은 아니에요. 제가 받은 도움을 다시 그 사람에게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으로 갚을 수도 있는 것이죠.”

“눈사람을 만들 때 눈을 처음 뭉칠 때는 자꾸 풀어지고 깨지지만 어느 정도 뭉치고 나면 그 눈덩이는 조금의 노력만 기울여도 불어납니다. 휴먼 네트워크에도 복리라는개념이 적용됩니다.”

“영업인의 명함은 누구에게나 통하는 마패”
허은영 지점장을 찾는 이들의 사연은 제각각이다. 아이디어를 구하는 사람, 선자리를 부탁하는 사람, 자녀 고민상담, 인생 상담까지. 각자의 고민을 들고 그녀를 찾는다.

“어느 날 지인이 어떤 분을 한번 만나보라고 하셔서 영문도 모르고 만났어요. 처음에는 선자리를 부탁하러 오신 줄 알았는데 대화를 하다 보니 이상하다 싶었어요.

그래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인생이 허무하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 지인분이 허 지점장을 만나면 인생간증을 해줄 거라는 이야기를 하셨다더군요.”

국내 은행권에서 여성이 지점장 자리에 올랐다는 것은, 더구나 그녀가 일하는 곳이 거부들만 산다는 도곡팰리스 지점이라면, 지금껏 그녀의 노력이 얼마나 치열했는가,

그녀가 어느 위치에 올라 있는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국내 은행권은 그동안 남성들의 성역이었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20년 동안 본부에서만 근무했던 허은영 지점장의 인생을 바꾸어놓은 것은 KAIST MBA 과정이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여성들은 보이지 않는 차별을 극복하며 남성들과 경쟁하기 위해서 치열한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이에 허 지점장도 국제금융, 대출심사 등 은행 내 전문요원 자격 취득은 물론 일본어, 중국어 등 어학공부까지 하다 보니 거의 평생을 시험 속에서 살다시피 했다.

화장을 하거나 밥을 먹거나 심지어는 화장실에서조차 어학테이프를 귀에 꽂고 다닐 정도였다고. 아무리 작은 자투리 시간도 공부 시간으로 활용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기업은행에서 지원해 주는 카이스트 MBA 과정을 들을 수 있었다. 공부욕심이 과해 한 학기 5과목 이상을 수강할 수 없는데 17과목을 청강해 모두 22과목을 들었다.

당시 교수님께서 수강생들보다 더 열심히 듣는 청강생이 있다면서 감동받으며 칭찬해 주셨을 정도. 다양한 과목을 듣다 보니 다양한 학생들과 친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MBA를 마친 후 지점으로 발령이 났고, 이후 허 지점장의 인생은 달라졌다. “영업을 하다 보니 지금까지 우물 안 개구리처럼 좁은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구나란 생각이 들었어요.

기업은행 본부에서 20여 년 동안 근무하다 보니 외부 인맥이 한 명도 없었거든요. 이후 지점장 시절 3년 동안 모은 명함이 11000여장 됩니다. 나보다 낮은 사람에게 교만하지 않고 나보다 높은 사람에게 비굴하지 않은 것이 영업의 포인트지요.”

그녀는 “금융업은 고객의 예금을 기업에 대출해 이자를 얻듯 저도 사람과 사람의 재능을 연결시킴으로써 인맥 네트워크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요즘 자신의 별명은 화분매개를 하는‘꿀벌’이라고 귀띔했다.

“영업인의 명함은 전 세계 누구에게도 내밀며 식사를 하자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마패예요. 과도하게 친절을 베풀어도 오해받지 않는 직업이기도 하고요.

항상 누군가를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시작은 같을지 몰라도 몇 년 후 위치는 같은 자리가 아닐 것입니다.”

오희나 기자 hnoh@asiae.co.kr